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힘

커피 1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보통은 혼자 커피숍에 간다.

커피를 커피숍에 가서 마시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부터였다. 결혼을 할 때까지 커피숍에 앉을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던 시기, 일은 밤낮이 없었다. 아침 정시에 출근해 점심 먹을 시간 한 시간을 지킨 적이 없었다. 늘 바빴기에 전직원이 같은 시간에 같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와 잠시 돌아설 틈도 없이 다시 도면을 그렸다. 밤이 되어 백화점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백화점으로 투입되어 밤샘 공사를 감독(이라기보다는 뒤치다꺼리 막노동)을 하고 아침녘에 해뜨는 걸 보며 퇴근하는 날이 허다했다. 커피숍은 커녕 믹스커피를 타먹을 시간도 여유롭지 않아 동동거렸다. 그럼에도 손에 쥐는 돈은 쥐코딱지만큼이라,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여유도 없으면서도 일이 좋다며 웃었다.


결혼할 즈음, 번아웃이 왔다. 실은 상사인 이차장님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치고 받는 싸움은 아니었지만, 나를 제 발로 나가게 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 때쯤 처음으로 내가 그리던 인테리어 업계에서의 20년 뒤 나를 그려볼 수 있었다. 30년차 베테랑인 전무님도, 사장님도, 우리 회사만큼 돈 많이주는 인테리어 회사 없다는 이차장도 한 달씩 집에 못들어가는 날이 허다했다. 내가 꿈꾸던 미래의 '사장인 나'는, 여유로움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윤택한 인생속에 있었지만 내 주위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밤샘 직장에서 아이엄마로 살 방법은 전무해 보였다. 상사들은 부인들과 불화를 겪고 있었고 이차장은 이혼한 상태였고 아이엄마인 과장님은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스카웃된 인재였음에도 약속받은 퇴근을 하지 못했다.

내가 칼퇴근하는 여자의 본보기가 되겠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하지 못했다. 엄마와 인테리어디자이너가 양립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하고 자괴감에 빠져, 이차장이 원하는대로 내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고 결혼을 한다고 쉬는 여자가 되는 건 나같은 성격의 여자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어서, 곧바로 한 학원에 들어갔다. 짧은 영어지만, 공부해가며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원서를 접수했는데 뜬금없이 수학 선생님으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 잘 하지 못했던 수학을 중학생에게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혼식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어서, 식 전날까지 내 집에서 뒹굴며 내 마음대로 누워있다가 필요할 때에 일어나 공부하던 것과 달리, 집안이 흐트러져 있으면 공부보다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찾아왔다. 정리를 하다 보면 동시다발적으로 바닥청소를 하면서 설거지거리가 보였고 설거지를 하면서 빨래를 돌리지 않은 것이 눈에 걸렸다. 남편은 며칠이고 아무리 집이 더러워도 치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밥은 주는대로 먹었고 치우지 않으면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살아갔다. 그 때는 왜 남편이 잔소리 하지 않는 대인배라 생각했을까. 왜 그건 나의 일이기만 했을까.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집안일의 연속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수학 문제를 풀다가도 고개를 들면 보이는 장면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공부할 거리를 싸들고 밖으로 나와 커피숍을 찾았다. 치열한 책상이자 안식처. 내겐 그런 곳이 카페였다.


한 번 장소를 정하자, 매일같이 그 곳을 찾았다. 휘핑을 가득 올린 따뜻한 카페모카를 시키면 치즈쿠키 세 개가 조그만 접시에 따라 나왔다. 정 많은 주인분이 직접 만든 간판과 테이블과 손으로 엮어 만든 책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거의 2년을 매일같이 찾아 공부하던 카페에는 나 말고도 단골 손님들로 늘 북적댔다. 그 2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지역에서 꽤 자리잡은 수학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분이 바뀌었다. 어제도 왔는데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가버리셨다니.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게 못내 아쉬웠는데 한 술 더 떠, 새로운 주인분께서 이 곳을 싹 뜯고 새로운 인테리어를 하신다고 했다. 한참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바뀐 카페를 보자, 비로소 내가 정들었던 공간이 내게 큰 의미였음을 깨달았다. 몸에 힘이 쑥 빠지는 듯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사진 작가로 프로페셔널한 새로운 주인분은, 새로 바뀐 회색 공간처럼 차가웠고 손님은 다른 카페로 다들 옮겨갔는지 휑했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또 주인이 바뀌었다.


카페 주인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동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를 낳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둘이다보니 더더욱 집안일과 육아에서 벗어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하루에 서너시간씩 남편이나 이모님께 아이를 맡겨두고 집 앞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로 향했다.

늘 사람이 가득 찬 곳. 그러면서 아무도 내게 아는척하지 않는 곳. 외롭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곳. 스타벅스는 내게 그런 곳이다. 6개월간 매일같이 스타벅스로 출근했고, 책 한 권이 쓰여졌다. 그 곳, 그 자리를 떠올리면, 책을 쓰던 내가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카페모카가 카페라떼로, 그리고 이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즐기는 메뉴도 바뀌었다.


그 때 카페를 넘기고 어린아이 셋과 무작정 세계 일주를 떠났다는 따뜻했던 주인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 아마도 우리는 반갑게, 가족처럼 서로를 보며 웃고, 그 때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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