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

케이크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작년 3월, 네 살이었던 딸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몇 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사실, 그곳이 첫 어린이집은 아니었다. 아이는 고양시에 살던 때, 채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곳은 전교생(?)이 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어린이집이었는데, 나와 친한 언니가 소개한 곳이었다. 언니는 자신이 그곳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다며 그곳 원장님도 너무 좋으시다고, 아이를 보내라고 했다. 자유를 갈망하던 나는, 옳다구나 하고 아이를 보냈다.

아마도 원장님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시는 것 같았다.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적자에 시달리는 이 어린이집이 유지될까 걱정이면서도 아이를 한 명 한 명 더 잘 봐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불과 서너 달 후, 선생님으로 일하던 언니는 풀타임 근무가 너무 힘들다며 반일로 일할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갔다. 사람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아이를 보내겠다는 최종 결정은 내가 한 것이지만, 새로운 선생님과 다시 애착을 형성해야 하는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은 언니에 대한 서운함으로 옮겨갔다.







나는 아이를 되도록 통제하지 않으려 하며 키웠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철저히 가르치는 것을 중요시했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들으며 일찍 철이 들었다. 누가 봐도 예의 바른 아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내가 옳다고 느꼈던 예절들이 내 행동 범위를 아주 작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나는 되도록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느라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그게 그 사람을 귀찮게 하는 일일 것 같아 으레 손사래를 치곤 했다. 누구든 보면 웃었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심지어 아주 화가 나는 순간조차도 정색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입은 웃고 있는 것이었다.

겸손하려는 낮은 태도는 태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말로 그렇게 여기는 삶의 지침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표출되지 못한 주장들은 내 안에 응어리가 되었다.

그걸 자각하고는, 아이는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른을 보면 인사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인사를 할 뿐. 아이는 크면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게 되겠지.
흙밭에 뒹굴도록 놔두었다. 아이는 매일같이 놀이터 한편에 앉아서 흙을 자기 머리 위로 뿌려대었고, 흙 위에 누워서 몇십 분 동안 꼼짝도 않고 하늘을 보았다. 마치 의식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번에는 돌아누워 흙 위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그리고 양 팔을 벌려 팔을 나비처럼 아래위로 저어대었다. 흙이 팔에 쓸려 다녔다.

점퍼부터 속옷까지 매일 빨래를 했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실은, 내가 그걸 허용할 수 있는 엄마인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반면 선생님께서는 놀이터에 데려가면 미끄럼틀을 타기보다 흙놀이를 한다며, 1차원적인 놀이만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이건 옳고 저건 틀리다'라고 믿는, 통제가 많은 분이시구나,라고 느꼈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어느 정도의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이해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몇 달간 새로 오신 선생님께 가려하지 않고 원장님만 찾았다. 오랜 적응의 시간을 갖고서야, 아이는 선생님께 마음을 열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가 집 밖의 세계를 배워나가는 일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차차 방법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아이는 작년 3월, 네 살이 되어 이사 온 동네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3월 첫날, 모두 신입생으로 들어온 아이들이어서, 처음 2주가량 적응 시간을 가졌다.
첫날은 엄마와 같이 교실에 들어가서 한 시간 놀고 하원, 다음 날은 엄마랑 교실에서 두 시간 같이 놀고 하원, 그러다가 혼자서 교실에 들어가 보는 식이었다.
선생님은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분이셨는데, 조용하면서도 다정한 분이셨다. 호들갑스러운 면이 없고 조용히 웃으며 대해 주시는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아이는 하원 할 때마다 마치 애인과 헤어지듯 뒤돌아보며 한참 동안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선생님도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이번 어린이집은 아이가 잘 적응해가고 있구나, 하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통신문으로 '선생님이 이번 주까지만 나오십니다'라는 통보를 들었다. 이제 막 3분기가 끝나가는 애매한 시점, 그만두기 2,3일 전의 문자 알림장 통보라니. 전화 한 통 없이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다른 알림들 사이에 한 줄로 통보해 온 어린이집에 화가 났다.
선생님이 그만두시는 이유는 '갑자기 먼 곳으로 이사하게 되어서'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알겠지만,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같은 교실을 쓰는 선생님과 성격이 안 맞으셨던 걸까. 원에 감당하기 힘든 정도로 일이 많았나. 원장님과 사이가 안 좋았을까를 추측해볼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학기 중에 그만두시면 남은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과 어떻게 또다시 적응해야 할까. 이건 바로 이전 해에 겪었던 일과 같았다. 데자뷔. 한 분기 남았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만 참고 다녀 주실 수는 없었을까. 원망의 감정이 올라왔다.








이 일에 대해 곱씹다 보니, 결국 내 걱정은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까?'였다. 그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니,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아이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 생각을 뒤집어, 이렇게 믿기로 했다.
"우리 아이는 잘 적응할 수 있어. 똘똘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니까, 어느 환경에서도 잘해나갈 수 있는 싹을 가진 아이일 거야."

생각을 돌려놓자, 선생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그 자리에서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당신의 행복을 빌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못 견디겠으면 불과 몇 달을 남겨두고 그만두시는 걸까. 이번 일이 선생님께 트라우마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다른 곳에 가셔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집 앞의 케이크 제작 카페에 가서 다음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드릴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위에 "○○선생님,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문구를 새겼다.






원으로부터, 부모들로부터 원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그만두는 선생님은 많이 위축되었을 것이다.
그럴 때 누구 하나라도 등 두드려주며 잘 지내시라고, 좋은 일만 있으시라는 한마디가 그분께 위로가 되길 바랐다.

실은,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였으면 너무 고마웠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까지 함께 보낸 아이에게 그 순간, 진심을 담아 축복했을 것 같다. 내가 당장 그 아이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는 없지만, 그 축복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서 그 아이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렇게 내 자식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는 그녀를 축복하기로 했다. 내가 받아온 우연한 축복들이,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내게 왔다고 믿기 때문에.



20200421_131741.jpg








매거진의 이전글초보 주부의 만능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