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패러독스

저 멀리 저 먼발치에 있는 꿈같은 이야기

by 나무엄마 지니

행복의 뜻을 살펴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뉴스나 여러 연구에서는 행복감이 낮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국 아동,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 삶의 만족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물질적 행복, 보건과 안전, 교육 등의 객관적 지표는 중상위권에 속하지만 유독 주관적 지표인 행복감에서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연 왜 그런 것일까?


3년마다 실시하는 PISA(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수학, 읽기 등의 영역에서 최상위 수준을 나타냈다. 하지만 정의적 평가 영역인 자신감, 불안감, 흥미, 동기부여 등의 영역에서 최하위 수준을 나타냈다. 일반적으로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은 정의적 평가 영역인 자신감, 흥미 등의 영역에서 높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그래야 말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자신감, 흥미, 자아효능감 등의 영역이 낮다.


한국 청소년, 청년들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어느 통계 조사에서는 청소년, 청년 자살률보다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는 말도 한다. 이는 행복한 마음을 갖은 사람이 많이 없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아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왜 그런 것일까?


TV 채널, <판결의 재구성> 중 ‘아내의 교육열’ 때문에 이혼소송을 하게 된 사연을 보면 엄마의 교육열로 아버지가 참다못해 이혼소송을 하게 되었다. 1992년에 결혼하여 딸과 아들이 있는 가족이, 누나보다 다소 공부를 못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훈육을 넘어선 핀잔과 학대가 줄기차게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판결의 재구성>에 소개된 이 엄마는 아들에게 “공부를 못하면 죽어야 한다. 너는 안 된다”는 말을 일삼았으며 공부를 못한다고 “죽어야 편하다”라는 말도 했다. 밥을 먹을 때나 잘 때, 발로 차기도 했고 아이가 잠을 자려해도 자지 말라고 매트리스를 세워놓거나 호스로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교복을 꽁꽁 묶거나 책상을 톱으로 자르기도 했다. 이를 본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친척집에 아들을 피신시키기도 했다. 상담을 통해 “아이는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판정을 받았다.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아프고 우울한 것일까? 위의 부모처럼 왜 아이들을 소위 말해 ''를 죽이고 괴롭히는 것일까? 이는 비단 이 부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아이들은 주변 곳곳에 있다.


막내는 공부를 많이 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사교육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리 지향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로 인해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을 괴롭게 다녔다. ‘맞다. 그건 아이에게 괴로운 경험일 것이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 첫 날 부터 쪽지시험을 보았고 회색 시험지로 된 30문제 시험을 봤다. 당연히 책 읽기만 하고 한글만 쓸 줄 알고 간 막내의 자신감이 떨어졌을 것은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엄마로서 많은 고민과 자책을 하며 반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가 행복한 마음을 찾기에도 바쁠 만큼 공부해야 할 양은 점점 늘어났다.


나는 새롭게 신설된 신생 중학교를 다녔다. 학교 선생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30cm가 넘는 나무 막대기로 우리를 두렵게 하고 세상 처음 태어나서 읽어보는 ‘시’를 외우지 못하거나 빽빽이(연습장에 빽빽하게 공부의 흔적을 남기는 것)를 하루에 5-10장을 해오지 않으면 교탁 앞에 서서 맞아야 했다. 그것만일까. 사춘기에 초진입한 우리들을 교탁에 세우고 석차가 나오면 성적이 떨어진 만큼의 두 배로 때리기도 서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순하던 주변 친구들이 중학교 시절부터 방황을 했던 기억도 난다. 반면 내 동생은 내가 혼나던 동안 자신의 방에서 할 것이 없어서 교과서를 외우고 공부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부도 꽤 잘했다. 그 덕분에 나는 동생과 비교대상이 되며 부모의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부모와 학교가 같이 세트로 나를 괴롭게 했다. 자녀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의 부모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의 교육열풍이 과도하게 극에 달한 것은 아닐지 잠시 생각해본다.


한참 장마로 인해 하늘에 구멍이 난 것 마냥 비가 한없이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힐링을 한다는 이유로 해가 뜬 아침이나 대낮에 '인조 탄천'을 걸었다. 여기서 '인조 탄천'이란 인조 잔디 마냥 사람이 만들어 놓은 탄천을 말한다. 탄천길은 산책코스로 사람이 걷거나 조깅을 하기 편하도록 만들어놓은 길인데, 물줄기를 쫓아서 내려가고 올라가다 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비가 많이 온 후에 보이는 것으로 한없이 고개를 숙인 서로 다른 길이의 풀들이 눈에 띄었다.


꼭 내 눈에는 빠른 물살들이 쏟아지는 정보와 교육으로 보이고 좀 더 빠르게, 좀 더 남보다 많이 내 의지와 다르게 공부를 강요받았던 그 과거의 나와 아이들로 보였다. 어린 나와 아이들에게 행복이란 저 멀리 먼발치의 꿈같은 이야기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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