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집 앞 우체국에 가는 길, 외투 없이 입은 니트티 안쪽으로 땀이 송글 솟는 것이 느껴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랗다.
우체국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보내고 천천히 걸어 동네 카페로 온다. 걷는 사람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람이 얼굴 쪽으로 불어와 머리카락이 날린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아마도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한 홀가분함이 얹어져서겠지.
새로 생긴 작은 카페에는 테이블 다섯 개가 있다. 라떼 한 잔을 시키고 케익 냉장고 안을 본다. 올 때마다 새로운 케이크가 놓여 있는데, 오늘은 수플레처럼 생긴 치즈 케이크를 시켰다. 집에 갈 때는 오레오 치즈케익을 하나 포장해가야겠다. 아들이 좋아하겠지.
커피는 특이하게 육각형 무늬의 잔에 나왔다. 흰색 도자기 잔이 느낌 있다. 따뜻한 날, 커피는 더 따뜻하게. 그러고 보니 카페 바닥도 육각형 브라운 타일이다. 주인 분이 육각형을 좋아하시는걸까.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휴대용 접이식 키보드를 펴고 이 글을 쓴다.
글을 막 쓰기 시작할 때, 카톡 음이 울린다. 지니, 잘 지내? 필리핀 친구 한 명이 나와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코로나 시기를 잘 보내고 있는지 묻는다. 필리핀은 모든 배와 비행기, 버스가 중단된 지 13일째라고. 슈퍼마켓과 은행은 열었지만 자신의 회사 등 모든 회사가 문을 닫았고, 레스토랑은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우린 벌써 9년 전(이라니!!), 비 오는 봄날 같이 파주에 놀러 갔었다. 나는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다바오에 살 때였다. 그 사이, 친구들도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우리 같이 파주에 다시 가자고 이야기했다. 갑자기 그 때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친구는 거기 좋았지, 하고 이야기했다.
이 글을 쓰는동안 안전 안내 문자라며 정부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한다. 2미터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독려 문자이다.
재작년 겨울에 이사왔는데, 겨울 내내 집 바로 앞의 높디 높은 회색 벽을 보며, 적막함과 을씨년스러움, 낯설음에 온 몸과 마음이 경직되었다.
용기내어 조금 걸어나와 중랑천을 따라 조금 걸었는데, 곧 머리 위로 여러 개의 도로가 지나가자, 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소리에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맞았던 첫 봄인 작년 이맘때, 지은 지 40년이나 된 우리 아파트의 화단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여서일까, 바로 옆에 심은 나무도 같은 것이 없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총 천연색의 나무들이 순서대로 만개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 나올 때마다 환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높디 높은 회색 벽 위로 덩굴 나무가 초록으로 주렁주렁 열렸다.
봄이 되어 중랑천으로 나가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붐비던 사람들. 무서운 소리를 내던 머리 위 도로는, 걷는 사람에게 좋은 그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같은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자, 순식간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지금 이 날을 기억하겠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세계 각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시기. 친구들에게 잘 지내냐고, 어떻냐고 안부를 묻는 이 봄을. 서로에게 거리를 두자는 캠페인 속에서 서로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는 이들이 있었던 이 봄을. 초등학교 입학이 무기한 연기된 아이의 이 봄을. 이 어려운 시기에도 내게 불어오는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행복하게 느끼는 이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