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넘어 성장으로

프롤로그

by 북도슨트 임리나
어린 시절의 그림책을 기억하시나요?


내 어린 시절 그림책은 대여섯 살쯤 엄마에게 ‘넌 왜 그렇게 가르쳐줘도 글자도 못 읽니?’하고 야단맞던 그 장면에 잠깐 등장한다.

엄마의 꾸중에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보던 그 책은 분명히 그림이 있고 그 아래 한 줄 정도의 글이 있는 전형적인 아이들용 그림책이었다. 그림도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림책의 형태라는 건 확실하다. 더구나 내 인생에 있어서 책이 등장하는 최초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려니 과연 그 그림책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아쉬운 점은 바로 그것 같다. 엄마에게 야단맞던 그 상황이 아니라 그 그림책 내용을 기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우리 엄마는 그 시절 혹은 지금도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이 그림책을 나에게 글자를 가르치려는 도구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의도가 나한테도 그대로 전달되어 그렇게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 내가 읽었던 책은 대부분은 글자로 된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 집에 놓여 있던 전집들은 세계 명작 동화책, 전래 동화책, 위인전 등은 글자가 크고 가끔 삽화도 있었지만 글자 위주의 책이었고, 나이가 들수록 글자가 작고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 훌륭한 독서라 생각하던 시절이라 그림책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것이고 내가 그림책을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란 내가 대학에서 책을 분류하고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도서관학(현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현재 책을 쓰는 작가임에도 그림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 작가들 중에도 또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다고 하는 열혈 독자들 중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그림책은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씻기고, 재우고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게 되는데 아직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욕구 해결,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엄마도 아이를 따라 자신의 삶조차 본능적인 욕구만 처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책과 멀어졌던 시기가 바로 아이를 처음 키우던 일 년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가 없었을 땐 일상적으로 책과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생기니 ‘독서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먹고 자고 싸고의 사이클이 서너 시간 간격의 아이를 돌보다 보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밥 먹고 씻고 잠자는 시간마저 부족했으니 무얼 더 바라랴 싶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이에게는 책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요즘 얘기하는 ‘책 육아’처럼 어떤 책을 어떤 시기에 읽혀야 한다는 계획이나 또 아이에게 좋다는 전집을 따로 구매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지인들에게 받은 책, 내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책 몇 권을 아이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갓난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중에 유일하게 ‘책 읽어주기’가 그나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본능적 욕구 처리 외에 다소 고차원적인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그림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그림책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거고 아주 간단한 내용일 뿐이라고만 생각했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다는 단순한 생각에 머리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는 글자만 읽던 어느 날 아이가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 하는 그림책을 보면서 슬며시 웃게 된 경험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장하다 호순아’라는 제목마저 별 다를 게 없는 책이었는데, 이름에도 나와있듯 호랑이인 호순이는 어느 날 동생이 태어나서 온갖 관심이 동생에게 가게 되고 소외되는 듯했는데 마지막에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 못하던 그 동생은 정작 어른들에게는 소외되어 있던 그 누나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결론이었다.

동생도 없는 우리 애가 그 책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통해 여러 번 읽다 보니 늘 뒷전이던 ‘누나’가 마지막에 가장 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는 그 결론이 참 맘에 들었다. 그 그림책에 감동을 받게 되었고 ‘아 이런 그림책이라면 좋은데?’하고 다른 그림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진짜 어른이 되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도서관의 어린이 자료실, 온라인 서점, 심지어 중고서점까지 정신없이 그림책을 찾아다녔다.

그러자 내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책만이 아니었다. 그림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에도 온라인 모임인 ‘제이 포럼’도 나에겐 그림책의 세상의 동반자가 되었다. 특히 제이 포럼의 대표인 전은주 작가님은 나를 그림책의 세상으로 인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그림책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는데 마치 어린 시절에 별다른 추억과 고민 없이 뛰어넘어 버렸던 어른에게 다시 천천히 어른이 될 시간을 선물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성장할 것이라고 어른들은 믿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혼자 그림책을 읽을 수 없을 때, 또 그 아이들 옆에서 함께 그림책을 보는 어른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너무나 빨리 혹은 얼렁뚱땅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가끔은 멈추어 느끼고 생각하면서 진짜 어른이 되라고 아이와 함께 책 보는 시간을 선물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아이를 배신하고 말았다. 아이보다 내가 그림책에 빠져버린 것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그림책은 아이가 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읽고 아이는 읽으나마나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도 생각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우리 가족 모두 합치면 21권을 빌릴 수 있는데 내가 재밌어 보이는 책을 먼저 빌리고는 나머지를 아이에게 고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렇게 뒷전으로 밀린 아이가 어느새 책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림책이 재미없을 때는 아이도 책에 흥미를 보이지 않더니 내가 재미있어하니 아이도 덩달아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림책을 앞에 두고 왜 아직 글자를 못 읽느냐는 엄마의 꾸중에 나는 그림책에 관한 좋은 추억을 놓쳐버린 채 커버린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엄마는 ‘왜 이렇게 그림책을 못 읽니?’ 하기 전에 분명히 읽어줬던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엄마가 읽어주는 ‘추억’을 기억하기 전에 너무 일찍 글자를 가르치려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문제였던 것이다. 조금만 더 그림책을 읽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에겐 지금이라도 내 아이를 통해 다시 그림책을 통해 진짜 어른이 될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내가 어른이 되는 길목마다 부딪혔던 문제들과 그림책을 엮어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기록해 보고자 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나의 이런 과정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장하다.jpg

<장하다, 호순아!>


저자: 힐다 오펜, 출판사: 한국 차일드 아카데미, 2017


호순이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그런데 엄마, 아빠, 할머니 심지어 이웃사람들 마저도 동생만 예뻐하고 동생 이야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되는데….

그 첫마디가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라고 호들갑을 떠는데

그 첫마디는 바로 ‘누나’였던 것이다.

동생으로 인해 소외받던 누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은 바로 동생 호돌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호돌이는 누나 호순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둘은 함께 장난치며 즐겁게 놀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