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흔.
이십 대 때,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에는
서른이 되면 제가 준비했던 모든 것이 결정되고 안정화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정확하게는 서른이 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임용시험은 붙을 것이고 그 이후 결혼도 할 것이고...
하지만 저의 서른은
여전히 기간제 교사였고 결혼은 없었으며
아버지 사업이 거의 망하다시피 하면서
온 가족이 살고 있던 집에서 나와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했고
당장 집안을 책임져야 할 상태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삼십 대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켰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십 대에는 정규직 교사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면
삼십 대에는 그 목표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합격하면 좋은 일이 있겠죠.
하지만 합격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합격하지 못한 당시 현재의 저는,
기쁜 일에 기뻐할 수도 없었고
저 스스로를 예뻐해 주고 사랑해줄 수도 없었어요.
모든 하고 싶은 것은 합격 후로 미뤘었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도...
하지만 시험은 계속 떨어졌고
시험에 실패한 저는 인생을 실패한 것 같았어요.
저를 인생의 실패자로 몰아가는 나와,
시험에 떨어진 것이 인생을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토닥여주는 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삼십 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마흔을 바라보면서, 이제 저는
모든 저를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줌마가 되어가는 저도, 삶에 감사하는 저도,
염세적일 때도 있는 저도, 신나는 저도, 우울한 저도,
모든 게 '나'이고
그런 나를 내가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요.
이제 곧 올 마흔을 생각하면서,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제가 정한 서른의 이미지에
맞지 않아서 속상해하고 스스로를 맘껏 사랑해주지 못한
안쓰러웠던 제가 많이 생각났어요.
지금은 어떤 이미지도 정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들, 제 앞에 주어진 것들을 신나게 하다 보면
즐겁고 신나는 마흔이 제게 오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건강은 잘 챙기려고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른아홉과 마흔의 경계조차도
사실은 어찌 보면 무의미한 걸 수도 있으니
당장 오늘 하루 즐겁고 신나고 기쁘고 감사한 하루 보낼 수 있도록
그런 하루들이 모여서 여유롭고 풍성한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