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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Sep 17. 2024

따로 혹은 함께 글쓰기


하나의 신, 많은 얼굴들
하나의 가족, 많은 인종들
하나의 진실, 많은 경로들
하나의 심장, 많은 기분들.
하나의 빛, 많은 투영들.
하나의 세상, 많은 불완전함들.
하나.
우리는 모두 하나.
그러나 다수.
-수지 카셈-



누군가는 말했다. 작가가 글만 쓰지 않는다면 좋은 직업이라고. 작가만은 아닌 것 같다. 회사원도 회사만 안 다니면 좋은 직업이고, 학생도 공부를 안 하면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면서도 ‘나도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글을 쓰려고 의자에 앉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탓에 누워서 영상도 보고, sns도 하고, 카톡도 하고, 게임도 하다 보면 정작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는다고 끝이 아니다. 어느 때는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첫 줄도 막막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쓰다 보면 과연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 또 결론도 맘에 들지 않는다. 어찌 됐든 초고를 끝내 놓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날 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기가 힘들다.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래도 초고를 쓸 때는 성취감이 있다. 그런데 ‘고쳐쓰기’는 지루하고 보잘것없는 내 인생을 다시 사는 것만큼이나 괴롭다. 사람은 꾀가 많은 동물이라 좋은 글이 되려면 많이 뜯어고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고치면 되지 않을까 잔머리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역시나 내 마음에도 부족한 원고가 완성된다.


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강사는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도 있지만 외롭지는 않다. 일하는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다. 그러나 글은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더구나 한두 시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책 한 권을 완성할 때는 매일 몇 시간이고 혼자 앉아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나는 3개 정도의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글쓰기 모임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나는 쓰기 전에 ‘읽기’를 강조하는 만큼 읽기와 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우선 글쓰기 모임을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글 쓰는 시간이 확보된다. 혼자 글을 쓰지만 모임에 있는 사람들도 혼자 글을 쓰고 있으리라는 상상력이 큰 힘이 된다.


나는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내가 쓰는 것보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수강생들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며 뿌듯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 글을 수강생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다. 가르치기만 하고 쓰고 싶지 않았고, 수강생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웠다.

가르치는 사람이 정작 별로 잘 쓰지 못하네.’라고 말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역지사지였다. 수강생들도 나에게 글을 제출할 때 얼마나 긴장할까 싶었다.


나는 절대 비난도 하지 않고 어떤 글이라도 괜찮다고 하지만 막상 보여주는 입장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글을 써서 수강생에게 보여준다.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 의도는 나를 보고 따라 하다는 선생님으로서의 의도가 아니라 나도 함께 글을 쓰고 있고 여전히 보여주기에는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고 있다는 동지의식에서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가장 부담되는 시간은 ‘합평’의 시간이다.

<<중급한국어>> 책에서 보면 ‘합평’이란 ‘상대방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시간’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만큼 서로의 글을 읽고 평가하는 시간은 ‘위험한’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합평의 시간이 상처가 아니라 꼭 필요한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장치를 고안했다.


첫 번째는 합평 전에 나에게 먼저 제출해서 서로 상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개별첨삭’이라는 시간으로 진행되지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빨간 글씨’로 문장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왜 이 글을 썼는지 이 글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상의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저절로 수정 방향이 정해지고 다시 고쳐서 합평의 시간을 가지면 좋은 평가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판’을 적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일단 쓰느라 노력했고 잘 썼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칭찬보다 비판을 더 크게 듣는 사람의 마음인지라 많은 칭찬 속에서 원고의 부족함이 조금이라도 이야기된다면 그 부족함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이야기가 많고 단점과 지적이 적다고 도움이 안 될 이유는 없다.


이 두 가지가 내가 합평이 상처를 받는 시간이 아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바꾼 방법이기도 하다.

합평이란 세상에 나갈 의지를 꺾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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