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커피1로 합시다

프롤로그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글쓰기 강의를 들을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글쓰기를 누구나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소명으로 이 강의를 하고 있다고.


그 글쓰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책을 쓰고 싶다. 내 이야기를 물질화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둘째를 낳고 더이상 수학 과외 교사로 살지 못하게 되었던 그 시기, 언제 다시 돈을 벌 수 있을까가 가늠조차 되지 않으면서도 방금 둘째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걱정하는 건 아이 엄마로서의 자세가 아니지 않나 하는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던 시기. 그 절망감을 무엇으로라도 만회하고 싶었다. 2,300만원 벌다가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나는 그만 0원짜리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남편이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화장품을 살 때도, 밥을 한 끼 사먹을 때도 남편에게 가는 카드 결제 문자에 민감해졌다.


0원짜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으로라도 증명하고 싶어 책을 쓰고 싶었다. 그 시기의 나는,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책을 쓰는 건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이라서, 누가 작가라고 하면 뒤돌아 보게 되는. 내게 작가란 그런 직업이었다.


책을 쓰고 출간되는 과정을 거쳤다. 누가 내게, 책을 쓰고 인생이 바뀌었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없이 말할 수 있다.

"완전히요."


돈을 많이 벌었냐면 그렇지 않다.

고작 책 한 권을 쓰고도 '작가'라고 불리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내가 보는 대상이다. 책을 쓰기 전에는, 나는 옳은데 저 이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상대방은 내가 그러하듯 나를 배려하지 않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책을 쓰면서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했을 때 '나'는 어떻게 느꼈는가. 나는 무슨 생각을 했으며 그 때 어떻게 말했는가.

인식의 변화는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것은 핵폭발의 시작에 불과했다. 책을 쓰는 동안 내 주위를 떠돌던 부유물이 많이 정리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이 편해졌다고 느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나는 내 안에 계속 질문했다. 대체 그 일은 왜 그 때 내게 왔던거니. 내게 답을 줘. 그러면 며칠 후에 적확한 답이 내가 쓰던 글로, 책으로, 머릿 속 섬광으로 찾아왔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어 책을 쓴 지 2년쯤 지난 시점,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내 어릴 적 고통의 핵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 근처에만 가도 눈물이 흐르며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던 시간이 평생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그 것을 마주하고 깊게 바라보았다. 그 일을 끄집어내어 글로 썼고 많이 울었다. 내가 쓴 글을 수십번 읽었다. 나 자체였던, 나의 한 부분이었던 고통은 나와 분리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고통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축복이었음을. 그 과정을 거쳐야만 알게 되는 큰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몇 십년의 고통 끝에 얻게 되었으며 우주의 시간에서 그것은 찰나였다는 것을.


모든 것은 리셋되었다. 돈은 여전히 벌고 있지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온전히 그림에, 색깔에 실려 표현된다. 자유를 느낀다.


이 새로운 삶의 시작에 글쓰기가 있었다.


두번째 책을 써야지, 하며 여러번 시도했지만 좀처럼 목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갑자기 어떤 일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가도 아, 이 이야기는 앞의 어떤 이야기를 써야지 연결되는데. 여기에 그 글을 다 써버리면 목차에 맞춰 앞의 내용을 쓰려고 할 때는 이야기가 중복되겠지. 이런 생각에 결국 앞의 이야기도 뒤의 이야기도 쓰여지지 않은 채로 공중으로 휘발되어버리는 시간이 흘렀다.


수학 스터디로 만나 매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선주 선생님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도 글쓰기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계셨고, 친구와 일기쓰듯 하루에 일정량의 글을 매일 쓰고 계시다고 했다.


서로의 글쓰기에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매주 어떤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예를 들면, 이번 주는 '여행' 에 대해 써보기로 해요. 하는 식으로. 여행 이라는 소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 둘로부터 전혀 다른 기억을 소환할 것이다. 그 기억이 글로 쓰여졌을 때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겁지 않은 일상의 시시껄렁한 일들을 글로 적어보고 싶다. 아이를 키우고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사는 이야기가 글로 쓰여졌을 때 특별한 장면이 되는 것을, 이 페이지를 통해 나누고 싶다. 목차를 미리 짤 필요가 없는, 그 날의 즉흥적인 주제로 쓰여지는 글들이 될 것이다.


"우리, 다음 주 화요일까지 A4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서 교환합시다.

"그래요. 그럼 첫 글은 뭘로 쓸까요?

"......"


간단한 걸 정할 때 가장 어려운 법.


"뭐 드시고 싶은거 있어요?

"커피요.

"커피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지 않을까요?

"그럼, 이번 글은 <커피 1>로 합시다. 커피를 소재로 쓸 글이 많으면 <커피 10>까지 쓰면 되죠!

"좋아요!


이렇게,

우리의 첫 글이자 전체적인 글의 방향이 될, <커피 1> 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