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느냐, 버리느냐’ 퇴사/이직 전 되새겨야 할 커리어 조언 5가지
인트로 : ‘이대로 일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
1 : 쉬어도 될까? 커리어 휴식기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
2 : 삶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3 : 길어진 커리어 시계,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 변화 3가지
아웃트로 : 일과 삶, 가슴 벅찬 감동이 있는 50대를 맞이하려면
40대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요즘, 종종 위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두고 크게 3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까닭입니다.
기대감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막막함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과 막막함은 약간 다른 결의 감정입니다. 걱정은 말 그대로 불확실한 미래, 먹고 사는 문제, 진로와 방향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막막함은 번아웃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삶을 40대에도, 50대에도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럴 수 있을까 까마득한 겁니다. 사는 게 고단해서 막막해지는 거죠. 그러니 막막함이야말로 기대감의 반대 지점에 있는 감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40대에 내로라 하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무작정 쉬기로 결심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책 <실패는 나침반이다>의 한기용 저자는 쉼없이 일한 끝에 43살, 처음으로 기약없는 휴식기를 선택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달리다간 ‘큰일 나겠다’는 막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터넷 기업 야후를 퇴사한 후 그는 커리어 공백기를 시작했습니다. 계획도 없이, 목표도 없이 일단 나를 추스르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기용 님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기준을 세웠고,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며 유데미, 폴리보 같은 초기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지금은 리더십에 관한 강연을 하면서 커리어 코치로 활동하고 있죠. 1000명 넘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를 얻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묵묵히 축적해온 기용 님의 이야기를 <실패는 나침반이다>라는, 하나의 책으로 엮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귀중한 기회이자 경험이었습니다.
기용 님과는 (책이 나오기 전이었던) 2023년 가을쯤 화상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기용 님이 꾸준히 써왔던 글을 책으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하면서 저는 책의 편집자로 손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기용 님의 이야기는 명료한 맥락을 갖고 있었고, 책으로 만드니 수천 명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이 세상에 나온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책의 편집자로서 한 번쯤 질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기용 님도 혹시 막막하셨나요?
책을 편집하는 수개월간 내심 궁금했던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30대에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40대에 야후를 뒤로 하고 커리어 공백을 택했을 때, 이후 ‘나다운 삶을 살겠다’며 다양한 결정을 내렸 때 기용 님은 막막하지 않았을까. 그 막막함을 어떻게 끌어안고 헤쳐왔는지 묻고 싶었어요. 지금 제가 마주한 질문이라 더더욱 그 답변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2024년 8월 역삼의 한 카페에서 기용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에서 기용 님은 커리어 휴식기, 커리어를 괴롭게 하는 고정관념,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 전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해주셨습니다. 50대가 된 기용 님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기사 형태로 다듬어 정리했습니다.
아래 글은 2024년 8월 19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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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나긴 커리어에 한 번쯤 쉬어가야 한다, 공감하면서도 실천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독 한국이라서 그런 걸까요?
물론 미국에서도 쉬기로 결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일해보면서) 개인적으로 경력 단절이 삶의 일반적인 통과 의례로,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의로든 자의로든 쉴 수 있어요. 오히려 억지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혹은 자녀를 양육하면서 잠깐 커리어를 쉬고 삶 전반에 집중하는 시기가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링크드인에도 ‘커리어 브레이크’(휴식기)를 하나의 커리어로 표기해둘 수 있는 것처럼요.
한 걸음 나아가 해고를 대하는 사회적인 인식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일하는 시기가 길어지다 보면 한 차례 멈춰야 하는 시점이 오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여러 요소로 경력 휴식기를 가지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Q. 기용 님처럼 휴식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저의 경력 휴식기를 두고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미국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이민을 가셨나요? 창업 팀에 합류했을 때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나요? 1년 가량 갭이어를 가질 때 어떤 계획이 있었나요?’
하지만 3가지 결정을 할 당시에 저에게 명확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갭이어 또한 피곤해서, 갈피를 못 잡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획 없이 일단 쉬기로 결정했던 겁니다. 도리어 모든 걸 계획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내 일과 삶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게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커리어 휴식기를 갖고 싶다면 본인의 ‘리스크 참을성’(Risk Tolerance)을 먼저 파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불확실성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평소 라이프 스타일이 저렴(!)한 게 휴식기를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여행 다닐 때마다 비행기 1등석, 최고급 호텔이 반드시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이라면 한 소끔 쉬어가는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죠. 일상을 희생하기 힘드니까요. 역으로, 만약 평소 생활 패턴이 경제적이라면 6개월~1년 잠깐 쉬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Q. 흥미롭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갭이어를 가져야 할 타이밍인지, 아니면 괴롭더라도 지금 버텨야 하는 타이밍인지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본인의 자리에서 버텨낼지, 도망갈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분명 중요합니다. 저도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매니저와 영 맞지 않다는 걸 파악했을 때 빠르게 이직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면에 ‘희망’이 있다면 한 번 버텨보는 게 맞다고 판단해왔습니다.
이때 희망은 저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리라 봅니다. 저에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은 것, 우리가 뛰어가는 방향이 맞다는 판단이 (지금의 상황을) 버티는 근거가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해볼 만하다는 믿음이 있는지, 본인을 다각도에서 객관적으로 고민해보길 권합니다.
Q. 자기 객관화, 이 또한 당연하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릴 때 무조건 지금 상황에 대한 아쉬운 점만 부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딘가에 완벽한 곳이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면 또 다시 실망을 반복할 뿐입니다. 버틸지, 접을지 판단하는 데 균형감을 갖고자 계속 연습해보길 바랍니다.
Q. 결국 완벽하게 쉬어가는 공식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봐야겠네요.
그쵸. 공식은 없어요. 다만 기나긴 커리어 가운데 한 번쯤 훌훌 털고 가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반드시 회사를 그만두진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내게 어떤 상처가 있는 살펴보고, 이 상처가 오래 축적돼 왔다면 한 번쯤 보듬고 털어내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결정에는 주변에 지지자(서포터)가 필요해요. 만약에 누구라도 ‘지금 놀 때냐’ 핀잔을 준다면 절대 못 쉬어갈 수 없겠죠. (그래서 좋은 의도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모른 채 훈수를 두는 건 그다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하는 듯합니다.)
기나긴 커리어에서 나를 곁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주변에 서포터를 많이 만들고, 본인 또한 주변의 서포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평판을 쌓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만들면 커리어 휴식기에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반대로 평판이 나빴던 사람은 덜컥 쉬었다가 다음 스텝을 정하지 못해 낭패를 겪기도 하죠.
그러니 금전적인 여건과 평판을 어느 정도 축적했다면 쉬어갈 타이밍을 생각할 만합니다. 계획을 세우진 않더라도 환경을 조성해두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Q. 최근 들어 커리어, 리더십 강연과 코칭을 자주 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8월에 한국에서 한 대기업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팀원과의 어려운 대화’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때 제가 강조했던 핵심은 하나였어요.
‘(팀원과 어려운 대화를 앞두고) 그 대화를 실패하지 않고 한 방에 잘하려 하는 건 가장 좋지 않은 태도다’
Q. 오, 정확히 어떤 뜻일까요?
분명 팀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과 쓴 피드백을 하다 보면 팀장도 헤맬 수밖에 없어요. 헌데 이러한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려운 대화 자체를 회피하거나 첫 술에 배부르려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습니다. 한 번에 대화가 풀리지 않죠. 그러면 “실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재능을 탓하게 됩니다. ‘나는 재능이 없다’며 어려운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패턴을 보이죠.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나는 실패하지 않고 처음부터 잘할 거야’라는 태도는 커리어나 리더십 모두에서 제일 위험한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Q. 완벽주의와 위험(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이러한 잘못된 프레임을 만드는 듯합니다.
‘공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곤 합니다.
Q.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때로 ‘멘토링 잘하는 법’을 물어보는 연락을 받는데, 저에게는 이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멘토링은 타인에게 해줄 조언이 있어서, 혹은 서포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힐 때가 많습니다. 하다 보니 잘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식이죠.
그러니 ‘잘하는 법’부터 찾는 건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흥미롭게도 이런 방법론을 물어보는 분들 중에 이제 막 주니어 연차를 벗어난 사회초년생이 적잖았는데요. 어쩌면 이들이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공식을 외워서 빨리 멘토가 되고 싶다고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닐까 짐작할 따름입니다.
Q. 결과물은 완벽해야 하고, 누구보다 빨리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안타깝지만 그렇죠. ‘대기업 취업’을 또 다른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분명 큰 기대를 품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내 커리어를 완성해줄 곳에 드디어 들어왔다는 기대를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 양면이 존재합니다. 이를 간과했다가 회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큰 기대만큼 큰 실망에 치우치는 사례가 (꽤나) 많습니다.
이처럼 (한 방에 해결하겠다는) 조바심과 비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에서 비롯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연차마다 정답지가 있다고, 그 나이에 하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지는 합격선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이를 따지고, 또래와 나 자신을 비교하고, 본인이 나이가 너무 많아서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 늦었다고 포기하게 되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이를 덜 신경 쓰면 꽤 많은 문제가 해소됩니다. (또래 집단을 포함해) 남과 나를 덜 비교하게 되고, 실패도 덜 두려워 하게 되죠. 나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답이나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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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커리어를 건강하게 쌓아가는 법,
20대 때 꼭 해봐야 하는 커리어 도전,
가슴 벅찬 50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용 님의 성장스토리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