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윤 Nov 01. 2024

당신의 ‘정체성 자본’은 무엇인가요?

생물학 전공자였던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과정

아래 글은 2024년 11월 1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 뉴스레터를 보시려면 옆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뉴스레터 보러 가기



본격적으로 글을 쓴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나, 업으로나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사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저는 글쓰기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생물학 전공자였고, 이과생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글을 쓰는 논술보다는 실험 보고서를 쓰거나 수리 논술을 푸는 것에 더 익숙했죠. 인문학적인 글쓰기는 교양 수업의 과제에 국한해 있었죠. 그때만 해도 글쓰기는 취미조차 아니었습니다. 


10년이 흐른 지금, 저는 글쓰기를 빼고 논할 수 없는 인간이 됐습니다. 취재를 해 글을 쓰거나 창작자들과 소통하며 일하는 것이 제 커리어가 됐을 뿐더러 (뉴스레터를 포함해) 소셜미디어에서도 개인적인 글을 쓰며 세상에 연결됩니다. 커리어상 잠시 글쓰기와 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글쓰기로 돌아올 정도로 그것을 가까이 두게 됐습니다.


글쓰기는 취미, 혹은 생계 그 이상의 정체성으로 제게 뿌리내렸습니다. 어떻게 미적분을 좋아하던 아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무늬로 받아들이는 변화를 겪었을까요? 그에 관해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던 생각들을 최근 정리하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우연히 ‘정체성 자본’(Identity Capital)이라는 개념을 접한 덕분이었습니다. 



‘정체성 자본’은 200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단어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걸 나 자신과 타인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정체성’이라면, 정체성 자본은 그 정체성의 기틀을 만드는 투자라 볼 수 있어요. (내가 나다운 것도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임상 심리학자 맥 제이(Meg Jay) 교수는 정체성 자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 무언가 충분히 잘하거나 오랫동안 반복해서 결국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정체성 자본’을 쌓는 일이다." - 맥 제이 교수


쉽게 말해 ‘정체성 자본’은 나 자신의 스토리를 잘 이해하고 서술하는 데 필요한 경험, 역량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얻는 겁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20대 초중반부터 글을 포함한 콘텐츠에 마음을 쏟으면서 제게 ‘창작자’라는 정체성과 정체성 자본들이 생겼던 것처럼 말이죠. 나를 나답게 하는 선택을 하면서 나다움을 축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정체성 자본’을 얻으려면 일단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쓰기’가 갑자기 제 정체성이 된 걸까요?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 10년이 흐른 지금, 제가 저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만들어온 과정을 반추해봅니다. 거기에는 20대의 혼란, 정체성 확립, 30대의 당혹감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실험실 알바를 하고 있는 20대 초반 시절



글을 쓰게 된 표면적인 계기는 심플했습니다.  


2014년 무렵에는 대부분 페이스북을 즐겨했는데요. 우연히 한 페이스북 그룹에 초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유저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눈팅 하는 재미로 화면을 보다가 가끔 아주 짧은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그룹 내 사람들이 즉각 반응을 해준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단순한 흥미가 피어났습니다. 


이윽고 저는 매일 글을 썼습니다. 때로는 속으로 엉클어져 풀리지 않는 감정을 글로 표출하기도 했고, 혹은 번득 떠오른 단상을 수필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의 길이는 점점 길고 구체화했습니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상념들,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들,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회피해왔던 생각들이 글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10대 말~20대 초는 제 인생의 암흑기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19살에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따라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 합격해도 갈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휴학하고 반수에 목숨을 걸었다가 알바를 하며 생계를 버텼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 여름, 아빠가 췌장암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삶은 계속됐습니다. 21살, 대학 캠퍼스에 돌아왔을 때 더는 세상이 이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인생, 열심히 공부하고 주어진 삶을 착실히 살아가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어느 것에서도 아무 의미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답니다. 


교회에 매달리기도 하고, 수업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신의 뜻을 붙잡고 거기에 생의 이유가 있을까 간절했다가, ‘다 무슨 상관이겠나’ 싶어져서 수업도 안 가고 여기저기 쏘다니곤 했습니다. 한 가지 원칙은 있었어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까운 시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진 말자.’ 어쩌면 살아있음을 견딜 수 없어 부지런히 방황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글을 쓰게 되면서 저는 안정감을 되찾았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들, 너무 못났던 나 자신과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해 마음을 토해내며 글쓰기에 매료됐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매일 글을 3편씩 쓸 정도로 할말이 많았습니다. 어디서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글은 제가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의 역할을 해줬습니다.


20대 초반에 쓴 글이 모여 독립출판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글을 통해 타인에게 연결되길 바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록 주어진 일들, 예컨대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인) 임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의 가설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를 냅뒀을 때 내가 자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일단 자유롭게 풀어놓고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남들이 안 시켜도 내가 알아서 찾는 일’의 패턴을 발견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져온 공부, 성적의 굴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나다운 무언가’를 고민하는 시기였습니다. 내가 나를 가만히 살펴보니 과 행사를 기획하고, 영상 제작 동아리에 들어가고, 2014년에는 학교 신문사에 제 발로 들어갔다는 걸 관찰했습니다. 결국 무언가 표현하는 것, 그걸 통해 기어코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경향성이 보였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생물학과 특성상 높은 성적을 유지해 의대, 약대, 치의대에 들어가는 친구들이 적잖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저는 ‘참 별난 언니’였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후회없이 오늘을 사는 데 갈급하고 간절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뭐든 하면서 점을 찍고, 그것들을 이어 그래프를 그리고 싶어했습니다.


‘정체성 자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저는 나를 나로 만드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고, 그걸 찾기 위해 일단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이때 남들에게 보기 좋은 것,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이 아니라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야 당장 내일 죽어도 오늘 행복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유튜브 채널 <요즘사>와의 인터뷰에서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의 송길영 저자는 비슷한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Q. 진짜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요?
A. 스스로 관찰하는 작업이 일단 필요하고요. 내가 피상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남이 안 봐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누군가 좋아요 누를 것 같은’ 건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 마인드마이너, 송길영 님


남들이 시켜서, 해야만 해서, 남들이 인정해줄 것 같아서 무언가 하는 것도 (당연히) 강력한 동기부여입니다. 하지만 정체성 자본은 내적 동기부여에 물을 주고 싹을 틔우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려면 자기 정체성을 발굴하는 작업을 먼저 해봐야 하고, 그 정체성에 힘을 실어주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다움’을 점차 알 수 있는 거죠. 


이런 방황의 시간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10대 때는 입시로, 20대 때는 취업으로, 이후에도 나이대마다 점수판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한가롭게(?) 정체성을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성인이 된 후 이것저것 탐색해보지만 그 과정을 정체성으로 충분히 곱씹을 여유가 없습니다. 초년생 때는 불안해서, 중년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다른 선택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아직 ‘내가 생각하는 나’를 정하지 못한 상태를 ‘정체성 지연’(Identity Moratorium)이라고 부릅니다. 사춘기 시절의 고민이 사라지지 않고 성인이 돼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겁니다. 어쩌면 20대 초반, 격랑으로 배가 난파하면서 저는 멈출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예기치 않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20대에 쌓은 정체성에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20대 중반부터 기자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했습니다.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직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로 고민은 없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콘텐츠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것,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는 일이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성실히 고민하고 깊이있게 쓰며 다른 생각을 하는 ‘나’의 일관된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대 후반까지 쌓아온 정체성 자본이 30대 직전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

.

.

.

.

.


30대에 찾아온 정체성의 위기

정체성 자본의 다음 단계를 고민하다

30대에 정체성 자본을 쌓는 방법들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려


� 스텔러스 레터에서 글 전문을 무료로 확인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