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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Feb 26. 2024

어린 시절 그림자를 위한 그림책 읽기

국민 어머니 배우 김혜자 씨에게 연기를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어렸을 때 일화를 이렇게 얘기했었다.

"정원사하고 연극을 보러 갔어요."


그 말이 참 멋있었다. 

집에 정원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정원사와 연극을 보러 갔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그분이 어린 시절의 '문화예술' 환경을 다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그림책으로 성인 수업을 할 때 '어린 시절'을 다루게 될 때가 많다.

그럴 때 각자의 다양한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많이 오간다.


나는 도시 출신이고, 어린 시절에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고, 용접공들과 공구 부품들을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집에 책이 있었는데 당연히 그 당시 부모님들이 들여놓던 한국명작, 세계명작이었다.

음악은 손재주 많은 아버지가 만든 전축이 있었고 세계명곡 LP가 있었다.


어쩌면 이 정도만 해도 문화 예술 환경을 어느 정도 갖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내 인생의 첫 기억은 

'넌 왜 가르쳐줘도 못 읽니?'라며 책이 눈앞에 놓여 있고 엄마에게 야단맞는 상황인데

그 기억은 오랜 시간 나의 열등감을 형성해 왔다.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한 일이 거의 없었다. 

공부가 상위권이라고 해도 나보다 더 잘하는 아이가 있으니 나는 못한다고 생각했고,

회사를 다닐 때 히트 상품을 만들어도 옆부서의 과장이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면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학교와 회사를 나와 경쟁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나는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가 아니라는 열등감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입장에선 마치 인생을 다시 사는 것처럼

기억도 못하던 어린 시절을 추리하거나 기억하는 어린 시절도 다시 해석하는 선물 같은 시간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빨리 글자를 읽고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하는 목표 아래

그림책은 글자를 익히는 용도였고 그 후로는 바로 줄글책(요즘 엄마들 사이 표현으로)을 읽었다.

그래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는 더 놀이거리가 없으니 밤새워 책을 읽는 경우도 많았다. 


전공도 책에 관한 것이고, 도서관에서 일도 했을 만큼 책과 내 인연은 끈덕지게도 이어졌지만

책은 나에게 지식이나 재미를 얻는 용도였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면서 접한 그림책에서 어느새 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읽지 못한 그림책의 한을 풀듯 

아동열람실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고 중고서점의 그림책 코너를 훑고,

도서전에 가더라도 그림책부터 챙기게 되었다.


그렇게 그림책에 빠져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해 출간한 책이 <<나를 위한 그림책>>이다.

http://aladin.kr/p/yy2sM  

그리고 많은 곳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그림책 강의를 했다.


우리 나이의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자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요즘 그림책을 보며 상상했던 것과 달리 예쁘고 기발하고 내용도 철학적이라 놀라워하며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이 행복했든 불행했든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나를 가슴 한 구석에 안고 산다.

아니면 지금의 내가 영원하 자라지 못한 그 어린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피터팬'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지만 그림자가 없다.

그건 아마도 어른은 자신의 그림자와 공존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 그림자가 나의 어린 시절의 어둠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은 모두 어린 시절의 그림자를 갖고 있다고.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림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리고 책으로 치유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직 그림책이 그저 아이들이 보는 것, 혹은 단편적 내용으로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 달만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의 독서가 중엔 그림책으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부디, 그림책으로 치유를 받은 독서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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