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아이와 어른의 두려움은 다른 걸까?
벌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를 보며 진정시켜주려고
‘벌레는 널 더 무서워할 거야.’
라고 여러 번 가볍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매번 벌레를 볼 때마다 놀라서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고는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아이에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벌레는 작잖아. 그리고 벌레가 봤을 때 너는 얼마나 커 보이겠니? 그리고 밟히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누가 더 무서울까?’
그러나 돌아오는 아이의 대답은
‘나보다 엄마가 크지만 난 엄마가 무섭지 않거든. 그러니까 벌레도 내가 안 무서울 수도 있어.’
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는 우리에겐 ‘두려움’이란 것도 고정관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자신보다 크면 두렵다는 것, 자신을 해친다고 생각할 때 두렵다는 것, 아니면 그 반대로 자신보다 작으면 안심하거나 자신에게 호의적이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등등.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험하기도 전에 미리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또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두려움은 늘 작고 하찮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라는 제목의 노르웨이 그림책은 원제목이 ‘Garman’s summer(가르만의 여름)’이다. 원제로는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번역 제목을 보면 ‘어른이 되면 (두려운 것)이 괜찮을까요?’라는 내용이란 것이 연상된다. 하지만 원제에서 말하는 ‘여름(summer)’은 가 르만에게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계절이다. 노르웨이 학기는 가을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해마다 가르만의 집에는 할머니 세 분이 놀러 오는데 류머티즘과 탈장이 있는 분들이라 요양 겸 오셔서 며칠 동안 머물다 간다.
책에서는 이제 막 7살이 된 가 르만과 곧 죽음을 앞둔 할머니들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할머니들은 가르만에게 늘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다가 곧 학교 가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겁이 난다’고 한다.
가르만은 초등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다. 옆집 한네와 요한네는 글씨도 읽고 이도 빠지고 물속에 머리 넣기도 하지만 가르만은 아직 이도 빠지지 않았고 글씨도 서툴고 물속에 머리 넣기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할머니는
“나도 겁이 나는 게 있단다. 이제 곧 외출할 때마다 노인용 보행기를 써야 할지도 몰라.”라고 하자 어린 가르만은 자신의 스케이트 보드를 빌려준다고 한다. 아직 7살밖에 되지 않은 가르만은 할머니의 보행기가 자신의 놀이기구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가르만의 걱정 중 하나는 아직 이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7살인 우리 아이도 어서 이가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 중에 누가 이가 얼마나 빠졌는지가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가 빠져서 영구치가 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뭘 그렇게 기다리나 싶지만 아이들 입장은 자신의 이가 왜 빨리 빠지지 않는지 고민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들은 이가 다 빠져 버려서 틀니를 쓴다. 아이는 이가 안 빠져서 걱정, 할머니들은 이가 빠져서 걱정인 셈이다.
아이가 이가 빨리 빠지기를 기도하고 있을 때 나도 내 이가 튼튼하게 오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가르만은 또 다른 할머니에게 몇 살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농담 반 진담 반 150살이라고 대답하자 가르만은 “곧 죽어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런 것 같다며 ‘그때가 되면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 북두칠성을 지나 커다란 문에 닿을 때까지 가면 정원이 나올 거야’라고 대답한다.
가르만은 할머니에게 겁이 나냐고 묻자 ‘가 르만과 헤어지는 게 겁나지만 정원은 재미있는 곳일 것이라고’ 대답한다. 150살이란 느낌을 갖고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걸까? 싶기도 하다.
또 다른 할머니에게 묻자 겨울이 오는 것이 무섭다고 하자 가르만은 겨울에 할 수 있는 많은 놀이들을 생각하며 겨울이 재밌는데 무서운 사람이 있다고 신기해한다.
가르만은 아버지에게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오케스트라 단원인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다른 지역으로 공연을 갈 때가 두렵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르만은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새가 죽은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죽은 새를 묻으며 할머니가 죽으면 북두칠성을 지나 정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을 지나 하늘나라로 떠나겠지. 하지만 우선 지렁이가 사는 땅에 묻혀 흙이 되어야 해’라고.
7살인 가르만이 새의 죽음을 접하고 죽음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현실적인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장면이다.
가르만은 엄마에게 무엇이 두렵냐고 묻자 가르만이 앞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 큰길을 건널 때가 겁이 난다고 한다.
이제 할머니들이 떠나고 가르만은 내일 학교에 가기 위해 필통과 가방을 챙긴다.
그리고 이제 입학식까지 열세 시간이 남았고 겁이 난다…라고 끝이 난다.
7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마음, 우리가 그 두려움을 가볍게 보는 이유는 초등학교에 가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 아빠가 가족을 걱정하고 또 엄마가 아이 걱정을 하는 걸 보면 진짜 두려움의 근원은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이별’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지내왔던 익숙한 생활과의 이별이기도 해서 아이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가르만이 깨달은 것처럼 죽음이란 것이 북두칠성을 지나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 <지렁이가 있는 흙에 묻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아무리 좋은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이별>의 의식을 치러야만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가르만이 아직 모르는 초등학교, 할머니가 아직 모르는 하늘나라 정원, 모두 다 같은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대로라면 <어른이 되어도 괜찮지 않고 두려운 게 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군가와의 ‘이별’이 두려운 거고 또 그 과정에서 겪어내는 의식 같은 ‘아픔’이 겁이 나는 게 아닐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두려웠던 것이 두렵지 않아 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두려움을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 대상이 아이이건 노인이건 청년이건 상관없이 그들의 가진 다른 두려움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벌레를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 아이의 두려움은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엄마가 아이가 혼자 차도를 건너는 걸 두려워하는 걸 가장 공감하는 나의 두려움과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벌레가 뭐가 무서워?’라고 비웃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벌레가 무서워 보이지?’라고 공감부터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저자: 스티안 홀레, 출판사: 웅진주니어, 2007
보기 드문 노르웨이 그림책이다. 또 기법 또한 참신한데 ‘포토몽타주’라는 기법으로 사진과 그림을 결합해서 만든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이미지들이 시선을 끈다. 그래서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느낌이 동시에 드는데 내용은 의미가 깊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무거운 얘기이면서도 가볍게 풀어가지만 결론에서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르만의 시선으로 보는 한 계절의 짧은 이야기이면서도 그 안에는 인생의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