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견디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씩씩해요

by 북도슨트 임리나
<씩씩해요> 어른이 되어서도 듣고 싶은 말


아이가 여섯 말쯤에 유치원 버스를 타기 위해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버스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내가 꼬박꼬박 같이 내려가서 유치원 버스 타는 것을 지켜보았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의 요구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엄마와 같이 내려가야 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강력히 원했기에 며칠을 설득해 보다가 정 네가 혼자 내려가서 버스를 타겠다면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엄마가 귀찮아서 내려가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한다는 것을 버스 담당 선생님에게도 잘 말씀을 드렸다.


며칠 동안은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버스에 잘 탔다는 문자를 주시기도 했는데 그 후로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혼자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등원을 했다.


그 후로 아침에 나는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가 아이가 탈 때까지 지켜보는 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었을 때였다.

아이가 혼자 타는 것을 본 어떤 분이 우리 아이에게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가는 거니? 씩씩하구나

아마도 아이는 그분의 칭찬에 더욱 으쓱해진 느낌이었다.


씩씩하구나…

그 말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씩씩하다’라는 말은 더 이상 어른에게는 쓰지 않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씩씩한 어린이’란 말은 있어도 ‘씩씩한 어른’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어른은 씩씩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전미화 작가의 <씩씩해요>라는 그림책을 보면 마지막에 주는 ‘씩씩해요’라는 울림이 참 크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를 교통사고를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에 변해버린 아이의 일상들이 나온다. 엄마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아이.

어느 날 엄마는 함께 산에 가서 이야기한다.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라고 말이다.

그 이후로 엄마와 아이는 씩씩해진다. 엄마는 운전을 시작하고 망치질을 하고 아이는 혼자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엄마 커피잔도 치워 주고…

그리고 ‘나는 씩씩해요’라고 끝을 맺는다.


난 마지막의 ‘씩씩해요’란 단어를 보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참 씩씩하구나’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이렇게 크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탈 때 혹은 그네를 탈 때 ‘참 씩씩하구나’ 혹은 아이가 심부름을 했을 때 ‘씩씩하구나’ 했던 말들과 다른 ‘씩씩’의 의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순간순간 ‘씩씩하다’라고 했던 건 어떤 행동에 대한 칭찬이었지만 이 책 속의 아이에게 ‘씩씩함’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그 자체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만 씩씩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엄마도 씩씩해지고 있었다. 아빠의 역할이었던 운전과 망치질을 엄마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도 씩씩해지기로 한 이후에는 아빠가 해주었던 일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씩씩하다’라고 칭찬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의 행동’에 있는 것 같다. 혼자서 밥을 못 먹던 아이가 혼자 밥을 먹으면 ‘씩씩하다’고 하고 혼자 옷을 못 입던 아이가 혼자 옷을 입으면 ‘씩씩하다’고 하고 혼자 그네를 타지 못하던 아이가 그네를 타면 ‘씩씩하다’고 한다.

우리 아이의 아침 등원도 그랬다. 엄마가 같이 가던 길을 혼자 가게 되는 것이고 그걸 본 누군가가 ‘씩씩하다’고 얘기해준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어른에게는 ‘씩씩하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어른은 이미 당연히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른도 나약하다는 건 어른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씩씩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 순간 나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씩씩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씩씩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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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해요>

글/그림: 전미화 출판사: 사계절, 2010

전미화 작가의 가족에 관한 그림책은 늘 감동적이고 여운을 준다. ‘달려라 오토바이’에서는 온 가족이 하나의 오토바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고락을 함께 하는 얘기를 밝고 유쾌하게 그렸고, ‘미영이’에서는 잠시 엄마에게 버려졌던 아이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그렸다.

최신작인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는 어디선가 당신이 우울하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초인종을 누르는 공룡이 같이 춤을 추자고 하면서 시작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어쩌다 보니 춤을 추게 되고 어느샌가 자신도 다른 사람의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춤을 추자고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우울이 날아가고 즐거워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