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류시화, 하상욱 등
굳이 누구의 시인지 적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이다.
심지어 외우기도 한다.
이 시를 쓴 사람은 나태주 시인이다.
그러나 나만 그랬을까.
시는 알지만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나태주란 성함만으로 멋대로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사람들 구미에 맞춘 몇 줄 안 되는 시로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그렇게 선입견을 갖고 많이 회자되는 이 시를 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도서관에서 정해 놓은 '한 달 한 책'들이 있는데 그 책들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책 리스트와 그림책을 엮어서 강의를 만들었는데 그중 나태주 시인의 시집이 있었다.
J.H Classic 2권. 나태주 시집. 나태주 시인의 작품 가운데에서 인터넷의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는 시들만 모았다.
www.aladin.co.kr
나는 강의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었고
나태주 시인에 대해서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름에 젊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실제 나이는 78세이며 시인으로서 명성을 알린 것은 정년퇴임 후였다고 한다.
그분은 한평생 선생님으로서 팔리지 않는 시를 써오신 분이었다.
그러다가 교보빌딩 건물에 좋은 글귀를 적는 그곳에 풀꽃이 소개되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주의 '나태주풀꽃문학관'도 가보았는데 1910년도에 지어진 일본 건물로 소박한 규모라서 내가 많이 시인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풀꽃 시가 2편, 3편이 있는데 3편은 더욱 짧다.
이 시는 엄마를 잃은 손주에게 써준 시라고 한다.
그 얘기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며느리를 잃었다는 뜻이었다.
배경을 알고 나니 아 짧은 세 줄에서 하는 많은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태주 시인은 소통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실제로 풀꽃의 마지막이 그 마음이 들어 있었다.
'너도 그렇다'라는 그 구절이다.
만약 이 그 구절이 없었다면 누구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는 항상 마지막 줄이 참 멋있었다.
그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베스트셀러 시집이라고 치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후의 '류시화'시집도 그랬다.
창작시도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를 엮어서 책을 낸다는 것을 또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집을 펼친 순간 류시화 시인의 독자와의 소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다름 아닌 책날개다. 책의 표지를 보고 넘기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보통은 저자의 소개가 있다. 이걸 조금 뒤틀린 표현을 하면 작가의 '나 잘났어.'가 있다.
그런데 류시화 시인은 시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독사진이 아니라 정채봉 시인과의 사진을 실으며 애도한다.
나는 책을 많이 봤지만 이런 책날개는 처음 봤다.
어떻게든 홍보를 위해 근사한 자기소개를 하려는 책날개가 대부분이지
이렇게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책날개는 류시화 시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편집자를 칭찬해 주고 싶다. 진짜 독자를 위한 편집이니까.)
마지막으로 하상욱.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머 같은 시이지만 나는 책을 한번 보기로 했다.
앉은자리에서 가볍게 몇 권은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러다가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래서 강의할 때 나는 퀴즈를 낸다.
이 시들의 공통점은?
지금까지 수업을 하면서 답을 맞힌 사람은 없었다.
정답은 '없는 단편시집을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단순히 시가 짧은 게 아니다.
하상욱 시인은 '단편 시집'이 있다는 설정을 하고 모든 시들이 그중의 일부라는 설정을 한 것이다.
실제로 시 밑에 적힌 '하상욱 단편 시집 '살''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설정이 하상욱 시인의 다른 짧은 시와의 차별점이다.
물론 하상욱 시인은 겸손하게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 '시팔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진정 '창조자'니까.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 시집들을 읽다 보면 시 뿐만 아니라 시인들의 노력에 감동하게 된다.
물론 베스트셀러 시집이 아니라고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나처럼 '베스트셀러 시집'이 가볍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 가벼움에는 시인들의 아주 무거운 노력이 들어 있다.
그 무거운 노력이 가벼운 옷을 입고 독자를 향해 빠르게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