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뛰는 일반인

시작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주말에 뭐했어?"

"언니, 저 마라톤 뛰고 왔어요."

은혜는 주말에 10킬로 마라톤을 뛰고 왔다고 했다. 마라톤이라니. 그 순간 화실에 있던 다섯 명 모두가 은혜를 바라봤다. 마라톤이라는 건 올림픽 마지막 관문으로 TV에서 보던 게 아닌가. 뛰기만 하는 지루한 종목. 그런데 내 눈으로, 바로 엊그제 마라톤을 뛰고 왔다며 심지어 웃는 사람을 보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은혜는 그 당시 막 화실에 다니기 시작한 스물여섯 새내기 주부였다. 필리테스 강사로 일했다는 그녀는 활력이 넘쳤고 그림을 배우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녀는 철인 3종 경기를 세 번이나 완주했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퇴근이 늦었던 그녀는, 주말에 동호회를 찾아 바다수영과 자전거 연습을 종일 했다고 했다.

아니, 그런 걸 제 발로 찾아가서 한다고?

매일매일 십 킬로씩 조깅을 한다고?

아니, 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할만한 일이 아닌가.하지만 신기했던 건, 그걸 설명하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한껏 상기되어서 신나게 설명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10킬로 마라톤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인 것 같았던 것이다.


인터넷에 마라톤이라고 검색했다. 은혜 말대로 매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온갖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뛴다니.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등록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거대한 세상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같이 글을 쓴 이혜진 작가에게, 우리 같은 일반인도 마라톤이라는 걸 뛸 수가 있대. 같이 뛰어볼 생각 있어? 하고 말했다.

미쳤어?라는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덤덤히 핸드폰에 마라톤을 검색해서, 이 날 뛸까? 하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불과 며칠 뒤에 있을 마라톤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실행하기에 가장 명확한 방법은 돈을 내는 거다. 일단 결제를 하면, 그다음에는 뛰는 수밖에.



몇 번 연습을 하고 가야지 싶어, 마라톤 등록을 한 바로 다음날부터 아침저녁으로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다.아침에도 뛰어보고 저녁에도 뛰어보고는, 나는 저녁에 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라톤 앱을 이것저것 깔아서 써보았고 핸드폰을 들고도, 암밴드에 해서도 뛰어보았다. 어느 정도 속도로 뛰어야 중간에 걷지 않고 계속해서 뛸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10킬로를 뛰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체크했다.이쯤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마라톤을 신청하는 것은 하루만의 일이 아니구나,하는 걸. 나는 이제, 마라톤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매일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가겠구나.

드디어 그날이 왔다.

2년 전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일요일 아침 6시, 운전을 할 때 느껴지던 전날과 사뭇 다른 시원한 바람. 그래서인가 먼지가 없던 깨끗한 하늘.

주차를 하고 보니 지하철역에서 운동화를 신고 배번호를 붙인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일요일 아침에 다들 안 주무시고 왜 여기에 와계세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천에서 뚝섬까지 새벽부터 지하철 여행을 하고 온 혜진이와 만나, 우리는 수천 명 사람들 사이에서 뛰기 시작했다. 뛰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뿜는 건강한 에너지가 눈에 보이듯 흘렀다.오른쪽으로는 한강이 흘렀고 왼쪽 소음방지벽 위로는 붉은색 능소화가 주렁주렁 벽을 타고 걸려 있었다.귀에서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김윤아의 '강'이 처연하게 흘러나왔다. 강바람이 불었고 천천히, 그러나 한 번도 걷지 않고 오늘의 마라톤을 해내겠다는 결심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걷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뛰었다. 혜진이와 점점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내가 그 날 집중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고 있다거나 걷고 있는 사람 옆을 지나쳐갈 때의 쾌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도 걷지 않고 뛰는 자세로, 그 날의 달리기를 마칠 수 있는가. 그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가볍게 쥔 주먹 사이로 땀이 흥건했다. 손을 펴서 바람을 맞자 손 전체가 시원해졌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다시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팔의 각도, 숨을 내쉬는 리듬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며 뛰었다.


채 반이 지나기도 전에 내 귀에는 내 가쁜 숨만 들렸다. 이어폰도 거추장스럽고 팔에 찬 암밴드의 비닐 모서리가 팔을 흔들 때마다 등 뒤쪽 어딘가에 마찰되어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흐름이 끊길까 싶어 움직이던 패턴을 변화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청각은 소거되고 땅바닥에 그어진 페인트선이 마치 계단처럼 높게 느껴졌다.


처음 느끼는 신기한 감각들을 느끼며 무려 한 시간 하고도 20분을 달렸다. 꼴찌그룹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나의 속도를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

내가 목표했던, <걷지 않고 끝까지 뛴다>를 이루어낸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벅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저질체력이었던 내 인생의 마라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섯 번의 마라톤에 더 참여했다. 아마도 나는, 힘듦을 넘어서는 벅찬 기쁨을 맛보기 위해 계속 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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