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수님의 말씀
여러분의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Do not embitter your children, or they will become discouraged.
- 골로새서 3:21
아이들 간의 교육경쟁, 등급 나누기, 왕따, 중2병, 초등생 우울증, 학교폭력, 대학생 우울증.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사람 됨됨이보다 경쟁심리를 더 과열시켜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아이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들은 누구일까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들의 현주소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랜만이네. 학교생활은 어떠니?"
"어휴! 힘들어요."
"뭐가 힘드니?"
"우리 학교 여자 아이들이 좀 무서워요. 갱단처럼 똘똘 뭉쳐 다니면서 왕따 시킬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 놓곤 해요. 그러면 반 아이들이 그 아이 앞을 지나면서 한 대씩 때려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아서 안 때렸더니 잘난 척한다고 막 괴롭히더라고요."
"힘들겠구나! 또 뭐가 힘드니?"
"우리 반 아이들이 다 욕을 하거든요.
전 욕하고 싶지 않은데 안 하면 잘난척한다고 괴롭혀요."
"너희는 여자애들이 무섭니?"
"네!"
"뭐가 무서운데?"
"때려요! 꼬집어요! 발로 차요!"
한이 맺힌 듯 몇 명의 남자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답합니다. 우린 그저 함께 웃지만 웃음 끝엔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너희 학교 생활은 어떠니?"
"우린 소년원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왜?"
"소년원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인성교육이라는 걸 받을 수 있잖아요."
"우리 학교는요, 인성교육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어요.
오로지 공부만 중요하거든요."
"공부 잘하면 웬만한 잘못은 선생님들이
다 눈감아 줘요. 반면에 공부 못하면 죄인이지요."
"너희 학교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뭐로 푸니?"
"친구들 험담이나 욕하면서요. 하하. 우린 화장실도 못 가요.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바로 제 욕을 하거든요."
- 《그래도 괜찮아》 중
문득 어느 엄마가 한없이 울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 엄마는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저녁밥을 챙겨주고 24시 햄버거 집에서 몇몇 엄마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대회 준비를 시켰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4시간, 안될 때는 6-8시간 이상을 학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그 아이는 스스로 자기 의자와 몸을 꽁꽁 묶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마음을 참아야 할 정도로 자살 충동이 심했다고 한다. 이런 아픔을 나누며 서럽게 우는 그 아이의 엄마에겐 이보다 더 깊은 상처가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커가며 스스로 공부하기를 바랐다. 사실 큰 아이는 어릴 적 한 두 달정도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했다. 큰 아이들의 친구들 중 등수를 정하여 서열화하는 학원 분위기로 인해 힘들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큰 아이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아... 난 학원 안 가서 더 나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요...”라는 말도 했다.
막내가 학교에 입학한 후 큰 아이와 나는 학원을 안 가기로 결정한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가 입학한 학교의 대다수 아이들은 사교육이나 영어유치원을 일찍 접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교육열이 굉장히 높았다. 막내는 쉼 없이 공부했다. 학교에서 쪽지시험과 대회도 많았고 정말 많은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있었지만 그건 우리에겐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막내에게 학교에서 봐야 할 시험 공부를 시키는 동안 나와 막내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막내는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지쳐만 갔다.
막내는 반 친구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서성거리며 책상 밑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체육시간에는 지침을 따르지 않은채 자꾸 뛰어다니며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막내는 “엄마, 아이들이 자꾸 싸워요. 오늘도 싸웠어요. 발로 차기도 하고 손으로 때리기도 하고...”라고 말해서 ‘나는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폭력을 쓰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할 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바쁜 부모님으로 인해 교과목이나 교우관계에 대한 상담을 하거나,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따뜻한 말보다 체벌이나 훈육이 먼저였다. 과외교사를 붙여주시던 부모님으로 인해 사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과외교사와 나, 이렇게 기억한다.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나는 점점 부모님과 말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저녁밥을 먹을 때 동생에게 내가 좋아하는 짝꿍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시험을 본 후에는 나를 위한 파티, 즉 축하(celebration)를 스스로 하곤 했다.
나는 공 테이프를 사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노래들을 녹음하기도 했고 혼자 방에서 키드득 거리며 소설책 읽기도 좋아하던 소녀였다. 그리고 한류 열풍처럼 홍콩 열풍이 있었던 시절, 나의 첫사랑 장국영이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를 용돈을 쪼개가며 빌려서 보았다. 너무 좋아해서 인지, 어느 날 어머니는 집에 있는 TV의 연결 코드를 아예 뽑아 버리셨다.
하루는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집을 가다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만화방 간판이었다. 원수연 작가의 주옥같은 그림에 멋진 말들로 수놓은 만화책을 찬찬히 여러 권 읽다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 여유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가뿐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난리가 나있었다. 내가 행방불명이라도 된지 알았는지 학교로 전화를 걸고, 아주 집안이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건 매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드시던 그 회초리를 어머니가 더 이상 들지 않는 것이었다. ‘오호~ 자주 이런 나만의 파티를 해야겠구먼...’이라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조용히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원하지 않는 과외도 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마음이 안 좋았던 점은 꽤 상위권이던 내 성적이 점점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을 가르쳐주던 언니가 없어지니 정말로 난감했다. 내 스스로 문제를 풀 힘이 없었던 것이다.
모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대학생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학원교사를 연결해주고 학점관리도 맡긴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가야 할 때 혼자 해결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에게 과외 교사를 연결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자녀들을 홈스쿨링 하시는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 왜 홈스쿨링을 하시나요?”
그 교수님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라는 아주 짧은 답변을 주셨다.
출처: 《그래도 괜찮아 》- 김중원 하신 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