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유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여성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요.

by 나무엄마 지니


이 책의 추천사를 보면 페미니즘 입문서로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가볍게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1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2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들리는 비명, 3부 ‘도구’로만 존재하는 여성의 자궁, 4부 용서받은 자들 뒤에 용서한 적 없는 이들, 총 4장으로 나뉘었다.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1부는 5개의 작은 제목으로 나뉘는데 1) 뜬눈으로 영상을 지우며 여자는 날마다 죽었다 – 일상이 지옥이 되는 디지털 성범죄, 2) 저항하다 처벌당한 피해자의 56년 만의 미투 –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력 재심 청구 사건, 3) 그녀는 왜 임용 10개월 만에 죽음을 택했나 – 직장 내 성희롱이 불러온 죽음과 공무재해, 4) 15세 소녀는 왜 성매매 범죄자가 되었나 – 아동, 청소년 대상 성착취와 자기 결정권, 5) ‘조주빈들’을 키운 사회적 자양분 – 26만이라는 충격, 텔레그렘 n번방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만 읽어도 어떤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여기에는 힘없고 법을 잘 모르는 여성은 저자인 여성 변호사의 법적 보호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법이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상대방 남자의 혀를 깨물어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경찰은 그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했지만 검찰은 여성의 행위가 ‘과잉방위’라며 그녀를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하기에 이른다. 경찰, 검찰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초반부를 읽어나가는데 마음이 화하고 속이 아파서 1시간만 읽고 이 책을 덮어버렸다. 더욱 기가 막힌 점은 재판 과정에서 험한 일을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설득이 재판 과정에서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예상하는 바대로 이 여성은 결혼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고 130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외에도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지은이가 국방부에서 주최한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토론자 자격으로 참석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여자는 군대 갔다 오기 전에는 발언을 하지 마시오”로 2018년에도 이런 말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은이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긴장된 삶을 살아왔으며, 학생일 때도 어른이 되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뒤에도 언제 어디서나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능력이 저평가될까 봐 긴장하며 또 긴장하고 살아왔다는 문구를 보며 참 마음이 안 좋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한 권을 읽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아픈 이야기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고 그 문제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깊숙한 고정관념과 사고관이 더 마음을 아프게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1시간을 채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게 된 책이었다. 이 책은 총 3일에 걸쳐 면밀히 읽어 내려간 책이다.


1장의 목차만 보더라도 어떤 이야기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2부를 보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들리는 비명으로 소분된 내용은 총 4개로 구성된다. 1) 죽어도 조롱당한 ‘죄 많은’ 여자 – 가정 내 여성에 대한 지독한 폭력, 2) 호주제 폐지 후 정말 ‘큰일’이 났는가 – 동등하게 가족을 구성할 권리, 3) 낳아놓고 부정하는 아빠들을 추적하다 – 배드 파더스 초상권 침해 주장 사건, 4) 감히 한국 남자와 만나고 헤어진 죄 – 법정에서 결혼 이주 여성 잔혹사로 이루어져 있다. 2부를 보며 여성을 무슨 짐짝 다루는 자신의 분풀이 대상으로 대하는 남성들을 보았고 아무리 그 올가미를 풀고 나오려 몸부림쳐도 죽음으로 삶이 끝나야 되는 한 여성의 억울한 삶도 간접적으로나마 글로 알게 되었다. 수많은 이혼한 아버지들이 아이들의 양육비를 주지 않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그런 내용의 글들. 우리나라보다 좀 더 힘들게 사는 아시아계 여성들을 상대로 한 이주 여성들의 피해는 참 가슴이 아팠다. 20대 초반에 필리핀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젊은 필리핀 여성과 사귀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꼭 모든 걸 책임질 것 마냥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무책임하게 아이까지 낳게 하고 친부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젊은 한국 청년을 보며 ‘참 무책임하다. 어찌 저러고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먼 필리핀에서 친부를 거부한 아버지를 찾아온 필리핀 여성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와 똑 닮은 아가를 보고도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 이 젊은 남자는 과연 누가 만들었지 생각하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만일 내 조카였다면 꿀밤을 여러 번 줬을 것만 같고 내 아들이었다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당당히 책임을 지고 사회의 통념을 잘 이겨내라고 응원을 해줬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젊은 청년은 한국에 돌아가서 가족의 반대에 이렇게 마음이 돌아선 것이었다. 이런 남자를 보고는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3부는 ‘도구’로만 존재하는 여성의 자궁으로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1) 여성의 고통은 외면하며 생명권을 말하는 위선 –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위협하는 낙태죄, 2) 여성들에게도 빵과 장미를 – 계속되는 낙태죄 처벌의 위협, 3) 낳는 것도 키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는 미혼모의 권리, 4) 간절한 목소리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 “ - 여성과 아동의 권리는 없는 입양제도, 5) 국가와 자본이 자궁에 침투할 때 – 법 밖에 방치된 대리모와 난자 채취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은 혼자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 어찌 손뼉이 소리가 나려면 두 손을 다 사용해야 박수소리가 난다. 단순히 생명의 소중함이 중요하기에 주홍글씨 마냥 어린아이들을 미혼모라는 딱지를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져서 이렇게 힘없는 어린 여자아이들과 아가들만 남아 있을지를 생각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2020년 8월 21일 법무부 양성평등 정책위원회의 권고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위원회는 ‘낙태죄 폐지 이후 낙태에 대한 완전 비범죄화와 평등, 건강, 안전, 행복하게 여성이 임신, 임신 중단, 출산할 수 있는 권리보장과 실질적인 생명보호로 법,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권고하였다. p. 183


교회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미혼모 보호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도 여럿 있다. 어린아이들이 이 변하지 않은 세상에서 미혼모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미혼모의 아이들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지원하고 어린아이들과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무조건 낙태법 폐지 반대를 주장할 수가 있을까.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낙태법 폐지 반대를 무조건 적으로 찬성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 문제는 깊은 이면에 존재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4부는 용서받은 자들 뒤에 용서한 적 없는 이들로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 미군 기지촌 위안부들, 군대 내에 벌어지는 여성 관련 사건들, 코로나 시대에 조용히 치워지는 여성 노동자들, 마지막으로 여성 노동자 탈의 투쟁과 ‘수지 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역사 앞에 힘없는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책에서 다룬 사례들은 너무 고통스럽고 비참하기까지 한 예가 없지 않지만, 너무 비관적으로만 읽히지 않길 바란다. 현실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이 책은 고통에 쓰러지지 않고,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피해를 드러내고 끝내 지는 경우에도 가장 끝까지 싸워낸 여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p. 12


대한민국 법조계의 큰 선배인 그가 던지는 질문들인 이 책을 읽다 보면 같은 여성 법조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규범체계 아래 내밀하게 자리 잡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내러티브에 절절히 공감함과 동시에 판사로서 내가 이 구조적 차별과 배제를 공고히 하는 데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사법은 다수가 행하는 차별에 맞서 소수자, 약자의 권리를 보장해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는 주류가 가지는 편견을 규범 해석에 그대로 투영시키는 오류를 왕왕 범해왔기 때문이다. p. 8


이 책에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저자의 간절함이 곳곳에 서려 있다. p. 9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삶의 지혜로 통용되는 사회다. 특히 전문가일수록 중립이라는 이름 뒤로 숨은 편이 훨씬 더 크게 이득이 된다.” p. 5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요.



이렇게 소중하게 보내주신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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