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하다..

사회 풍토와 통념에 마주하다

by 나무엄마 지니



보통 5시나 6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데 오늘은 새벽 4시경에 일어났다. 어제도 윗집 아들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화가 나는지 밤 12시부터 새벽 4, 5시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 같다. 무슨 짐승이 내는 소리 같기도 했고 울부짖음,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집 부모도 만성이 되었는지 아들을 말리려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계속되면 좀 힘들 거 같은데.. 저 윗집 아들 마음이 편해지던지 이사를 가던지 하면 좋겠다 생각을 하다가 '왜 저 집 아들은 저런 지경에 이르렀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나는 저 윗집 아들 덕분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좀 멈추겠지 했는데 그 윗집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새벽에는 내 귓구멍에 때려 박듯 너무도 잘 들렸 때문이다.




어제 <옥탑방 문제아들>을 봤다. 원래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내가 관심 있는 건강 정보가 새어 나왔다.


소금은 조금 먹어야 한다는 점, 소금을 많이 먹으면 심장이 비대해지고 신장이 나빠지며 뇌졸중이 올 수 있기에 이 세상에 단것과 짠 것이 있다면 그중 어떤 걸 먹을 거냐고 묻는 질문에 단 게 짠 것보다 낫다는 말을 뮤지컬배우 김소현 아버지이자, 서울대 교수 의사인 아버지가 나와서 해주신 말이다.


그런데.. 모든 패널들이 서울대에 집중에서 묻고 답하는 게 내가 거의 처음으로 집중해서 봐서 그런지 여간 귀에 거슬렸다.


게스트를 초대한 건 이해하는데 아직도 '서울대, 서울대', 언제까지 그 서울대를 연호할지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 서울대에 붙는 딱지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의사로 키우는 게 모든 부모의 꿈인지 의사 아빠 앞에서 패널들은 서울대라는 말을 참 많이도 하는 걸 보며 언제 저런 게 그만 나올까 싶기도 하다. 도대체 언제 이런 생각, 통념, 사회풍토가 바뀔까. 예전에는 지방 국립대도 서울대만큼 좋다고 하는 걸 들었는데 뭔가 잘못되어 가는 세상일까..




내가 좋아하는 <유괴의 날>이 어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윤계상의 꾸밈없는 연기가 좋았고, 자그마한 꼬마가 핏기 없는 얼굴로 당돌하게 이치에 맞게 이야기할 때는 뭐랄까..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러웠다.(수술대에 올랐으니까..) 가끔 어른들이 그 천재꼬마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따를 때면 통쾌함 마저 들었다. 거기다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형사까지. 엔딩도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다.


마지막에는 외롭던 주인공 천재소녀가 윤계상과 그의 딸과 가족을 이룬 점도 좋았다. 그리고 천재소녀는 윤계상에게 "희애 국제학교에 보내려고"라는 말을 다. 부모의 유산으로 꽤 많은 재력이 생겨버린 천재소녀가 윤계상에게 한 말이다.




정말 요즘 국제학교가 트렌디한 유행병?처럼 돼버린 건 맞나 보다. 드라마에도 저렇게 대놓고 나올 정도인 걸 보면.


한국학교를 나오려 마음을 먹은 큰 아이의 이야기. 한국학교를 나오게 된 큰 아이의 선택과 그 결정, 그리고 배경에 대해서 먼저 써보려 한다.


이 글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 좋겠고 마음에 가닿는 어른들도 있으면 그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큰 아이는 모범생에 굉장히 성실하다. 지금까지 알아서 척척하고 막내가 홈스쿨링을 선택했을 때도 대학에 다니는 큰 아이가 큰 등대 역할을 했다.


큰 아이에게 무슨 생각인지 남편이 큰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쳐줬다. 큰 아이는 아빠에게 여러 질문을 한 모양인데.. 아빠는 아주 당혹스러워했고 아빠는 이런 거 그냥 풀었어, 너도 그냥 풀어,라는 소리를 듣고 큰 아이는 서러워서 또 한참을 울었다. 그 후 남편은 막내에게 수학공부를 직접 시키지 않았지만 여러 재미있는 걸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했고 다양한 문제집을 꽤 많이 사서 막내에게 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자꾸 보며 큰 아이는 섭섭했을 것이다. 나는 체험판이야..하고 말하며..


큰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수족냉증이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된 후 더 자주 우는 빈도수가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아지고 높아졌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반장(학급회장)이나 부반장(학급부회장)인 부모는 학교 교실로 청소를 하러 가야 했다. 그때를 제외하고 정기적인 학부모상담, 참관수업 외에는 학교를 간 적은 없다.


상담이 시작되었다. 6학년 담임교사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 학교를 언급했고 특목중, 고등학교인가 본데 주변 친구에게 학교이름을 이야기하니 "거기 어디야?"라고 내게 되물었다. 나도 서울에 살며 큰 아이를 낳은 젊은 엄마에 속했기에 보통 사람들이 아는 영훈중, 하나고, 민사고, 외고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샘은 내가 도시형 대안학교에 보낼 계획이라고 한 말에 당황한 눈치였다. (아이러니하게 큰 아이는 면접도 아니고 서류전형에서 그 학교를 떨어졌다. 그리고 다소 이해가 안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책으로 아니면 평생 가슴에 묻을 수도..)


내게 '영재'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그때 당시에 나는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어서 그런지 그 담임교사와는 생각이 달랐다.


"영재는 많이 빠른 아이 아니에요? 그거 선행하면 되는 거죠. 저도 저희 아이 유치원 때부터 수학 선행을 시켰어요."


음..


그래도 담임교사이니 내 의견을 말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 당시에는 큰 아이가 교육청 정보영재로 C언어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C언어가 어려워서 그 두꺼운 책을 들고 울고 또 울었는데 마지막 우연히 본 큰 아이의 모습은 꽤 멋있었다.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로 무언가를 입력하고 갖고 있는 작은 로봇을 데리고 바닥에 놓으면 그 작은 로봇이 컵 사이를 빠져나가는 데 위치설정을 해놓는 건지, 위치를 변화시키는지 꽤 잘 컵사이로 큰 아이 로봇이 여러 번 지나갔다.


막내가 언니가 보고 싶다고 막내와 큰 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구경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인지 막내는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참 말했고 정말 로봇으로 싱가포르 국제 대회에도 참가했다.


C언어 때문에 교육청 영재 담당하시는 분께 전화를 했을 때 정중히 내 의견을 들여주셔서 감사한 기억이 있다. 큰 아이는 그래도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말했지만 그나마 조금은 바뀌었으면 한다.




보통 학교에 전화를 하지 않고, 교육청에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가 한 말을 듣고 학교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시험 때문이었는데 배우지 않은 걸 내고 평가를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하니,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교감선생님이 몇 학년 몇 반 부모냐고 물으셨다. 죄송한데 익명으로 말하려 한다는 말과 함께 배운 것에서 내야 학교고, 교사 아니겠느냐고 꼭 이점 유의해서 아이들을 지도편달 부탁드린다고 말을 했다.


그때가 선행학습 금지법이 있기 전이었다.




학교로 전화한 것이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다. 하나는 음악교사 때문이다. 큰 아이는 몸이 피곤하면 편도가 자주 붓는데 그날은 많이 추웠는지 피곤했는지 목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학교를 다녀온 큰 아이는 집에 와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아마 그때가 학교일로 울기 시작한 처음인 걸로 기억한다.


"왜? 무슨 일 있었어?"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나마저 아이의 울음소리에 얼어버렸다.


"아니.. 엄마.. 흑흑흑.."


큰 아이는 한번 울면 엄청 서럽게 우는데 반장선거에 떨어진 3학년 때 이후로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건 처음이었다.


"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학교에??"


그 당시에도 큰 아이는 반장이었고 학교 부회장이었다. 부회장이 되기 싫다고 했는데 운이 좋아서 되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 기권자가 있었는지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아이는 음악 노래 시험을 봤다. 그것도 반 아이들이 전체 있는 앞에서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 노래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상태로 노래를 불렀다. 쉰소리조차 나오지 않은 그 목소리로..

큰 아이는 그때는 내가 잘 몰랐는데 노래를 잘해서 공립초등학교지만 합창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다른 합창단(음악교사는 아닌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큰 아이에게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는 걸 큰 아이가 중학교가 이후 K pop 스타에 나가고 싶다고 한 그 재능을 알게 되었다.

'목소리가 하나도 안 나오는데.. 반 아이들 앞에서.. 초등학교 5학년 생이면.. 사춘기 아이들인데.. 저렇게 개미소리 하나 안 나오는 아이를.. 끝까지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가슴이 쿵쾅쿵쾅 이리저리 나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거 뭐지? 내가 지금 제대로 학교를 보내고 있는 거야? 이거 무슨 일인 거야?


혼자 이런저런 생각도 할 겨를이 없이 나는 핸드폰을 꾹꾹 누르며 학교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거기 5학년 음악담당 교사 부탁합니다. 5학년 0반 엄마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다. 그래도 기다릴만했다. 궁금해서 전화를 한 것이니. 왜 그러셨느냐고, 그 이유를 물어보려 한 것이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5학년 0반 이하은엄마입니다. 이렇게 전화로 인사를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직접 학교에 가서 뵙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음악선생님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꽤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말들이 쏟아져 들리기 시작했다.

"저는 이런 게 싫어서 담임교사 하지 않으려고 음악교사가 된 거예요. 그럼 점수를 잘주면 되는 거죠? 잘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최소한 교장, 교감, 담임에게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큰 아이가 이 학교로 전학오기 전에 운영위원을 아주 잠깐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별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온 것 같은데 내게는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어색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선생님.. 제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목이 아파서 목소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 반 전체 앞에서 노래 시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 교사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 성적 좋게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본질을 벗어나는 대답을 자꾸 앵무새처럼 해댔다.

...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그때 당시에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선 알겠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목이 아픈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이렇게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숨을 돌리고 담임선생님한테 바로 학교로 전화를 했다. 여차저차 이래서 저래서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 학교로 갈 수 있는데 가도 될지 여부를 물었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오라고 그러셨다.

급히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두 개 샀다. 그리고 샘한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고 제가 엄마로 마음이 좀 앞선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오해가 없으시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음료를 건넸다. 담임선생님은 아셨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그 이야기는 일달락이 됐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일정이 있어도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아이를 테스팅시킬 이유가 있었는지 지금도 그 음악교사에게 묻고 싶다.




학부모 상담에 6학년 담임교사는 내게 영재 이야기를 하시더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반 아이 하나가 있는데 그 아이는 옷이 꾸깃하다는 점. 엄마가 뭘 하는지 세탁기에서 옷을 털어서만 널어서 입혀도 저렇게 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셔서.. 음.. 내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있는데 나는 빨래를 정말 열심히 한다. 그리고 지독하게 냄새를 잘 맡아서 조금만 이상한 냄새가 나면 그걸 못 참고 또 세탁기에 넣는다.

그런 나를 보고 큰 아이는 내가 빨래 달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대학교 기숙사에 처음 가서 빨래하는 법에 대해 상세히 묻는데 나는 다양하게 빨래를 잘하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빨래를 자주 하는 그런 엄마라는 걸 큰 아이나 나는 그때야 비로소 깨닫게 된 적이 있다.




담임교사는 하은이가 필기를 잘하고 있는 거 혹시 아세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뇨. 큰 아이는 알아서 공부를 해요. 그래서 제가 노트도 잘 안 열어보고 확인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노트를 열어보는 게 싫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숨구멍이 막혀 온다.

하지만 담임교사에게 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서 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임교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샘한테 도시형 대안학교를 보낼 계획이다. 특목중이나 특목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이 부분은 나중에 책을 내게 되면 책에서 자세히 써볼 계획입니다)


아마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특목고의 하나인 내가 잘 모르는 학교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젊은 한국실정 잘 모르는 대학원 다니는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아주 뜨악했던 게 있었는데. 그래서 큰 아이가 손발이 차갑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큰 아이는 손과 발이 보통 사람들보다 찬 수족냉증이 심했다. 긴장을 하고 열심히 모범생으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랬던 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좀 아프고 현실이 사납다는 생각을 한다.

담임선생님은 수학이 전공인지, 종이에 아이들의 반평균이 나와있다고 말하셨다. 음.. 반평균이라.. 이거 내가 중학교 때 석차로 한 대 맞고 두대 맞고 복도랑 벽에 붙어 있던 그 성적, 그 석차, 그런 거 그거 말하는 거 아니야?

담임교사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아이들 개인 평균까지 A 그룹과 B 그룹으로 반석차를 나눠서 아이들을 갈라놓았다.

음.. 이게 뭐지?

아이는 성실하고 학교에서 샘이 알려주는 걸 열심히 집에 와서 복기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공부를 게을리한 적도 없을뿐더러 성적이 나쁘게 나온 적도 없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얼마나 선행을 하는지를 이야기해 주셨다. 아무래도 내가 젊은 엄마에게 한국사정을 잘 모르는 엄마라는 판단이 서있으셨던 것 같다.

한 아이를 언급해 주셨는데 그 아이는 학교 문예지? 에 큰 아이가 착하다고 글까지 썼던 아이라서 나는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선행을 하는지에 대해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래도 선생님.. 반평균을 이렇게 내는 건.. 좀..이라는 소리를 했는지 마음속으로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왜 그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열심히 아이들의 평균을 내셨는지 알게 되었고 그 샘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큰 아이에게 집에 와서 물었다.

"많이 힘들었지? 힘들지? 괜찮아?"

큰 아이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리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혹시 과외나 학원 가고 싶으면 말해. 엄마가 알아볼게,라고 말했지만 큰 아이는 됐다고 자기가 혼자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예전에 살던 강남과 현재 살고 있는 강북의 학원에 전화를 해서, 동네에 붙어 있는 과외교사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의 여러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

다른 sns에 중학교 축제 때 큰 아이의 사진들이 보였다. 그때는 학교 축제에 가서도 '잘 지내고 있고만 재미있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큰 아이가 댄스 동아리를 한다더니 댄스 하는 친구들 무리에서 그것도 센터에서 신나게, 하지만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열심히 성실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즐겁다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 전이라고 올라온 그 사진에는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없고 상기되어 있는 게 명확히 보였다.

나는 그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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