큰 아이가 대학원 진학 준비를 위해 이번 여름에 GRE 시험을 봤다.(한 달 만에) 원래도 자기는 시험형 인간이 아니라며 나도 그런 아이의 성향을 잘 알기에.. 보지 말라고 왜 괜한 스트레스를 받으려 하느냐고 나무란 적이 있다.
지도교수님도 당신도 시험형 인간이 아니라며 서로 나눈 대화를 말해주며 그래도 보겠다고 한 큰 아이를 보며 참 많이 컸다, 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놀라고 한다. 공부하지 말라고 자주 했고 지금도 자주 그렇게 말한다.
막내가 한국 학년이면 고등학생일 텐데(일 텐데가 맞는 게 매번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챙기는 걸 하지 않는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챙기기 시작하다 보면 아이도 나도 모두 지쳐버리고 관계도 소원해진다)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열이 불타는지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공부한다.
그럴 때도 나는 좀 쉬라고 한다. 괜찮다고. 성적 1학기에 잘 나오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고, 너무 어려운 과목을 그리 선택했으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과학을 좋아하고 뇌과학을 전공하는 막내는 과학 관련 수업만 학점을 가득 채우고 듣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러다 지친다고 댄스를 권했다. 힙합댄스 동아리에 오디션에 합격해서 학교 행사 때마다 댄스를 한다.
내가 권해서 듣고 있는 수업이 재미있는데, 6명이 듣다가 2-3명이 후루룩 나갔다고 한다. 3-4학년 선배들만 남았다고 한다. 근데 나와 큰 아이는 이 이야기를 듣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수업 내내 서있는데 움직이지 않으려는 걸 하고 아침잠 많기로 소문난 (집에서 별명이 신생아다. 하도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자고 또 자서 오후 4-5시에 일어날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이 약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 집에서 덩치가 제일 크다) 막내는 그 댄스 수업을 가면 바닥을 온통 몸으로 쓸고 온다며 구시렁 하소연을 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권한 수업이라서 그런지 싫다, 뭐 하다는 말을 안 한다. 나는 그럼 이런 말을 한다.
"내 안에 나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나를 바라보고 나를 찾는 거, 그거 음악으로도 몸으로도 글로도 쉽게 되지 않아. 지금 그 기회 때 해 두면 나중에 나를 더 금방 알게 돼서 좋을 수 있을 거 같아.."라고 말한다.
그러며 엄마는 너처럼 그런 거 함 해보고 싶다. 이리저리 바닥도 쓸며 댄스도 해보고 한참 동안 서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는 거 아니야? 멋지다~ 이런 말을 한다.
너무나 바쁜 큰 아이는 아마도 내 어림짐작으로 어젯밤 11시가 넘어서 하숙집에 갔을 것 같다. 학교에서 11시가 넘으면 차편을 제공해준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현지 교포친구는 자주 다른 sns에 미싱 펄슨 찾는 걸 올린다. 실종된 사람들이 중학생도 있고, 성인도 있다. 친구에게 지금도?라고 물었을 때 너무 많은데 이렇게라도 올려야 사람들이 빨리빨리 신경 써서 찾아본다고 했다. sns의 힘은 그런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큰 아이에게 자주 한다. 왜냐하면 꽤 먼 거리를 큰 아이는 기숙사를 나온 후 하숙집에 걸어서 학교 캠퍼스를 오가고, 슈퍼도 다니는 데 영 내 눈에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라서 불안함이 큰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증을 따게 했는데 아직도 장롱면허다. 내 성화에 못 이겨 운전을 한 건지.. 내가 분명 운전을 해야 거기서는 살기 편하다고 했는데 그걸 귓등으로 듣더니.. 그래도 취미가 걷기라서 하루에 만보, 이만 보는 거뜬히 걷는 큰 아이는 지금 그 생활이 좋다고 한다.
이번에 보스턴을 가서 직접 봤는 데 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그랬다. 큰 아이는 주변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지 친구들의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에서 오시거나 한국에서 오시면 함께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그것도 참 큰 아이 복 같다.
자꾸만 sns에 국제학교가 보인다. 비인가 국제학교도 보이고. 할 말이 많은데 머리가 복잡하다.
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후, 다시 돌아오라고 한 외국인학교를 들어가지도 않고, 외국인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비인가 국제학교를 점심도 굶어가며 학점을 모아 조금 빨리 졸업하려 애썼다.
거기서 만난 헉교 친구, 동생들은 모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만 이렇게 한국에 남아서 다시 돌아가지 않고 IMF를 맞이했고 내 사정을 알고(영주권이 말소돼서) 그렇게 학생비자까지 먼저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생에게 부모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 학교 동생은 사정을 모르니 섭섭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 나온 학교 동생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 갔다. 아이들 없이 만났을 때 그 동생은 아무 말 없이 내게 발마사지를 같이 하자고 데리고도 갔다. 그런 동생이 고맙기도 하고 예전에 학교에서 섭섭해서 한 말도 기억나고 그래서 병원에서 힘겹게 나오는 학교 동생을 위해 꽃다발을 갖다주고 식사를 하고 집에 데려다준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자기와 똑 닮은 아기를 낳아 알콩달콩 미국에서 사는 것 같다.
지금도 국제학교들은 참 많다. 비인가부터 인가까지. 몇 정부 전에 해외로 나가는 아이들을 국내로 유입하기 위해 만든 국내에 있는 제주 국제학교를 시작으로 국내에 국제학교가 생기기 시작했다.
...
자꾸 sns에 국제학교, 미국 기숙형 학교 등이 눈에 보인다.
가봤자 다 똑같은 걸..이라고 말해줘도 아마 보내는 이나 가고 있는 아이나 귓등으로 들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써야 하나, 어디서부터 글을 풀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럴 땐 sns 디톡스가 답일 텐데.. 그것보다 새벽예배에 들었던 목사님 말씀을 복기하며 앱으로 큐티를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내가 쓴 글을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겠지 싶다.
이렇게 써 내려간 글들을 다시 어떻게 모아서 지금도 있는 100장과 버무려서 글을 만들지, 이러다 정말 계획한 것보다 꽤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꿈꾸지도 않았던 작가의 삶이라는 걸 만들어 가다니.. 이 세상 참 살아볼 만하다 싶다.
어제저녁에 읽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은 내가 중학교 때 읽던 <가시나무 새>와 비슷해서 좀 놀랐다.. 그 느낌이 뭐랄까. 소설은 이런 걸 마구 쓸 수 있구나, 참.. 센세이션 하다. 신박하기 그지없다,라는 생각.
또 인스타그램에는 국제학교를 보낸 부모가 저번에는 어린아이를 보내는 젊은 엄마가 내 피드에 좋아요를 띡 누르고 가더니, 이번에는 해외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가 좋아요를 눌렀다.
우리 가족은 비용대비 고등학교에는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변함없다. 가능하다면 효과대비 가성비를 생각해서 불필요함을 줄이는 게 조금 더 먼 미래의 아이들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 역시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