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큰 맘 먹고 커피머신을 샀다. 캡슐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니.
나란 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커피숍에 가는 사람이어서, 20만원쯤 하는 이 기계 한 대를 사면, 커피숍 비용이 한참 줄어들겠지 생각했다.
버튼을 누르면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예열이 시작된다. 그러면 머신을 살 때 같이 샀던 주황색 스틸 재질의 진공컵을 커피잔 자리에 갖다 놓는다. 잔은 작은 머그컵보다도 작은 크기이다. 게다가 진공컵이기 때문에 안쪽 벽과 바깥쪽 벽 사이에 공간이 있다. 때문에, 내경은 더더욱 작다. 나는 이 컵을 고심해서 샀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였다. 하지만, 머그컵에 커피를 내려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잠시의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까지 뜨겁게 물을 데울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갓 내린 커피잔의 손잡이가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뜨거웠던 것이다. 그 이후로 이 주황색 컵을 선호하게 되었다.
예열이 끝나면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이제 커피 내릴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다.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진동하며 커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커피는 정수기가 아니니까, '콸콸' 이 아닌 졸졸졸 흐르는 모양새다. 뜨거운 김을 내며 본연의 크림을 가지고, 커피는 조금씩 그 컵이 넘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까지 채워진 후 딱 맞춰 꺼진다. 그 채워짐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을 갖기 직전의 설레임이 있었다.
여러가지 캡슐을 먹어보고, 카라멜 향이 있는 커피에 정착했다. 어떤 가게에 가도, 어떤 커피를 마셔도, 여기 커피 맛있다!는 평가 따위는 해본 적 없는 막 입인데 그래도 나는 개중 이런 향의 커피를 좋아하네, 하고 나를 알아가는 맛이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내릴 때마다 커피숍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네. 라는건, 애석하게도 채 6개월이 되기도 전에 끝났다. 열 개 들이 한 박스의 캡슐을 꽤 여러번 주문했고, 놀라운 속도로 소진하다가 갑자기 아,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캡슐 커피가 맛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기계가 고장난 것도 아니었다.
커피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커피숍이라는 장소. 집에서 나와 커피숍까지 걸어가는 시간. 햇빛을 받고 바람을 받으며 외출하는 시간. 외출이라는 걸 하기 위해 씻고 차려입고 거울을 보는 행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과 분리되어 내 시간을 갖는 것. 집안일에서 잠시 물리적인 떠남의 시간을 갖는 것. 내가 원하는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며 나의 미래의 어느 부분에 점 하나를 찍는 것.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 그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생기있는 시간이었다. 집에 있던 차림 그대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잠시 한 숨 돌리는 의미로써가 아닌, 말끔하게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잘 차려입고 집 앞을 산책하다가 잠시 앉을 수 있는 곳으로서의 역할로, 커피숍을 택했던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것은 집에서 커피를 내릴 수 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커피 머신을 샀다고 해서 커피숍에 안가는건 아니며, 거기에 플러스로 독하다 싶을 정도로 진한 커피를 집에서도 하루에 몇 잔 추가로 마시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캡슐을 사는 것을 멈추었다.
이 커피 머신은 그 이후, 시누 언니 집으로 갔다. 감사하게도 언니는 몇년째 이 기계를 너무 애정하며 잘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 있었으면 천덕꾸러기가 되었을 물건이, 다른 집에 가서 쓰임있는 물건이 된 것이 감사했다. 누구라도 잘 쓰면, 기계일지라도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이 동네에 얼마전 커피숍 하나가 새로 생겼다. 집에서 적어도 300미터는 될 법한데, 매일 다른 종류의 케익이 준비되어 나온다. 엄마뻘의 여사장님은 음료를 만드시고 대학생 딸이 케익을 배워 같이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우리집 근처에는 워낙 커피숍이 몇 개 없는데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다. 식빵파는 커피숍, 제작케익만 파는 커피숍(얼마 전부터 포장손님만 받으신다), 영어책을 팔고 영어 수업을 하는 영어카페, 역 바로 앞의 자전거 동호회 손님이 즐비한 커피숍.
아이가 좀 크고 나니, 혼자만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데이트하는 시간을 갖는 의미로 커피숍을 찾게 된다. 아이들는 딸기음료를, 나는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 케익과 생크림 케익, 내가 먹을 호박푸딩을 샀다.
Having 책을 읽고 나서는, 내게 이렇게 커피 마실 돈이 있음에 감사함을 의도적으로 느껴보려 노력한다. 너무 많이 주문했나? 너무 비쌌나? 애들이랑 하나만 사서 나눠먹을걸 그랬나? 라는 죄책감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줄 수 있고 우리가 이렇게 조용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을 채우려 한다.
보통은 영수증을 버려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날은 '영수증 드릴까요?'라는 말에 '네'하고 대답하고는 주문한 음식을 먹고 일어나려다, 어어 뭔가 이상한데? 하고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케이크 값 하나가 덜 계산된 것을 발견했다.
"사장님, 케이크 값 계산이 하나 안되었어요."
"어, 그래요?"
사장님은 추가로 케이크값을 계산해주신 후 고맙다며 스콘 하나를 선물로 주시겠다고 했다.
이미 배가 불렀고, 뭘 받으려고 그렇게 말씀드린 게 아니니 괜찮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고 나왔는데, 마침 그 다음날 김새해 작가의 유튜브에 Having 책의 저자인 '이서윤'씨가 전화 연결되었다.
그녀는 '운을 불러 들이는 팁' 중에, 책에 쓰여지지 않은 게 있다며 그걸 얘기해 주겠다고 했다.
귀를 기울이고 듣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열 개만 주문했는데, 판매자의 실수로 열한개가 주문되어 올 때가 있어요.
Having을 하다 보면 나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덤으로 뭐가 생기는 사소한 일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럴 때, 과할 정도로 기뻐하세요. 그러면 운이 들어오는 속도가 붙으며 더 많은 행운이 들어옵니다.
나는 오랫동안 감사하는 태도와 마음으로 살아왔고, 돌아보면 이런 류의 작은 덤은 꽤 많이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삶의 모토인 사람처럼 살아왔고, 크고 작은 행운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보고 놀란 점은, 나는 그걸 받을 줄 몰랐고 심지어 밀어내며 살아왔다. 바로 전날 커피숍 사장님이 주시는 스콘을 과할 정도로 기쁘고 감사하게 받는 것이, 행운을 받는 좋은 제스쳐였을 것이다. 기쁘게 받았다면 나 뿐 아니라 사장님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 내가 지불한 만큼의 복만 받겠다'며 손사래를 쳤던 것이었다.
호의로 기쁘게 내 부탁을 들어준 이들에게 꼭 커피 기프티콘 등을 보내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렇게 하면 받는 사람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당혹스러워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호의를 베풀며 뿌듯함을 느끼려던 찰나 날아온 기프티콘에, 호의는 날아가고 그 일이 고작 5천원짜리 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 때 그 분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보면, 나는 받는 만큼 꼭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꺼이 받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게 아닐까.
삶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책으로 보고 그렇지, 하고 내가 알고 있다고 느꼈던 것들을 현실에서 마주해야지만 비로소 실제로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배우게 된다.
제아무리 도를 닦은 사람이라도, 진짜 마음이 평온한지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 부딪혀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부딪힘 속에서 삶을 배웠는가.
행동반경이 집에서 커피숍까지에 불과했던 나는, 그래서 커피숍에서 에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워온 것 같다. 엄마들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쳐주려고 만든 모임에서, 나는 내 삶의 조력자들을 만났다. 매주 그 모임은 커피숍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을 만났기에 내가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고, 그들로부터 웃고 운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커피숍에서 책 한 권을 써내는 고독한 작업을 하는 동안, 고개를 들어 바로 주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얻는 묘한 힘이 있었으며, 오며가며 인사하는 커피숍 사장님이 계셔서, 내가 사는 동네라는 실감, 민들레 홀씨처럼 고향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나에게 당신은 이 곳 사람이군요,와 같은 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 커피숍은 그런 곳이었다
글로 배운 것들을 체험하는 곳.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면서
꼭 사람 사이에 있고 싶은 나의 선택이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