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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엄마 지니 Mar 14. 2024

내 나이가 너무 늦은 걸까..

글쓰기는 뭐니뭐니해도 자신감이다!


이 나이에 무얼 하는  건 커다란 모험일까?

나는 올해로 48세가 된다. 만으로 나이를 세어 보면 아직 생일 전이니 엄밀히 말하면 47세, 한국 나이로 치면 49세다. 반올림을 하면 50세가 된다.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뭘 하기에는 늦은 걸까? 이런 생각이 오늘 많이 들었던 날이다. 그래서 자꾸만 힘이 빠지고 눈물이 다.



어제 부리나케 유료로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오늘 내가 듣고 싶고 계획했던 걸 실행에 옮기는 첫 번째 날이기 때문이다. 여간 기대가 돼서 잠이 오질 않는지 자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한 권을 집어 들며 신나서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콘솔 옆에는 내가 읽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에세이 집이 놓여 있다. 살포시 올려놓은 책은 나를 보며 이른 아침에 싱긋 웃어주는 느낌이랄까. 사랄라~ 기분이 참 좋았다.




여기까지는 되게 좋았다. 진짜. 정말로.


나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어머니를 돕다가 휴학 중인 학교로 다시 복학을 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한국인은 받지 않는다는 짤막한 멘트를 들었다. 그리고 IMF를 맞이했고 장녀로 집에 아들 대신 내가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꾸려갔고 나머지는 어머니가 맡아서 정리를 하셨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내 나이 26살에 아이를 낳았고 큰 아이는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남편은 아이 기저귀를 말려 쓰는 나의 모습을 보며 과외 하나를 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이 부르터서 아이를 안고 있던 그 모습이 측은하다. 그때는 나와 아이만 보느라 남편의 그런 모습도 안쓰럽다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남편이 하루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너는 왜 졸업장이 없어? 한 번도 내 주변에서 이런 걸 물은 적도 없고 또 이런 일로 내가 언성을 높이며 내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미국에 다시 들어오라는 한국의 작은 국제학교에서 만난 학교 동생에게 우리 집 형편이 심상치 않다고 IMF라서 내가 도저히 유학자금을 대고 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때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영주권이 말소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어떻게든 집이 힘들어져도 내가 다시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도 후회로 남는지 눈물이 자꾸만 내 앞을 가린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게 맞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집도 힘든데 IMF에 그 커다란 기둥처럼에 서있던 집에 가득 메운 젊은 남성들 사이의 어머니를 놓고 가기에는 내가 너무 미안했다.

..

내 나이 47-48살. 하고 싶은 게 있다. 꽤 많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가서 만들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그걸 보급하고 지원하고 안내하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left-out 되는 아이들이 없이 만드는 것.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내 꿈이고 목표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새로운 걸 시작했었다. 그런데 저번부터 내게 왜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사람이 2급 자격증을 따지 않았느냐는 이야기와 함께 상담을 하면 할수록 내가 뭔가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사회복지 자격증은 한 과목 그리고 실습을 하면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오늘 드디어 기다렸던 수업을 듣기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상담을 하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생기는지 자꾸 질문을 하는 내가 왜 계속 그 질문이 해소가 안되는지 답답해서 상담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그 느낌은 내가 너무 부족한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가 나이가 많지.. 내가 나이가 많은데 꿈이 많은 거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눈물이 자꾸만 났다.


내 나이에 꿈이 큰 건가.. 내 나이에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키운 아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내 이야기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부모에게 생각을 열어주는 걸 한다는 그 꿈과 프로그램을 보급한다는 그 꿈이 너무 큰 꿈일까.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내게 응원 사진을 보내줬다.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다 :)


아이들을 나는 이렇게 키웠다. 내가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아이들을 아우르는 단어는 영재와 영어 그리고 스스로 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공모전에서 상도 탔다.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그렇게 내게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이런 말을 한다. 대학원 논문 쓸 때도 이런 말을 했는데


"뭐든 때에 맞춰서 해야지. 안 그럼 엄마처럼 힘들어 힘들어.."


이런 하소연에 아이들의 방긋 웃는 모습의 사진과 아이들이 주변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게 마음을 다시 잡게 한다. 그래 해보자고. 글쓰기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감이야! 큰 아이가 알려준 성경 구절, 나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를 자꾸만 입으로 말해본다.



사과값이 계속 치솟고 있다. 그에 상응하게 사교육비도 치솟고 있다. 운동을 시작한 곳의 원장님(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렇게 부른다)이 내게 해준 말이 귓가를 맴돈다. 가난이란 게 뭘까. 요즘 물가가 너무 오르고 사교육(나는 이 사교육을 무분별한 과도함이라 표현한다)은 넘치다 못해 한 빌딩에 여러 개의 학원들이 즐비하다. 지나가며 나는 애들 저러다 죽지 죽어 이런 소리를 나도 모르게 한다.



방금 이 노래를 듣고 힘이 나서 이 노래 올려 보아요.


https://youtu.be/mBXBOLG06Wc?si=Q14StGebmakSaM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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