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근무를 오랜만에 했다. 초음파실에서 근무하는 내가 응급실 근무를 서는 경우는 당직 때 뿐이다. 그 날도 평화로운(?) 응급실 근무를 서고 있었고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 중 코로나 환자를 가리기 위한 선별검사를 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선별검사실을 가려면 CPR룸을 지나쳐야 하는데 (CPR룸이란 응급실에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들을 위한 방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들어온 환자가 돌아가셨나 보다. 아마도 따님과 어머님이 우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 지나가는 길이 , 아니 내 발검음이 무거워진다. 그 분위기를 아마 견딜 수가 없는 느낌일 것이라. 나의 몸과 나의 다리와 나의 어깨가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마침 내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님 어제 읽은 오은영박사의 화해의 여운일까? 하지만 그곳을 지나자 마자 바로 다른일에 집중한다. 벽을 두고 삶과 죽음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다. 누구는 오열하지만 오열하는 이들의 슬픔에 물드는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융은 삶이 실은 하나인 두개의 수수께끼 사이에서 빛나는 잠깐의 정지상태라고 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일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처럼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마지막을 희망차게 결론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해, 노라처럼 자신의 삶을 가꿔야해. 결국 잠재력이 풍부한 삶이야, 하는 이야기는 너무 뻔한 결론같다.
그냥 수수께끼 사이에서 떠다니자.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니 그 사실을 계속 의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