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는 사람 대하는 법

오늘 뭐 드셨어요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오늘 뭐 드셨어요? 라는 주제로 글을 쓰자는 선주 선생님의 말을 듣고, 오늘 아침 메뉴를 생각한다. 아니, 굳이 생각할 것도 없다. 주방으로 들어가면, 오늘 아침에 해먹었던 요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먹고 바로 치워서 깨끗하게 해놓는 사람이 아니다. 숟가락이 없을 때에야 설거지를 한다. 그쯤 되면 주방 가득 맥락없이 그릇이 쌓여 있다. 그러면 주섬주섬 물을 틀고 대략 그릇을 씻어 식기세척기로 넣는다. 코렐 그릇은 식기 세척기에 최적화 되어 있어, 씻을 때를 생각해서 웬만하면 코렐 그릇만 쓴다. 한가득 그릇을 세척기에 차곡차곡 넣고 나면 덩치 큰 그릇 몇개와 냄비가 싱크대에 남는다. 기분이 내키면 그것을 세제로 닦아 말끔히 치운다. 하지만 그냥 둘 때도 많다. 뭐든 기분이 내켜야 하니까.


아니, 어쩌다 글이 여기까지 왔을까.

다시 주제로 돌아가, 뭘 먹었는지 보려고 가스레인지로 가자. 거기엔 오늘 아침으로 먹은 만둣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냄비에는 만두는 하나도 없고, 약간의 국물과 못다 뜬 떡국떡 몇 개가 남아 있다. 아무래도 다음 끼에 먹지는 못할 것 같다.


아침에 냉동실 문을 열고 비비고 한섬만두를 꺼냈다. 한섬만두는 만두피가 단단해, 국물이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끓여도 그대로인데다가 만둣속의 재료들이 큼직큼직해, 씹는 맛도 좋다.

다만, 다시마 같이 색깔 있는 것들도 크니까, 아이들은 먹지 않으려 한다. 만두는 나와 남편의 몫이다.


아이들은 떡을 잘 먹으니까, 떡국떡도 충분히 넣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날 사두었던 건데, 쓰임새가 있으니 좋다.

만둣국을 끓여야지, 하고 정수기 아래 냄비를 갖다 놓고 물을 붓다가 갑자기 생각난 어머님의 육수! 당장 물 받던 걸 중지하고 냉동실 문을 열어 아래칸을 본다. 어머님은 사골 국물을 내어 봉지봉지 한 번 먹을 양씩 싸주셨다. 꽁꽁 얼어 있는 봉지 째로 들고 싱크대에 따뜻한 물을 틀어 몇 분간 들고 있자, 봉지와 국물 얼음이 분리되어간다. 얼음 국물 안에는 어머님이 하나하나 발라낸 소고기가 작은 크기로 알맞게 잘려 같이 넣어져 있다.


국물 한 팩에 약간의 물을 넣고 얼음이 다 녹아 끓을 때까지 기다린 후 만두와 떡을 투하했다. 그래고 약간의 국간장, 약간의 액체다시다 넣어 완성.


어머님이 주신 김장김치는 알맞게 맛있게 익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구워주신 김도 냉동실에서 발굴해냈다. 그러고보니, 이번 상은 전부 어머님으로부터 온 것. 아아, 왜 눈물이 나지. 자식 사랑이 지극하신 어머님은 우리가 간다고 말씀드리면 벌써 여러날 전부터 장을 보고 온갖 반찬을 해주신다. 그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싸주고 싶어하신다.


결혼 초에는 어머님이 무서웠다. 말하자면, 사이가 좋지 않은 고부사이였다. 어머님이 사랑하는 건 아들이고, 나는 옆에 있다가 좋은 걸 다 받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달까. 전세를 얻어 주시고 내게 생색을 잔뜩 내셨고, 그다음 집을 사주셨을 때에는 괜히 내가 미웠는지, 지나가다가 갑자기 머리를 확 쥐어박았다. 그 때 이혼할 뻔. 그 일은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에 불을 붙였고, 나는 그제야, 그간 쌓여있던 못다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었다. 네네, 하던 며느리 역할, 이제 못하겠다고, 이럴 바에 당신 며느리 안하려고 이혼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이가 틀어지고 한참동안 왕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 분노도 가라앉았다.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고 이 상황이 보였다. 집을 사주신 건 어찌보면 전재산을 다 내놓은 것이라서,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들한테 내는 생색에 아들은 눈도 깜짝 안했을 것이다. 어차피 자기 것이 될 걸 알았으니까 당연한 일이었겠지. 그러니까 그 생색, 내게 내고 싶으셨을 것 같다고, 나중에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살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걸 안다. 단돈 천 만원 모으기도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 몇 억이나 되는 그 큰 돈을 안쓰고 모아 주신게 가슴으로 절절하게 감사하게 느껴진 거였다.


그 후엔 볼 때마다 어머님 덕분에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서 참 좋아요, 감사해요. 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진짜 감사해서 눈물이 같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때 어머님의 표정은...... 누그러짐이랄까. 평온이랄까. 어머님은 위로를 받으셨던 것 같다. 누구라도 당신 참 대단해, 잘했어. 라는 말을 해주기를, 평생동안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 얘기를, 진심을 담아, 얼굴 뵐 때마다 했다. 그리고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거였다. 이런 일들이 쌓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게 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당연한 걸로 생색을 내려고 할 때면 그 생색, 실컷 내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구나.


단단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없어,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은 거겠지. 그러니, 격하게, 사랑으로, 반복해서 당신이 참 대단하고 잘했다고, 도움이 되었으니 고맙다고 말해주려 한다.

마음이 충족되면, 그 생색이 끝날 테니.

이제 그만 듣고 싶을 때까지 감사를 표현해, 그 사람 안의 공허함을 사랑으로 채워주어야지.



결국, 그 사랑은 다 나를 향해 온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되었다.




오늘은 어머님께,

덕분에 잘 먹고 살고 있다고 전화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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