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사들의 '틀'은 누가 만든 것인가
고정관념 시리즈 6
중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의 이야기를 귀에 담기 시작했다. 아이가 계속 울고 또 울었다.
나도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고 ‘설마, 지금이 내가 학교 다녔을 때와 같은 때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에이~ 다 그렇게 크는 거야. 무슨~~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는 말을 했지만 아홉 달만 채우고 나온 순둥이 막내만 신경 쓰느라 큰 아이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여간 미안하기도 했다.
원래 학교를 잘 찾아가는 엄마가 못되지만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학교 회장 엄마와 연락이 닿아서 아는 엄마와 함께 학교 운동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엄마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모 대학교 영재원에서 큰 아이가 대표 선서를 한 날이었다. 그렇게 만난 그 엄마는 “ㅇ반 맞지요?”라고 말씀하시며 나와 큰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한 엄마였는데 큰 아이가 대학생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그 엄마의 학교 경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아니, 내가 아직 현실을 잘 모른다고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하는 게 더 알맞은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체육 대회 날로 돌아오자면, 큰 아이는 여념 없이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고 이때다 싶어서인지 화장도 예쁘게 하고, 아이들과 맞춘 노란색 심슨 바지를 입고, 목에는 자기 반 응원카드를 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잘 지내는구먼 뭐’라고 생각하고 엄마들과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렸다. 너무 학교를 안 오는 엄마로 보일까 봐 얼굴을 디밀고 인사를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 같다. 그 이후로 나는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사는 시간이 가능할 때마다 거의 찾아가려고 했다. 학교에서 오는 통신문 위주로 전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시험감독, 참관수업. 많이 참여한 줄 알았는데 그래 봤자 고작 두 개밖에 안된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익명으로 전화를 했던 엄마이기도 했다. 내 인생에 큰 아이 학교에는 두 번 전화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큰 아이는 중학교에 가서는 절대 학교에 전화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아직도 변하지 않은 건가, 아이는 왜 자꾸 힘들어하고 울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루는 큰 아이가 울며 집에 돌아왔다.
분명 무엇인가 학교에서 일이 난 게 분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 음악시간에 있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학교에 전화를 하여 나는 진짜 묻고 싶은 말을 했다.
“선생님! 아이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학교에 보낼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학교에 가고 싶어서 갔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목소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사춘기 아이를 앞에 세워놓고 노래 시험을 보면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라고 말이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 음악교사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담임교사가 되기 싫어서 이렇게 음악교사가 된 거예요. 지금 성적 때문에 전화하신 거 맞죠?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어요?”라고 묻는데 할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하려 노력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대뜸 문자를 드리고 최대한 빨리 학교에 가서 인사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렸고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주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아직 부족한 엄마이기에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달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였다.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이가 행복하고 아무 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먼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음악 교사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아직도 큰 아이는 “나는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말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큰 아이는 자신의 몸이 악기라며 노래를 즐겨 불렀다. 어릴 때는 발레를 가르치고 싶어서 발레학원을 데려갔을 때 혼자 다리 찢기가 어렵다고 엎어져 있던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했고, 젊은 교사가 좀 말을 험하게 하는 모습에 주눅 든 큰 아이를 보고 집에 있던 악기를 더 이상 안 시키기도 했다. 점점 주눅이 들어가는 게 꼭 내 잘못 같아서 마음 편히 놀라고 이것저것을 사실 시키지 못했다.
최근에는 곰 세 마리 노래가 흘러나와서 그 소리를 향해 가보니 큰 아이가 우쿨렐레를 가지고 연습을 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주저앉아 엄청 웃어버렸다. (그 이후로 큰 아이는 우쿨렐레를 꺼내서 연습하지 않아서 같이 연습하자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그다지 취미가 없는 큰 아이의 취미 중 하나인 ‘노래 부르기’에서 사춘기로 막 진입한 초등 고학년 아이가 얼마나 속상했을지에 대한 생각을 그 담당 음악교사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다른 이유로 초등학교에 전화를 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전화였다.
“엄마, 학교에서 선생님이 배우지 않은 걸 냈는데 시험에 나왔어요”라는 말을 듣고 아이의 말을 100% 신뢰하고 학교에 전화를 해서 교장선생님을 찾았다. 그럼 보통은 교감선생님이 나오신다. 그 교감선생님은 “어머님은 몇 학년 몇 반이라고 말 안 해주실 거 같은데 아이 이름과 학년 반을 알려주시겠어요?”라고 물으셨을 때도 “선생님 같으면 지금 상황에서 아이 이름과 반 번호를 말하기 주저할 거 같지 않으신가요... 저는 저희 아이가 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진짜 배운 것에서 시험 출제를 하신 것인지, 아니면 배우지 않은 곳에서 문제를 출제하신 것인지를 확인하시고 앞으로는 배운 것에서 출제를 하주십사 부탁드리려 고민하다가 연락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흔쾌히 교감선생님은 내 말에 공감을 해주시고 감사하게도 그 이후로는 배우지 않은 것에서는 출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배우지 않은 것을 출제하지는 않으셨지만, 아이들의 시험성적을 평균을 내서 A등급과 B등급으로 나누셨다. 아이는 이상하게 손발이 점점 차가워졌다. 매번 손을 잡을 때마다, 스칠 때마다 손이 아주 많이 찼다. 아이가 내게 속내를 잘 이야기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체험할 수는 없으니 학교에서 담임교사와 상담이 있는 날만을 기다려서 물어보려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교사를 만났고 아이가 커가면서 그 교사가 한 행동이 이해는 갔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을 등급을 나눈다고 아이들이 더 잘하거나 더 잘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탓에 나는 아이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눈을 뜰 수가 없다는 것, 그 이유는 여자 아이들이 미스트를 너무 많이 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친한 친구가 펜(공부할 때 쓰는 펜)으로 눈두덩이를 펜으로 칠해서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크고 있구나’를 느끼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친구와 저렴하고 품질 좋은 화장품 브랜드를 찾아서 같이 하나 사서 연습도 해보라는 조언도 해줬다. 단, 학교에 갈 때는 하지 않기를 해야 엄마처럼 담임선생님께 불려 가서 혼나지 않을 수 있다는 약간의 팁도 주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파마를 자꾸 해주셨다. 1년에 한 번씩은 파마를 했던 것 같은데 정말 티가 나지 않게 안으로 단발머리가 쏘~옥 들어가는 것처럼만 보이게 하는 파마를 담임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 알아보셨고 나는 바로 교무실로 직행하게 되었다. 떨떠름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흘끔 보시더니 “너 머리에 뭐했지?”라고 물어보셔서 “네”라고 말했다. 아주 당당하게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기에 그저 담담하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여간 마음이 어려웠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내가 내 머리에 티 안 나게 파마를 하고 오겠다는 게 무슨 이렇게 교무실까지 올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아주 깔끔하게 머리를 묶고 집에서는 파마가 최대한 빨리 풀릴 수 있도록 빗질을 아주 많이 했던 것을 기억한다.
드디어 시험 참관일이 되었다. 나는 처음 보는 엄마들이 대다수였지만 도서관에서 만난 어느 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앉아서 학교 지침을 따랐다. 나는 중3반, 시험감독으로 배정이 되었는데 5분이 지나서 교실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아줌마가 벌써 앉아 있으면 가뜩이나 시험공부로 마음이 어려울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조그마한 여학생이 오더니 "외숙모~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던 게 아닌가. 큰 아이의 사촌이 시험 전에도 인사를 와서 참 고맙기도 했고 나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봐라. 정말 응원할게!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담당 교사가 왔고 내가 어릴 때 보던 그 omr카드와 검정펜들이 눈에 띄었다. '잘 봐라 애들아 힘내라!'라는 응원의 말을 속으로 하며 아이들에게 행여나 방해가 될까 봐 숨죽이고 앉아있으려는 그때 담당교사는 두 명의 남자아이들을 계속 지적하며 뭐라고 했다.
"야!! 너희 둘 똑바로 앉아!!" 아니 내 눈엔 아주 똑바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3이 되었으니 덩치가 산만하게 커져서 아이가 앉아 있던 의자도 작았고 책상도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러니 거기에 자신을 꾸겨 앉아야 하니 아이들은 여간 몸을 뒤로 빼고 앉아 있어야 하는 거처럼 보였다. 내 눈에는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여기까지 주의를 주실 줄 알았던 그 교사는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서 다시 주의를 주었다. 내가 뒤에서 본 두 아이는 시험 문제를 성실히 풀고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아 보였다.
역시 omr카드를 쓸 때는 나의 어릴 적 같이 omr카드에 옮겨 쓴 아이 한 명은 20분이 남기고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그 교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역시 나 때와 별반 그다지 바뀐 게 없는 것만 같았다. 좀 바꿔주지 omr카드도 많이 남았던데.
이 교사의 ‘틀’은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