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어가는 중입니다

5월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아파트의 높은 회색 담벼락 위로 담쟁이덩굴이 초록색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 앞 커피숍 앞으로 보이는 쓸쓸하고 높은 벽 위로 초록색 잎들이 내려오기 시작하자, 왠지 나까지 다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 근처 어디서나 담벼락마다 주렁주렁 걸린 담쟁이덩굴을 보며,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잎들을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잎사귀의 선이 어떤 방향으로 뻗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만에 벽은 온통 나뭇잎으로 뒤덮여, 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난 건지 도통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순식간에 자라 버리다니! 하다가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 시기를 기다렸을까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야! 하면서 이미 그들 안에 있었던 날개를 쭉쭉 편 거겠지.

그 나뭇잎이 불과 며칠 만에 줄기를 밀고 나와 사람 손바닥보다 더 크게 자라났을 때, 자신을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까. 줄기에서 채 나오지도 못하고, 언젠가 싹을 낼 가능성으로만 존재했을 때, 그것은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

당연히 딱 그 지점에서 자신이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안다'는 자각조차 필요치 않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잎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너는 0점짜리야. 뚫고 나가서 큰 잎으로 자랐을 때에만 너는 의미가 있어, 라는 말은 틀렸다.
이미 그것은 작은 씨앗 한 알 속에 있을 때에도 자신이 이렇게 자라서 줄기를 뻗어내고 정확한 지점마다 잎을 뻗어낼 것이며 그 잎은 자신이 커야 할 크기에 맞춰 정확히 클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적확하게, 씨앗 안에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가족은 한 스님께 주말마다 법문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아주 작은 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능력한 아이로 살고 있었다. 성적은 55명 중에 35등 전후였다. 도무지 요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지를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림도, 피아노도, 노래도 잘한다던 소리를 듣던 시절은 지나갔다. 내 안에 뭔가 씨앗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아무것도 발현시키지 못할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내가 너무나 달라서, 나는 그만 죽고 싶었다.

그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밤송이는 익어야 벌어져요. 씨앗을 심어놓고 밤송이가 왜 안 열리냐고 타박하면 안돼요. 자랄 때를 기다려야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익어서 때가 되면 벌어져요. 때가 되면 익어서 떨어질 텐데 때가 되기 전에 너는 왜 아직 자라지 않았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여물어요.

사람마다 여무는 때가 다르다는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도 그때가 있구나. 지금은 내가 설익은 상태이구나. 그러니, 그때가 오지 않았다고 절망하지 말자고, 그때가 온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가족의 에너지는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 돌아보면 그 시기 우리 가족은 서로를 탓하고 분노에 차있었다. 모두의 에너지 상태가 그랬다.
그 시기를 함께 지내고 나서, 어느 순간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엄마가 성장했고 내가 성장했고 우리 가족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높아졌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안아주는 지금 같은 시기가 올 줄이야.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간, 어떻게든 성장해 보겠다고 강의를 듣고 마음공부를 했다. 이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뭘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으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살 것 같았던 날들을 지냈다. 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태양빛 아래에 와서 누운,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기를 맞았다.


아주 먼 길을 돌아 마흔을 넘어서고 있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함께 성장해야 했기에, 나는 엄마를 엄마로 선택해 왔구나.
깜깜했던 시절 엄마를 얼마나 증오했던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나 그 시기를 보내야 했다는 걸, 지금은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당신도 나도 이만큼 깨닫게 되었다. 지지부진 흐리게 밝은 날은 나를 이만큼 깨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여물어왔다.



우리 아이는 어떤 것을 깨닫기 위해 나를 선택해 왔을까. 나는 아이와 이번 생에서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
이미 아이는 때가 되면 멋지게 발현할 씨앗을 가지고 왔을 테니, 아이가 힘들 때 좋은 에너지로 아이를 품어줄 엄마인 내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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