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
넷이나 되는 외삼촌들 중 어느 누구도 거들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풍경이다. 명절이면 여자 사촌들은 주방으로 발을 옮기고 남자 사촌들은 텔레비전 앞에 몸을 누인다. 사회적 학습의 결과물일 그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때로 유전자에 새겨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며느리를 돈 안 주고 부리는 노비처럼 여기던 시대였다. 반년 만에 아이를 가졌고 3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취업이 확정되지 않은 대학교 4학년이었다.
요즘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내는 젊은 남성들을 보며 혀를 치는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이도 애를 잘만 키웠는데 요즘 것들은 유난을 떤다고 나무란다. 그분들께 여쭤보고 싶다. 그래서 장성한 자식들과 사이가 좋으시냐고, 혹시 자식들이 엄마만 찾아 외롭지 않으냐고, 집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홀로 붕 떠 있는 존재처럼 느낄 때는 없는지를 말이다.
남성의 생애 주기에는 이렇다 할 경력단절 요인이 없다. 하지만 여성은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많은 수가 직장을 잃는다. 경력단절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지식노동자도 여성이라서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
"남자니까 잘 모르잖아요. 배워야죠."
각성이 일었다.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니까 배워야죠' 그 말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남의 일이라 무심할 수 있지만 남의 일이라 배울 수도 있었다. p. 58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강력범죄 피해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여성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남성이 다수인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수치다. 그래서인지 남자도 다른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할 때가 많다. p. 60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는 학력 수준이 무척 높은 곳이었다. 페미니즘 분야의 글을 종종 다뤘을 때도 여학생 반에서는 제법 반응이 좋았지만 남학생 반에서는 이따금 볼멘소리가 나왔다.
강남역 사건을 보고 다수 남성들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여성들의 공포에 공감하지 못했다. 선량한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한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더 말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멈추면 안 됐는데,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도 지금 이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이 반복됐다. 나도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백인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동양인을 살해했다면 여섯 명의 백인을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동양인을 살해했다면, 그리고 동양인이 나를 무시해서 죽인 거라 답했다면, 그에게 조현병이 있으니 동양인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했을까. 아직 한국에서는 혐오범죄가 인정된 바 없으니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여성 혐오 살인사건'으로 명명한 뒤 벌어질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에게 출산은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남편은 큰 소리를 친다. "낳아만 주면 내가 다 키울게!" 뉴스에서는 수시로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를 외친다. 저, 고, 저, 고! 이대로 가면 2750년에 대한민국이 소멸된다니 내 잘못인가 싶지만, 계산해보니 통일신라 백성이 조선왕조 망할까 봐 걱정하는 꼴이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백인 대학교수이다. 하지만 그는 흑인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싸웠고, 투표권을 요구하는 흑인 대오의 선두에 섰다. 반복된 해직과 투옥 앞에서도 일관되게 지켜온 그의 신념에 다른 많은 백인들도 하나둘 감화됐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피부색이 다른 이를 위해 한평생 싸웠던 그를, 자기 이해 대신 신념과 정의에 따라 움직인 그를, 인종차별 철폐에 전기를 마련한 그를 '현대사의 양심'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p. 102
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