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믿음인가?>

by 나무엄마 지니


<왜 믿음인가?>


(노래는 ‘나는 예배자입니다’로 올렸습니다,)


사실 며칠 전 일로 마음이 꽤 다운이 되었다.

하지만 삶이란 오늘을 어찌 빚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꽤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혼나기도 꽤 많이 혼나고 자랐다.

물론 남의 말은 철썩 같이 아무나 믿지도 않는 꽤 까칠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는 꽤 무정하기도 하고, 또 어릴 때는 성실한 동생에게 꽤 장난을 많이 치기도 했다.

그럴만하면 나를 싫어할 만도 한데, 동생은 나를 꽤 좋아하는 거 같다.


이 책은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지만,

사람은 잘 믿지 않는 내가,

철썩 같이 믿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그리고 지금 나의 상황에 아주 절묘하게 잘 맞는 그런 책이라 두란노에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하늘만큼 땅만큼 크다.


동생은 셀장?인지도 하고, 교회에서 어지간히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데 문득 내비치는 말에는 하고 싶지 않은데 순종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 나는 그냥 교회에서 모든 것을 시킨다고 다 하지는 말라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내가 DTS에서 한참 전에 간증한 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그 녀석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게 취미라 내 말을 또 구워삶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동생이 ‘코람데오’라는 단어를 써서 저게 뭐지 싶었는데 그 뜻을 이 책 말미에 알 수 있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자기 능력과 이성과 상식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차이가 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기에 코람데오 (Coram Deo)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같이 말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예배자의 삶의 태도는 믿음이 없는 사람의 그것과 다르게 마련입니다. 믿음은 늘 그렇게 구별되고 드러나는 법입니다.” _p.211-212


사실 이 책의 앞부분 ‘욥’에 대해 읽고는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었다.

그 이유는 욥의 삶에 아무리 많은 복이 부어졌어도 물론 훗날.

내 개인적은 느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만일 내게 그런 일들이 주어진다면 나는 하나님을 절대 다시 믿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순종이 뭐 제일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하늘에 가서도 하나님께 꽤 많이 따질 것만 같다. 만일 그렇다면.


1년 동안 매주 가려고 노력한 예배가 있다.

목사님 말씀이 좋고, 무엇보다 찬양과 기도 시간이 많아서 나를 돌아보기에는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는 찰떡같이 믿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실 미래를 그리 믿지는 않는다.

아니 믿으려 노력해도 그리 잘 믿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처럼 말씀을 암송하고 좀 더 진중하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믿음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출판사 두란노에 제공받아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토대로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이 책을 제공해 준 출판사 두란노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도 이 노래처럼 위로가 되길 바랄게요 :) 어제의 마음은 버리고 오늘은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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