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여는 삶

red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레드를 한국말로 쓰면 빨간색.
하지만 레드와 빨간색은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빨간색은 뭐랄까, 야한 느낌이 있달까.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떠오른다.
레드 라고 들으면 와인이 연상된다. 고혹적이면서 튀는 색깔.

왜일까. 이런 식의 연상은. 영어만 보면 너네가 우월한 것 같은 문화사대주의 때문인걸까?

우리 나라 언어로의 빨간색은, 새빨갛다, 검붉다 붉다 불그죽죽하다 등, 검정이나 초록 등의 색이섞이기 이전의 아주 톡 튀면서 채도가 아주 높은, 고유의 밝으면서 터질 것 같은 색깔이 연상되어서, 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빨간색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빨간색 구두가 떠오른다. 빨간색 가방도. 그리고...... 빨간 스포츠카.

빨간색 구두는 하이힐이어야 할 것 같다. 낮은 단화이면서 선명한 빨간색인 것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빨간색 가방은 밋밋한 검은 정장에 좋은 포인트가 되겠지. 광택이 있는 뱀피무늬의 에르메스 백이 떠오른다. 검은 정장에 빨간 에르메스 백을 든 여자. 립스틱도 가방처럼 빨간 색을 발랐겠지.

그 여자를 보는 나를 상상한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 정말 멋있네. 하고 생각하는 나를 본다. 저 여자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검정색으로 똑 떨어지는 정장을 입은 여자는 큰 사업체의 대표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이제 내게 그 여자가 아닌 '그 여성분'으로 격상되어 있다. 당당하고 멋있어 보인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이 분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빨간 에르메스 가방이 방점이 된다. 그 백은 오묘한 하늘색일 수도 있었고 짙은 초록색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색이든 그 옷과 어울렸을 것이다. 약간의 푸른 빛이 도는 가방이었다면 우아함과 신뢰감에 레벨 100을 찍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빨간색을 골랐을까. 오롯이 자신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선택하기 힘든 색깔이었을 것 같다. 정장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신뢰를 얻었다면, 빨간색 가방은 나는 내 스스로의 의견을 믿는다는 의지의 발현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편안하게 빨간색 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그 가방을 살 만큼의 용기를 냈더라도, 그 가방을 들고 오늘의 중요한 자리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아가 강한 사람만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빨간색 차라고 하면, 스포츠카가 떠오른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그렇듯 무채색을 선호한다. 결혼하고 12년간 두 대의 차를 샀는데 첫번째 차는 회색 모닝이었고, 두번째 차는 진회색 푸조다. 회색 모닝을 살 때에도 진한 색깔을 고르고 싶었는데 출시되지 않는 색깔이었다.

흰색이냐 검정이냐 회색이냐.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고르는 차의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한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 색깔에도 선택의 범위가 아주 넓다. 흰색이면 광택나는 흰 색이냐 진주펄이냐, 약간 푸른 펄이냐. 회색에도 연회색이냐 진회색이냐 펄이 들어갔냐. 등의 선택이 남아 있다. 나는 검정도 흰색도 아닌, 지금의 어두운 쥐색이 좋다. 다음 차를 살 때에도 이 색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무채색에서 벗어나 곤색까지 가는 데만도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빨간 차라니.
제네시스처럼 중후한 스타일인데 빨간색인 건 이상해 보이니까. 에쿠스나 제네시스까지 가지 않아도 아반떼가 빨간 색이면 평범하고 싶고 평범하지 않겠다! 는 이미지를 갈아 넣은 것 같으니까. 스포츠카 정도 되어야 빨간색이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면, 평소에 탈 회색 세단을 먼저 사겠지. 빨간 차를 샀다면, 그건 패밀리 카일 수는 없을것이다. 우리 가족 소유의 두번째 차겠지. 아이들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할 때 가져갈 수 있겠다. 아니, 나는 두번째 차도 빨간색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흰 색이나 검정색이겠지. 빨간 차를 세컨드카로라도 산 사람, 당신은 용기있는 사람!

여기까지 쓰다가 생각해본다.
알마니 정장을 입고 빨간 에르메스 백을 멘 여자를 보는 나를. 상상으로라도 나는 저 여자가 될 수는 없었던걸까. 내가 알마니 블랙 정장을 입는다는 것, 내가 빨간 에르메스 백을 든다는 것을, 나는 내게 단 한 차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구나.

빨간 스포츠카는 그의 것이다. 빨간 스포츠카를 나는, 평생 한 번 타볼 수 있을까. 내 주위의 누군가가 빨간 스포츠카를 끌만한 사람이 있을까. 내가 사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운전하는 빨간 차를 타보는 것조차, 내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빨간 스포츠카는, 그냥 고속도로에서 어쩌다가 내 곁을 지나쳐가는, 구경이나 할 차이지 내가 실제로 타볼 수 있는 차가 아니다. 상상의 영역에서조차 가능성을 열지 않았으니까.

나에게 그런 영역은 얼마나 많을까.

아이들과 에펠탑이 보이는 넓은 고급호텔에서 한달간 지내며 여유를 만끽하는 삶. 옷구경을 하고 아침에 바게뜨를 사고 길가 커피숍에서 햇빛을 즐기는 삶.
돈이 지속적으로 쏟아져 들어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실은 동경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열지 않았구나 알게되어 콧날이 시큰해진다.
빨간 에르메스 백을, 사려면 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내가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허용하지 않아서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것처럼.
언제든 돈이 쏟아져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에이, 그 일이 내게 일어날 리가 없잖아 하며 가능성을 열지 않았는지도.
아이들과 프랑스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에이 근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는 가능성을 열지 않고 있었는지도.
나는 그런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일 뿐, 그 사람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지 않았구나. 깨닫는다.

그리고, 스스로 상상해본다.
알마니 정장을 입은 내가 에르메스 백을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것을.

역시, 상상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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