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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Feb 12. 2024

사랑 없는 소설, 다시 읽기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레이먼드 카버라면 <대성당>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의 명성을 가장 알린 작품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부터가 대중적이고 내용도 두 부부의 저녁 식사의 대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레이먼드 카버가 이야기하는 친근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찾아 읽으려 했더니 절판이라 이북으로 읽었다.

http://aladin.kr/p/NF9DE

이 작품은 영화 <버드맨>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은 한 때 <버드맨>이라는 흔한 영웅물 시리즈로 인기를 얻다가 지금은 인기가 사그라진 남자 배우이다. 이 남자 배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연극으로 올려 자신의 연기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보통의 관객들은 영웅물의 남자 배우는 연기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논외가 된다. 

그저 이상한 복장을 하고 나와 휘휘 젓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그런 흔한 캐릭터로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이미지를 벗어나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그런 그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품의 제목이 원래 '사랑'이 들어가지 않는 <풋내기들>이었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두 번이나 파산할 정도로 경제 상태도 좋지 않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지낸 기간도 상당하다. 그 이유는 그의 출신 배경일 텐데 그는 백인 하류층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생계를 위해 많은 노동을 했고 그러다 보니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

지금도 그렇지만 단편소설의 미국의 유명 잡지에 실린다. <에스콰이어>, <더 뉴요커> 등. 이곳에 실린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도 된다.

베스트셀러가 된 <H마트에서 울다>도 <더 뉴요커>에 실리면서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에스콰이어> 잡지의 편집장 고든 리시가 있었다. 고든 리시는 레이먼트 카버의 소설을 잡지의 방향에 맞게 혹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많이 고친 인물이다.

그럼 어느 정도로 고쳤을까?


http://aladin.kr/p/YMzNZ

이 책에 보면 고든 리시가 얼마나 고쳤는지 사진이 나온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름 아닌 <<풋내기들>>이란 책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비교해 보면 된다.

http://aladin.kr/p/h6iuq

<<풋내기들>>은 레이먼드 카버가 죽고 나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의 작품을 그대로 레이먼드 카버가 쓴 초고를 재출판한 책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소설 제목들은 완전한 1대 1 매칭한 것으로 제목이 다른 것은 오른쪽이 레이먼드 카버가 원래 썼던 제목이다.


왼쪽의 소설과 오른쪽 소설을 비교해서 읽어 보면 제목만이 아니다. 소설의 분량이 다른 것도 있고 주인공 이름이 다른 것도 있고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경우가 많다.


그중에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 <풋내기들>을 비교해 보면 결말도 다른데 전자가 갑자기 확 끝나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그래도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레이먼드 카버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것이 우리는 모두 사랑에서는 '풋내기들'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소설 중에 나온 구절이다.


물론 고든 리시가 소설 중에 나온 구절을 제목으로 잘 골랐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의문이 든다. 제목에 꼭 '사랑'이 들어가야 했을까?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란 제목자체가 많이 재인용되기도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레이먼드 카버가 원래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어설픔 '풋내기'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 <버드맨>의 도입부에도 나왔고 레이먼드 카버의 묘비명이 된 짧은 시가 있다.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가?
그렇다.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_ 원문 출처  :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이 시를 보면 레이먼드 카버는 사랑의 '풋내기'에서 벗어나 생을 마감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어려운 과제니까. 

사랑을 말하지 않고 히트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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