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나의 힘

마흔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서른 일곱은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되는 해였다.



3월에 둘째를 출산했다. 수학 과외 교사였던 나는, 아이가 둘이 되자 더이상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몇 년간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더이상 설 곳이 없어져 0원짜리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불안감에, 아이 엄마면서 돈 벌 생각을 하다니, 엄마 자격이 없어!라고 하는 것 같은, 사회가 만든 죄책감까지 얹어져 얼마나 힘이 들던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 한다는 내 안의 외침이 나를 글쓰기 수업으로 가게 했다.

수학 과외를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글쓰기 수업에 갔을까. 충분한 돈을 계속 벌고 있었다면, 다른 뭔가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재생되던 프로그램이 강제 종료되고서야,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었다. 출산은 그래서, 모든 길을 닫아버려 결국 새로운 길을 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중요한 관문인 것이었다.


책을 쓰게 된다면 어느 한 분야에 성공한 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글쓰기 수업에서는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로 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인생도 책으로 쓰여질 수 있다니.

책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평생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검은 면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내 안의 많은 실타래를 푸는 길이 되었다.



어릴적부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양보 잘하는 첫째로 자랐던 것은 성인이 되어 서른이 넘도록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래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굳은 생각이 있었다. 동시에, 상대가 내게 싫은 소리 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내게 허용하지 못한 것이어서

남이 내게 하는 것도 허용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조금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실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과 직결된 일은 아니다.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삶에 눈에 보이는 향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어서, 그림 그리고 싶은 내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오랜기간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내 아들이 버는 돈으로 취미 생활이라니 쯧쯧, 할 시어머니를 대면하기가 두려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배워 왔다. 작은 삔 하나를 사려고 할 때에도 리본이 붙은 것은 더 비싸기 마련이니, 당연히 실핀을 사야 한다고 배웠다. 예뻐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니, 삔이 삔 역할을 하면 되는거지. 옷은 몸에만 들어가면 되는거지 뭘 디자인을 보니. 가장 싼 칸에서 뒤지고 뒤져 사이즈가 맞으면 그것이 내 옷이 되었다. 백화점에 가서 마네킹이 입고 있는 신상품을 사는 것은, 머리가 빈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나는 좋은 것을 가지는 것, 당장 죽지 않는 데 예뻐 보이려고 돈을 쓰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배워온 것이었다.

그래서, 화실을 다니다가도 몇 번이나 그만 두고 또 그만두었더랬다. 내가 단지 기쁘자고 선택하는 일은, 왠지 나쁜 일인 것 같았다.


용기를 냈다고 해도, 어머님이 오신다고 하면 그림 그리는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다. 그림은 다 정리해서 플라스틱 통에 넣어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겼다. 그리고 어머님이 가시면 다시 꺼내어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쌓이자, 의도치 않게 그림은 나의 업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님이 오셨을 때에는 더이상 통에 담아 숨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작품은 크고 너무 많았다. 방에 주렁주렁 걸린 작품들을 보셨을 때에, 걱정과 달리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날은 내게, 아주 큰 울림으로 남았다. 두려움만큼 현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날이었다. 두려움은 허상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 아이는 6개월 젖먹이였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에, 꼭 방해물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젖먹이를 일곱시간동안 굶겨야 글쓰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 인생은 어제와 달라질 수가 없었다.


배운지 1년만에 거꾸로 수채화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이 크게 변할 때의 신호'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큰 일이 있기 전에는, 그 변화가 싫어 아이가 아픈 식으로 엄마의 가슴을 후벼파는 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를 내어 수업을 하기를 선택했다. 죄책감을 가질 법한 일일지라도, 용기를 내어야만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내 주위는 완전히 바뀌었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책을 썼고, 내 주위는 작가들로 채워졌다. 불과 2년 전, 작가란, 특별한 사람이나 된다고 느꼈건만, 나도 내 동료들도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 후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작가들이 내 주위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같이 잠시 다녔던 화실의 작가님들이 내가 구하는 질문에 답을 해주었고, 인스타 친구였던 작가님과 만나서 이야기하며 같이 전시회를 보았다. 그리고, 그 신인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자, 나도 현실적으로, 전시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주위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상황이 변하자, 나는 생각지도 않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연고가 전혀 없는 곳으로.


오프라 윈프리의 책을 보다가, 나의 마음 상태가 변하면 직장이나 집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하는 글을 보았다. 의도치 않았지만, 때가 오면 결국 상황이 바뀌고 환경도 바뀐다는 것이다.


학교도 가기 전에 품었던, 그림 그리고 글쓰는 작가라는 꿈을, 마흔이 되어서 이루었다. 평범한 내가 용기내어 '선택'하기 시작한 지 불과 2년만이었다.


2020년을 앞두고, 지인들에게 문자를 했다

"작가님, 올해에도 새로운 일 많이 벌여 봅시다!

그러자, 이런 답장이 왔다

"너무너무 신나요. 2020년 정말 기대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내 주위의 대다수 사람들이 기대와 설렘,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이었다. '당장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며 사는 것.'


지금은 안다. 돈이 전혀 되지 않더라도 이다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그렇게 살기 시작하자, 내 주위는 그런 사람들로 채워졌다.

내가 충만해지자 나는 주위에, 당신도 그렇게 살자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으로,

아름다운 사람들로

내 주위를 채우는 것은

실로 환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저항을 이겨내고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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