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

by 나무엄마 지니


넷이나 되는 외삼촌들 중 어느 누구도 거들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풍경이다. 명절이면 여자 사촌들은 주방으로 발을 옮기고 남자 사촌들은 텔레비전 앞에 몸을 누인다. 사회적 학습의 결과물일 그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때로 유전자에 새겨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며느리를 돈 안 주고 부리는 노비처럼 여기던 시대였다. 반년 만에 아이를 가졌고 3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취업이 확정되지 않은 대학교 4학년이었다.


요즘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내는 젊은 남성들을 보며 혀를 치는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이도 애를 잘만 키웠는데 요즘 것들은 유난을 떤다고 나무란다. 그분들께 여쭤보고 싶다. 그래서 장성한 자식들과 사이가 좋으시냐고, 혹시 자식들이 엄마만 찾아 외롭지 않으냐고, 집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홀로 붕 떠 있는 존재처럼 느낄 때는 없는지를 말이다.


남성의 생애 주기에는 이렇다 할 경력단절 요인이 없다. 하지만 여성은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많은 수가 직장을 잃는다. 경력단절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지식노동자도 여성이라서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또 다른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기에 앞서 먼저 페미니즘에 관해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대해 알고자 읽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과 서점에 가는 길에 페미니즘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여간 나의 생각이 라떼=꼰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이고 여자이다. 여자는 이뻐야 하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이쁘고 여자는 머리를 짧게 자르면 이상하게 보인다고도 생각하는 그런 엄마이다. 여자는 늦게 다니면 안 되고 여자는... 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고리타분하게 잘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00니즘이 붙은 단어는 사실 조금 거리가 많이 느껴지기도 한다.


페미니즘.

나는 페. 미. 니. 즘.

이 단어의 ㅍ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나름 사고관이 깨어 있다고 자부했는데 여전히 갈길이 멀었다는 걸 느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배경에는 곧 리뷰를 해야 할 여성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기에 앞서 페미니즘의 ㅍ자도 모르는 내가 최소한 책을 소중하게 보내주신 출판사와 그 책을 소중하고 신중하게 썼을 작가분과 거기에 나오는 여성분들께 드리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고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의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보고 왜 여자는 저렇게 힘들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남자인 작가분이 가정 일을 도와주면 생각 있는 남자라고들 말하지만, 여자 사촌이 도와주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 작가분도 남자 후배가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여자도 아닌데 웬 페미니즘이냐는 질문에 남자 후배는,


"남자니까 잘 모르잖아요. 배워야죠."


각성이 일었다.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니까 배워야죠' 그 말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남의 일이라 무심할 수 있지만 남의 일이라 배울 수도 있었다. p. 58


이 책에서는 여러 여성 관련 사건들도 나온다. 누구나 다 아는 강남역 사건, 그리고 그 외에 여성 관련 데이트 폭력도 언급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강력범죄 피해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여성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남성이 다수인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수치다. 그래서인지 남자도 다른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할 때가 많다. p. 60


이 짧은 문장이 참 많은 것을 내포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남성인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피해자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 작가분은 이런 여성 관련 사건 이면에는 더 본질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문제의 본질은 깊숙한 곳에 존재한다.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는 학력 수준이 무척 높은 곳이었다. 페미니즘 분야의 글을 종종 다뤘을 때도 여학생 반에서는 제법 반응이 좋았지만 남학생 반에서는 이따금 볼멘소리가 나왔다.


강남역 사건을 보고 다수 남성들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여성들의 공포에 공감하지 못했다. 선량한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한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더 말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멈추면 안 됐는데,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도 지금 이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이 반복됐다. 나도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 TV에서 한 여성이 다소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데 남성들의 반응을 촬영한 영상을 봤다. 하나같이 그 여성에게 밀착해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어떤 백인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동양인을 살해했다면 여섯 명의 백인을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동양인을 살해했다면, 그리고 동양인이 나를 무시해서 죽인 거라 답했다면, 그에게 조현병이 있으니 동양인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했을까. 아직 한국에서는 혐오범죄가 인정된 바 없으니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여성 혐오 살인사건'으로 명명한 뒤 벌어질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한없이 써 내려간 글들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여성에게 출산은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남편은 큰 소리를 친다. "낳아만 주면 내가 다 키울게!" 뉴스에서는 수시로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를 외친다. 저, 고, 저, 고! 이대로 가면 2750년에 대한민국이 소멸된다니 내 잘못인가 싶지만, 계산해보니 통일신라 백성이 조선왕조 망할까 봐 걱정하는 꼴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결혼을 안 하려는 경향이 더 높다.


이 책을 보며 왜 남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변해갔고 변하였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순수했던 남사친들이 왜그리 능구렁이들로 변해갔는지, 왜 대학시절 만났던 남편은 점점 변해갔는지, 그 친구들은 왜 저렇게 변하였는지, 를 이 책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들도 그런 게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겠구나'를 생각하니 원망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백인 대학교수이다. 하지만 그는 흑인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싸웠고, 투표권을 요구하는 흑인 대오의 선두에 섰다. 반복된 해직과 투옥 앞에서도 일관되게 지켜온 그의 신념에 다른 많은 백인들도 하나둘 감화됐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피부색이 다른 이를 위해 한평생 싸웠던 그를, 자기 이해 대신 신념과 정의에 따라 움직인 그를, 인종차별 철폐에 전기를 마련한 그를 '현대사의 양심'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p. 102


이 책의 저자는 남자이며, 페미니스트이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시다. 자신의 엄마를 보며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분은 위의 글을 언급하며 많은 남성들을 독려한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의 하워드 진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엄마라서 아빠보다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지 않으며, 밤길을 걸어가도 무섭지 않게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설명한다.


이번 일요일, 나일롱 신자이지만 기독교 TV를 보며 페미니즘에 관해 잠시 언급을 했던 목사님 말씀이 기억난다. 생명의 소중함. 이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여성이라고 모든 걸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함께 이해하고 서로 남녀 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가는 사회를 소중하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 학회에서 외국 여성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한국에 오면 신문을 보는데 유럽 선진국에서는 여성이 정치 활동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더불어 남성들도 여성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좀 더 행복하고 밝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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