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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Feb 04. 2024

'헤어질 결심' 때문에 '안개' 다시 읽기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의 안개는 어디까지 흘러왔을까

안개에도 계보가 있다.

가장 최근 '안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의 안개다.

그러나 이 안개의 시작은 1964년 김승옥 작가가 발표한 소설 <무진기행>이 아닐까.


'무진'이란 도시는 가상의 도시이며, 김승옥 작가의 고향 순천일 거라고한다.

그래서 순천에 았눈 순천문학관에는 김승옥 문학관도 있다고 한다.


<무진기행>에서 '안개'는 도시의 명산물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 하인숙은 서울로 가는 꿈을 꾸며 시골 음악 선생님으로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선생님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눈치껏 '목포의 눈물'을 부르지만 졸업 연주회 때는 오페라의 '어느 갠 날'을 불렀다고 한다.

이 설정자체가 절묘하다. 눈물-안개-어느 갠 날. 제목도 제목이고 트로트, 가요, 오페라 등으로 하인숙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무진기행>을 앞으로 읽은 분들들 위해 여기까지 인숙을 소개하련다.)

http://aladin.kr/p/1F9c8

또 다시 안개는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 등장한다.

1985년에 기형도 시인은 <안개>란 시로 등단한다.


안개가 낀 동네는 '안양천'이고, 이곳을 오가는 여공들(그 당시 표현으로) 도 등장한다. 안개가 명산물이란 이야기도 있다.

여공들이란 한국 사회가 급속히 도시화 되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여성들이 가지던 직업이었다.

비단 여공뿐이 아니었다. 식모, 안내양, 그리고 몸을 파는 직업까지 여성들은 사회의 최하층에서 일을 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태거나 장남, 남자 형제들을 공부시키는 역할을 많이 했다. 우리 집 큰 이모도 공무원으로 취업해서 집안 살림에 보태고 큰삼촌 공부를 시키는데 일조했다.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제목과 상반되게 시골 여자가 상경하여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데 위에 열거한 직업들을 다 거친다.

조선작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김승옥이 각색을 했다고 한다.(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70년대 여성들의 비정규직의 실태를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https://youtu.be/PlPoTeWINSg?si=O5tXoOGi4uOtlyd9

김승옥이 각본을 쓴 영화는 물론 감독을 했던 영화도 있다.

그 중 <도시로 간 처녀>는 버스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당시의 안내양의 현실과 그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 투신도 서슴치 않는 당찬 여성을 그리고 있다. 최근에 각본집이 발매되었다. (영화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https://youtu.be/QHSN2HJiLIQ?si=lzTPhLZP2h2lJldn

김승옥 작가는 이뿐이 아니었다. 소설가이면서 영화감독 각본가였고 또 그림도 그렸다.

서울대학교 1학년 당시에 서울경제신문사가 창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사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자기가 그려보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파고다 영감>이라는 시사만화를 1년간 그렸다. 그러는 동안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http://aladin.kr/p/BF9kX

그 1여년 동안의 만화와 해설이 같이 쓰인 책이 나왔다.

이 책을 읽노라면 80년의 서울의 봄이 아니라 60년의 서울의 봄이 보인다. 그래서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었다.


2017년에 출간한 <<그림으로 떠나는 무진기행>>은 그동안 그린 주변의 문학가들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하고 낸 책이라고 한다.(소설 무진기행과는 관련이 없음)

http://aladin.kr/p/TobpZ

여기서 끝이 아니다.

<59년 후 디 파이 나인 기자의 어느 날>이라는 SF소설을 1970년도 동아일보에 실게 되는데 현재의 화상전화나 자율주행차를 예측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심지어 그 자동차 이름이 '귀요미'이다. 귀요미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김승옥인 것이다.

http://aladin.kr/p/SyCWS

이런 김승옥 작가는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과 글을 잃었다고 했다. 한국 문단의 감수성의 문체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받는 분의 이런 아이러니라니. 다행히 지금은 필담 위주의 대화는 가능하다고 한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이 만화, 영화 등을 거치는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연민, 안타까움이 참 많이 등장한다 싶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잃은 누이 동생에 대한 상실감과 자책감 때문이 아닐까.


'무진기행'의 하인숙이 그랬다. 표면적으로는 불륜이라 읽는 사람 입장에선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지만 연인보다는 여동생의 느낌이 있었고 무언가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라고 마지막에 썼다.(물론 이것은 극중 주인공의 감정이다.)


<안개>를 쓴 기형도 시인도 손위 누이를 잃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형제를 잃는 경험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공감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형제를 잃는 아픔 또한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고 그 상실감이 작품에 투영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도 그렇다. 박해일은 탕웨이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끝끝내 구해주지 못한다.  

하인숙을 구하지 못한 윤희중은 60년이 지나서도 여인을 구하지 못하는 형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무진기행>에서도 <헤어질 결심>에서도 불분명한 모든 것이 '헤어질 결심'을 실천하지 못한 여자탓인 걸까, 아니면 안개탓을 하는 남자탓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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