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했다

시작 by 선주

by 플로우지니



Jinny 선생님과 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거의 이십여 편에 달한다. 처음 선생님이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려보자고 하셨을 때는 그래 이제와 솔직히 말하지만 이렇게 길게 쓸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쓰다 말 것 같았다는 건 아니고, 이렇게 먼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고 할까?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Jinny 선생님이 마라톤을 할 때 힘들면 발 끝을 보고 뛴다고 하셨었다. 멀리 보고 목표를 보고 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힘들 땐 한 발자국 내딛는 그 발 끝만 보고 달리면 계속할 수 있다고... 그래서 어마어마한 오르막에 숨이 가쁠 때 발만 보고 걸어올랐더니 정말 끝까지 와 있었다. 아마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글쓰기를 더 어려워했을 것 같다. 그래서 매주 우리가 정한 주제만 생각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글이 모여 벌써 이만큼이나 되었다.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선생님은 은인이다.

처음 이렇게 정말 오픈된 공간에, 게다가 나의 개인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었다. 일기도 아니고 공지문도 아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려워서 첫 글은 정말로 Jinny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듯, 선생님과 수다 떠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조금은 글이 써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생각하고 글을 다듬으면서 나는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듯한 나는, 내 글로 인해서 조금씩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았고 그런 나를 또 다른 내가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사실 내 치부라 할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갇혀 있던 내가 한 발자국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계기, 그것이 나에게는 이 글쓰기였던 것 같다. 기간제 교사, 시간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구석에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도,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겪었던 위축된 마음들도 이제는 조금은 꺼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매주 두 개의 글을 쓰는 것은 설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글을 쓸 주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주변에서 주제와 관련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지 찾는다. 나의 옛이야기, 요즘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서 주제와 관련된 것을 찾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글을 써본다. 그러면서 주제와 연관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엮어간다. 생각해도 잘 안 나올 때엔 그냥 생각나는 것을 아무거나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들이 찾아지곤 한다. 또 때로는 반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서 선생님에게 주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할 이야기가 많이 생겨나는 것은 재미있다. 내가 꽤 수다쟁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 선생님의 공간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종종 부담이 되어서 글의 첫 문장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선생님 얼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만나서 그림을 그리며 수다 떨던 시간으로 잠깐 돌아간다.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내 얘기를 꺼내놓던 시간으로 돌아가면 정해진 주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역시 선생님은 나의 은인.

글을 쓰면서 나도 선생님처럼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발행'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내 글은 현재 내 브런치에서 맞춤법 검사 후 '작가의 서랍'에 보관 중이다. 그래서 선생님과 글을 쓰면서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강의도 듣고 첨삭도 받았지만 아직 내 글은 여물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의 시작은 아직이다. 아직 브런치 작가로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쩌면 작가로서 이미 시작했다. (어쨌든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브런치 작가로도 시작하고 싶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이 잘 여물어져 예쁜 열매를 맺길, 발 끝을 보며 오르막길을 오르듯 글 하나하나 완성하면서 산 정상까지 가고 싶다. 한 걸음 내딛는 시작을 했으니 이제 다음은 역시 또 한 걸음 걸어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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