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글

설렁탕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다음 글은 <설렁탕> 쓸까요?

라는 말에 "네" 라고 대답했다.


설렁탕이라는 주제로 무슨 쓸 말이 있을까 순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쓸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까지 해왔듯, 네, 라고 대답하고 어떻게든 쓰다보면 분량은 채워지는 것이다.

브런치에 선주 선생님과 글을 쓰는 과정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일단 상대가 주는 제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아무 말이나 쓰는 것이다.


첫 책을 쓸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른 다섯 꼭지를 쓰는 데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목차를 다 짜놓고 꼭지 제목에 맞는 내 체험이 뭐가 있을까를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아, 이 글로 한 꼭지를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아.' 라며 머리를 쥐어 뜯곤 했다. 글을 한참 쓸 때에 둘째 아이가 아주 어렸기에, 수시로 글을 쓰다가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그런 찰나의 시간들 모두가 글을 뭘 쓸까 하는 생각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머리에 빈 공간이 하나도 없어서 그 자리에 서버린 것 같은, 무겁고 진득한 곳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지금은, 이런 식이다. 선생님의 글이 내 카톡으로 도착하면, 그제야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아 그날 올릴 글을 끄적이는 것이다. '뭐야, 이렇게 성의 없다니!' 싶지만, 나는 예전에 비해 많이 가벼워진 지금의 내가 좋다.


무거운 글을 썼던 그 시기, 나는 버둥대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 둘을 낳고 우아한 말투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지만, 불쑥불쑥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장면이 떠오를때면, 며칠이고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그런 사실을 남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사랑받고 자란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었고, 우리 부모님이 젊은 시절 나에게 그렇게 상처를 줬다는 걸 숨기고 싶었다. 그런 만큼, 내 감정은 꾹꾹 눌러지다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결혼 10년이 다 되어서, 잘 살 고 있는데 그런 감정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이제 대면할 때가 되어서였을 것이다.

책을 쓸 때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던 것 같다. 저 속에 있는 아픔을 모조리 꺼내어 쓰고 탈탈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만큼, 이 아픔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출판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일단 그걸 꺼내서 써야 하지만, 출판되면 결국 다른 이에게까지 내 상처를 보여줘야 했으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 양 극단의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글을 쓰는 매 순간이 모험이었다.


차라리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책을 읽는건 (아주 많이 읽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좋겠다!) 괜찮으면서도, 내 남편이나, 우리 부모님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나를 자꾸 머뭇거리게 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자꾸 검열을 하게 되는 거였다. 이 글까지 쓰는건... 좀 그렇겠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대면하기도 전에 쓰던 글을 자꾸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꾸 완곡한 표현을 찾게 되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은건 쓰기도 전에 겁이 났다. 그러다 보면 분량은 점점 채우기 힘들어졌다.


글쓰기를 같이 배운 친구들의 책이 다 쓰여져 계약하고 출판되는 것을 계속 지켜보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저들만큼 빨리 쓰지 못하는 것인가를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다시 글을 써나갔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다음날 읽으면 아, 이건...... 하면서 퇴고를 시작했다. 그러면 고칠 곳이 너무 많이 보였다. 한 꼭지를 쓸 때마다 퇴고를 예닐곱번씩 했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은 또 뒤로 미뤄지고. 책을 쓰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럴수록 책 쓰는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1년 후에 책이 나왔다.


놀라운 것은, 초고를 다 쓰고 나서 두세달 묵혔다가 내 글을 다시 읽으니, 어머어머 이런 것까지 출판하겠다고 썼단 말이야? 하며 놀랄만한 글이 많았다. 무려 책의 3분의 1정도를 지웠고 다른 글로 채워 넣었다. 그 분량을 채워 써야 하는건 미치도록 힘든 일이었지만, 삭제하는 건 아깝지가 않았다. 원망스럽던 일들은 결국 쓰여졌고, 그런 식으로 대면을 하고 나면 떠나보낼 수 있는 사건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한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저는 큰 사건 없이 부모님께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상처를 대면하라는 말에 어떤 일이 갑자기 떠올랐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어요. 한 번 그런 생각이 떠오르니, 다른 일들도 떠올랐고 지금은 온통 미운 감정만 들어요. 지금의 제 감정이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텐데, 상처를 치유하려다가 사랑에서 온통 미움으로 이 감정이 변해버린 것이 너무 괴롭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대답했다.

사랑받은 것도 사실이고 상처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상처는 치유를 하시면 됩니다.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나는 글을 쓰는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내게 상처를 준 그 시절의 엄마가 너무나 미운데, 나를 키워준 분을 밉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거야, 하는 생각에 계속 주춤거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해주신 일과 내게 화풀이하던 순간을 분리할 수 있으며, 사랑은 사랑으로 감사히 받고 상처는 상처대로 꺼내어 밉다고 말하고 치유하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책을 쓰던 시기에 그런 말을 들었으면 마음의 짐을 훨씬 덜 수 있었을텐데.




어쩌다 글이 여기까지 왔을까?

아, 오늘 글의 주제는 설렁탕이었지.

나는 음식을 가려먹지 않는다. 미식가도 아니고. 심지어 신랑은 집돌이로는 표현이 부족한, 집 쳐돌이! 라서 안 나가고 집에서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니, 결혼해서 일산에 사는 10년간, 맛있는 거 먹으러 어디 가자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외식을 너무 하고 싶은 날에는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곳이면 되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래도 설렁탕만큼은 이 집이 진짜 맛있었는데! 라는 기억이 탁 떠오르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내게 설렁탕이란 그런 음식이다. 늘 먹는 국물맛, 약간의 국수 면, 약간의 고기가 있는. 커다란 깍두기가 나오는 그냥, 어느 집이나 같은 상상한 맛 그대로 나오는 곳.

설렁탕에 얽힌 특별한 기억도 없다. 아, 딱히 말하자면, 우리 첫째는 국물에 밥 말아먹는 걸 싫어하고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반면, 다섯 살 둘째는 설렁탕 한 그릇에 어른 밥그릇 한 그릇을 기본으로 말아서 뚝딱 해치우는 메뉴라는 것. 설렁탕이 특별히 당겨서 꼭 먹고 싶은 날이 있었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날 설렁탕 먹을까? 하면 또 오늘은 싫은데, 한 날도 없는 걸 보면, 주면 주는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일 뿐.


한 번은 동네 친구들이 연신내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니, 떡볶이를 먹으러 연신내까지 간다고? 라며 어리바리 놀라던 나는 어버버 차에 태워져 연신내로 실려져 갔다. 전날 수요미식회에 나온 곳이라던가. 방송의 힘인지 줄을 서서 먹고 있었고, 친구 중 한 명은 자기가 여기 예전에도 와봤는데 그 때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어쨌든, 버글거리는 사람들 속에 우리도 한 자리를 잡고 앉아 떡볶이랑 튀김을 먹었다.

오오! 맛있어! 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뭐, 쩝. 맛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집 앞이랑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30분이나 왔는데 다시 30분을 돌아가야 한다. 떡볶이를 먹으러 한 시간을 소요하고 줄까지 선다는 건,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다. 오래 움직이는 것도 싫고 줄 서는 것도 싫으니, 미식가가 되어 전국에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긴 글렀다.


아!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다. 필리핀에 갔을 때! 친구의 신랑이 데리고 가준 그 곳.

가게 밖에서 생선을 고르고 1kg 버터에 볶아주세요, 하는 식으로 주문을 하면, 내가 고른 생선을 내 주문대로 요리해서 식탁으로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전혀 모르니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남편분이 여러 음식을 주문해 주셨는데, 오징어 먹물 볶음, 새우 갈릭 볶음, 닭다리 프라이, 돼지갈비 등이 쉴 새 없이 서빙되어 왔다. 생소한 모양의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오!!!!!!!! 이런 맛이 있다니!!!

너무 행복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계속 감탄을 했는데, 그 감동이 며칠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아아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들이 이래서 있는 거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고,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친구 남편은 한국에 계실 때에도 맛있는 곱창을 먹으러 몇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을 가족과 같이 가신다고 했다. 그런 분이어서 우리에게 외지의 맛있는 곳을 소개해 주실 수 있었겠지. 그 친구 가족과 있을 때가 아니면, 우리는 숙소 앞에 졸리비와 KFC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그 때 친구 가족과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설렁탕으로 글을 쓰려다가 필리핀에 가서 끝나는 이 글.

보세요. 산으로 강으로 가지만 어떻게든 분량이 채워진다니까요. 라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

제목은 뭘로 짓지?









아, 저의 책을 소개합니다.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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