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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04. 2021

미니돈까스와 분홍소세지

수수부꾸미를 좋아하는 내 남편의 입맛


비교적 도시에서 자란 남편은 이상하게도 할머니 입맛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많이 먹어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수수부꾸미를 좋아한다거나, 요즘 마트에서는 잘 팔지도 않는 옛날 전병과자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빵보다는 떡을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인절미와 절편을 제일 좋아한다.


사실 먹는 것이라면 입맛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남편이지만,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과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발적으로 먹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러다 결혼한 지 3년 차가 되었을 무렵, 남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꺼냈다.


"여보, 나 미니돈까스가 먹고 싶어. 어릴 때 도시락 반찬으로 싸갔던 게 기억나서.."


거의 모든 집안일을 다 잘하는 남편이 몇 가지 못 하는 게 있는 데 그게 바로 '요리'다. 태생적으로 손이 느린 탓에 (본인 피셜 조심성 있고 신중하단다) 한 가지 요리를 완성하려면 나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은 효율성이 전부라고 했던가, 몇 년 살아보니 결국 자기가 잘하는 분야로 자연스럽게 분업화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요리는 내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해주는 대로 그저 다 잘 먹던 남편이 결혼 3년 만에 "이거 먹고 싶어."라는 말을 꺼냈다.


"미니 돈까스? 이마트에 있을 거야 주문해서 구워줄게."


뭐 해달라는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 미니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얼마나 귀여운지. 30대 중반에 회사 부장님씩이나 돼서 미니돈까스라니. 얼른 이마트몰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미니돈까스를 주문했다.


그런데 여기서 남편과 나의 생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국내산 등심으로 만든, 돈육함량이 높은 제일 비싼 미니돈까스를 주문해서 구워줬는데, 남편 반응이 영 시무룩한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원했던 건 정말 그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도시락 반찬으로 싸갔던 밀가루 함량 높은 불량식품 맛 미니돈까스가 먹고 싶은 거였다.


"여보, 이게 더 건강에 좋고 맛있는 거야"라고 달래긴 했지만, 왜 그때 그 시절 미니돈까스가 먹고 싶었던 건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미니돈까스 사건은 더 발전해 분홍소세지 사건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분홍소세지를 먹고 싶다고 하면, 나는 으레 두부봉이나 독일에서 만들어진 진짜 소세지를 주문했지만, 남편이 원하는 건 여전히 그 어린 시절 케첩 찍어먹는, 사실 진짜 소세지도 아닌 그 분홍 소세지가 먹고 싶은 거였다.


남편이 왜 미니돈까스와 분홍소세지를 좋아하는지 나는 아직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릴 적 느꼈던 따뜻함을 우리 가정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사실 미니돈까스와 분홍소세지는 요리라고 할 순 없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거나, 팬에 기름 휘휘 두르고 느적하게 구워버리면 끝나는 일.


작고 간단한 것에서 추억과 따뜻함을 찾는 남편의 마음이 참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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