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이름다운 훈장

다신 하지 말아야 할 행동

by 나무엄마 지니

하루는 대학생, 큰 아이가 나에게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생에게 엄마가 계속해서 했던 잔소리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큰 아이는 이어서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저 학교 갈 때는 잔소리를 별로 안 하셨는데 00한테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너도 알다시피 00가 순하잖아. 순해서 치일까 봐 엄마는 걱정이 돼. 너는 걱정이 안 되는데” 라며 내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단숨에 설명했다.

요즘 '변화를 꿈꾼다'는 모토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 어불성설이었다. 나도 뭔가가 잘못된 것을 감지했는지 잔소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잔소리'는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며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짓이라고 한다. 막내가 이 각박한 사회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나의 수많은 말들이 ‘잔소리’였단 말인가! 어디에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나는 큰 딸로 어머니에게 잦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워킹 맘이셨던 어머니는 일이 끝나고 오시면 사랑의 매로 둔갑한 회초리를 드시고 “왜 공부 안 하니? 공부해야지”라고 하셨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사춘기를 호되게 보내고 있었다. 워낙 집에서 말하기를 싫어했던 나는 대뜸 “공부하고 있잖아. 안 보여?”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책상 앞에 있는 딸기 산도를 우적우적 먹으며 내 빈 마음을 스스로를 달랬다. 그 산도의 달콤함 뒤로 나에겐 매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나의 애지중지 강아지, '애니'는 새벽녘에 어머니가 던지고 나간 회초리를 물어뜯고는 배가 아파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런 내가 잔소리를 하다니....’ 그래도 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고 공부도 했다고 자부했는데 잔소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잔소리가 무서운 이유는 아이의 정서 및 인성 발달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흔히 인격모독이나 욕설이 이에 해당한다. 정서적 학대는 언어적, 정신적으로 공격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지만 부모는 학대가 아니라고 인식한다. 정서적 학대는 자녀에게 신체적 학대(체벌) 보다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치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유아기에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자녀는 초기 애착형성과 대인관계에서도 기본적인 신뢰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화로는 명령하기(command), 비난하기(criticize), 꼬리표 달기(tag), 잔소리하기(vex)가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위의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화방식이 ‘우울한 아이’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위의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머리가 띵 했다. 아니, 수영장에서 코로 물을 여러 차례 들이마셔서 코가 찡긋찡긋 아파오는 그런 아픔이었다.


최근 나는 내가 운영하는 SNS에 잔소리를 대신하여 오늘은 아이에게 격려의 말을 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나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난 큰 아이는 “우리한테나 그런 이야기 자주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뿅망치로 펑 맞은 그런 기분이었지만 ‘어떻게 사람이 한 번에 달라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며칠 뒤,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날은 내가 SNS를 운영하며 즐겁게 내 글에 대한 자랑을 아이들에게 늘어놓았을 때였다. 두 아이 다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도 당연히 내 글을 칭찬하고 격려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아이들은 내 글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며 비수를 꼽는 피드백을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알았어. 이제 그만해”라고 하며 듣기 싫은 그 잔소리를 뒤로 하고 차 문을 쾅 닫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검지 손가락이 차 문에 쏘~옥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정말 아팠다.

이 광경을 본 아이들도 난리가 났다. "병원에 가야 한다. 손에 피멍이 들고 있다"며 막내가 자료를 알아보고 그 더운 날 소염제를 사러 언니와 함께 약국에 다녀왔다.


그 후 나는 아이들에게 특히, 막내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어릴 적 막내는 참 귀엽고 밝았는데 예전보다 얼굴빛이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속이 상했던 적이 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요즘 아이의 얼굴은 나팔꽃처럼 활짝 피었다. 꽃이 잘 자라려면 햇빛과 기후, 토양 조건이 맞아야 한다. 물도 잘 주고 때론 거름도 줘야 한다. 꽃이 아프지 않게 때로는 치료를 해줘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걱정을 담은 잔소리로, 정서적 학대로 ‘우울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손가락에 큰 점 마냥 있는 이 상처가 훈장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 훈장을 보며 내가 다신 하지 말아야 할 것 1호는 ‘잔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잔소리에 대한 생각을 sns에 이렇게 올렸다.


이렇게 올린 후 다시 고민하다 아래의 글을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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