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는 노란색 꽃이 참 좋아."
그때부터였다. 노란색 꽃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
J는 고양시에 같이 살던 친구였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며 놀이터에서 가끔 눈인사를 나누는, 동네 아는 엄마.
그즈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 수학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행이라기엔 거창하고,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커피숍에 앉아, 엄마들끼리 수학 문제를 풀고 수다도 떠는 그런 모임이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수학 과외를 쉬어야 하던 때였는데, 언제까지 쉬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쉬는 사이에 나의 가르치는 재능이 어디론가 증발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성인이라면 경험상, 3개월 정도면 중학 전 과정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다. 처음에는 과외 선생님을 하려는 분들께 3개월 안에 전 과정을 가르치겠다며 사업 비슷한 것을 열었는데, 전단지를 4천 부나 찍고 나서야 성인들이 수학에 관심이 그다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하하.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돈을 써야 확실히 배우는 걸까.
간간이 초등 과외 선생님들이 중학 과정 수학을 배우러 오긴 했지만, 공간 하나를 꾸려 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공간을 접고 시작한 것이 무료로 엄마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자기 아이를 가르치고 싶은 엄마나, 나처럼 과외를 하고 싶은 경력단절 주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들을 돕는 일로 보였지만, 실은 나를 위한 길이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한.
지역 카페에 모집글을 올리니, 몇 분이 용기 있게 신청해 주셨고, 매주 한 번 오전 시간에 카페에서 만나, 수학책을 펼쳐놓고 문제를 풀고 수다를 떨었다.
참, 따뜻하고 유쾌한 모임이었다. 그 분위기가 좋아, 더 이상 사람을 모집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그 날이 있어 일주일의 삶에 생기가 흘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J에게 그 수학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마침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이 있어 수학에 관심이 있던 J는 수학 모임에 오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어쩌다 만나 아이들 노는 옆에서 몇 마디 나눈 적은 있었지만, 나는 수학 모임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서로 가릴 것이 없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심각할게 뭔가. 우리는 자주 깔깔 웃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도 그 테이블에 올라오면 웃음으로 승화되었다.
모임이 끝나고 같이 걸어 집으로 올 때, J는 늘 말했다. "언니, 참 좋다." 나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좋은 자리였다는 말이, 나는 참 고마웠다.
아쉽게도 J는 얼마 후, 남편의 사업지인 필리핀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을 알아보느라 한참 바빴고, 수학 스터디 만남은 짧게 끝났다. 그렇대도 우리는, 수학 스터디를 하기 전과는 다른 관계가 되어 있었다.
'놀러 갈게!'라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작년 가을, 아이 둘을 데리고 친구가 사는 필리핀 바콜로드로 가서 한 달 가까이 머물렀다.
J는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 남편을 챙기느라 말라가고 있었다. 필리핀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갓 지은 밥을 먹이려고 점심시간에 맞춰 밥을 들고 간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밥 먹는 동안 아이 옆에 앉아 선풍기를 틀어주고 먹여주고 닦아주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도시락을 들고 나오더라고 했다. 급식이 이렇게 중요한 거였다니! 아침 일곱 시까지 등교를 시키고, 식사 때, 하원 픽업 때까지 무려 세 번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 데다가 영어와 필리핀 언어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 주어야 했다.
엄마의 걱정은 자신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가장 큰 염려는, 분위기도 환경도 언어도 다른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녀의 일상이 바쁘다 보니, 우리는 아침 일찍, 아침이라기에 새벽 같은 시간 옥상 수영장에서 만났다. 우리가 머물던 그 건물은 바콜로드에서 가장 높은 것이라고 했다. 나지막한 주택들과 울창한 열대 나무들이 저 아래로 보였다. 떠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우리는 함께 그림을 그렸다.
첫날, 두 시간 동안 온 정신을 집중해, 우리는 작은 리스 그림을 완성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그림을 보는 그녀의 눈이 기쁨으로 빛났다.
그 눈빛은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행복하게 할 수 있다니.
수학을 붙잡고 살던 내가 어느 순간 예술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신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정답이 없는 방법으로 누군가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녀가 말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표현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한 달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말했다.
언니, 나는 노란 꽃이 참 좋더라.
필리핀에서 떠나기 전, 나는 그녀와 노란 꽃을 그려보고 싶어서 노란 꽃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었더랬다. 하지만 끝내, 그걸 그리지 못한 채 우리는 작별했다.
봄이 되자, 아파트 안에 온갖 꽃이 핀다.
여러 꽃이 어우러져 각각의 색으로, 시기를 조금씩 달리하며 피는 걸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나는, 작년과 달리 노란 꽃을 자꾸 찾아보게 된다. 길가에 심긴 노란 팬지꽃도, 이름 모를 노란 들꽃도, 노란 수선화도 특별하게 보인다.
노란 꽃만 보면 사진을 찍고 싶고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당신이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내 그림을
내 글을
내 말을
온 마음으로 보고 느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작품을 만들고 글을 쓴다.
꼭 봐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작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작업할 동력이 된다.
이 글을 보고 있을 J에게
늘 나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에
깊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