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다움'
대형 서점의 매대는 현실의 트렌드를 반영해 왔다. 매대에 깔린 책의 제목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요즘 어떤 것이 팔리는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복잡해진 것 같다. 매대가 조금 느리고 독립 서점이 빠른 경우도 있고, 유료 지식콘텐츠 플랫폼이 빠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빠른 것은 SNS와 유튜브지만 이것은 자신이 팔로잉 한 사람에 국한된 시야 이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몇 해 전부터 최근까지 서점 매대를 장식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열풍 또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우리가 그토록 미니멀리즘에 공감했던, 공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유로 지식 플랫폼 퍼블릭에서는 최근 <맥락을 팔아라: 미래의 창>라는 책을 재조명하여, <맥락을 팔아라- Book curated by PUBLY>라는 연재가 실렸다. 생각노트님과 함께 기획한 시리즈이다. 소 주제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의 마케팅' 부분에서 츠타야 서점 CEO의 글을 인용하며 소비의 변화를 나열했다.
첫 단계는 (1st Stage). 물건이 부족한 시대, 그래서 만들면 팔리는 시대다. 이 시대에는 상품 자체가 가치를 가진다. "최고의 맛과 정확한 양의 라면"(삼양라면)이라든가 "걸면 걸리는 핸드폰"(걸리버)까지 어떤 상품이든 용도만 충족하면 팔 수 있다. (2nd Stage). 상품이 넘쳐나 상품을 파는 장소, 즉 플랫폼이 중요한 시대다. 여전히 상품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제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서드 스테이지(3rd Stage)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상품도 플랫폼도 넘쳐나는 시대다.
상품은 용도를 충족하는 정도를 넘어 매우 높은 수준에서 품질이 평준화되었다. 플랫폼도 그 자체로서의 차별성이 매우 적어졌다. (퍼블리-맥락을 팔아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마케팅 본문 중)
9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는 양으로 승부하던 시대였다. '더 많이 '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기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2000년도부터 최근까지는 속도가 그것을 대체했다. 인터넷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많은 상품들이 빠르게 바뀐다. 누가 더 편리하게 소비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것을 플랫폼이 대신했고, '신상녀'서인영 씨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누가 '더 먼저' 속도를 소유하느냐에 따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대였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맥락을 팔아라>에서는 연결을 통한 소비 , 그것이 확산되는 공간들, 매력 있는 것들로 현시대의 소비를 보여주었다. 현재는 유사한 제품, 콘텐츠 들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과학잡지인 <네이처>까지 온라인 사이트를 열고, 모든 지식과 물건,정보가 빠르게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정보와 지식의 증가 속도가 이미 상상을 초월한다. 컴퓨터의 정보처리 속도는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2030년이 되면 지식이 3일마다 2배씩 늘어날 것이라 한다. 예측인 만큼 숫자는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지식의 빅뱅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추호도 어긋날 수 없다.
<생각의 시대-김용규>
미니멀리즘 열풍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빠른 속도의 소비에 지친 우리는 마침내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우고 난 후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은 어떤 것 들일까?
자존감이 심해를 오가고 있을 때 , 나는 쇼핑에 빠져 살았었다. 그 해 첫 달엔 '블프'(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이었다. 명품을 절반에반 20-30프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셀러들의 발 빠른 공유로 전세계 명품을 광 클릭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쳤군...ㅋ)
물론 다 살 수는 없었겠지만... 나름대로 인생 쇼핑을 해보았고, 가장 비싼 곳에서부터 거쳐온 명품이란 아이들이 결국 가장 싼 곳에 도달했을 때의 가격을 만나보는 시기였다. 더 빠르게의 시대이기 때문이었을까? 유행이 지난 명품들은 예뻐 보이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이시기 인터넷 쇼핑 친구들을 많이 사겼다. 그녀들은 보통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에겐 그곳이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이자 자신을 대신할 어떤 브랜드를 찾기 위한 공간인 것 같았다. 나 또한 헐값에 팔리는 아이템들을 광클릭 하기 시작했고 , 집에는 박스귀신들이 울고 있었다.
박스를 숨겨라! 남편이 오기 전에 쇼핑 박스를 숨기려는 그녀들과의 댓글에 한참을 웃어 봤고, 여러 가지 나눔도 하며, 그시기를 무사히 부유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아이템들은 곧 다시 되팔아야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닌것도 많았다. (우리 예전에 한번씩 나도 모르게 요구르트 제조하고 있고, 콩나물 키우고 그런적 있지 않나요?>< ) 이 아이들과 좁은 집에서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무엇보다 그것을 간절히 구하는 그녀들에게 한 떨기 구원을 행하는 일 또한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태는 감히 육아도 해보지 않은 나 이지만 한편 공감했다. 명품을 거의 다 팔아 치운 시기에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인 물건에게는 조금 후회가 남는다.
나의 스터드 팔찌....(생로랑 스터드 뱅글이었는데 , 그 어느 뱅글 보다도 무기같이 생긴 것이 사람 도망가게 만드는 스타일로 나의 취향이었다.) -ㅎ
이후엔 멍하니 옷을 구경하고, 책을 구경하는 시간을 보냈다. 책도 많이 읽긴 읽은 것 같은데 , 댕강 쓸모없는 껍데기가 남아있는 기분이 든다. 더 빠르게 유통되고 있는 책의 시장에서 그저 활자를 넘기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취향없이 ....
29cm이란 쇼핑몰은 단순히 옷을 파는 쇼핑몰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매거진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표어를 내걸고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고려한 글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29CM이라는 개미지옥에 갇혀 아직도 위시리스트를 잔뜩 담아두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내가 이 사이트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곳과 친해졌다는 느낌과 열거된 사물들의 의미를 인식시켜주는 글 때문일 것이다. 친한 언니는 '임블리'라는 쇼핑몰에서 오랜 시간 개미지옥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무심코 임블리의 확장성을 바라보다 그 친한 언니가 하는 사업이 확장해 가는 것을 보니 그 둘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닮아 있다.
결국 우리가 점차 추구하는 것은 연결과 취향의 공유이다. 그 사람이 좋아서 , 혹은 그 사람의 취향이 좋아서 또는 그저 매력 있어서... 주인장의 취향으로 버무려진 편집샵이 맘에 든다면 다른 상품까지 신뢰를 통한 구매로 이어진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닌가 ? 나만 호갱인가 ? !! ㅋ)
지식의 발전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갔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를 동경하고 열광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왜 삶의 여러 가지 답변을 제시하는 지식 유튜버의 생각에 열광할까? 정보와 지식이 생각을 거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때 우리는 그것이 맘에 든다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새로운 생각들, 지식을 몸에 익혀 자신만의 깊이을 만든 사람들은 시선을 한번 더 머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 봤어요. 그리고 그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만든 잡지였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만든 음식점이 [일호식]입니다. 내가 좋아하는것을 선택함으로서 당연해 보이는 것을 뺄 수 있는 용기가 크리에이티브함을 완성합니다.”
매거진 B를 창간하고 , 현재 복합 주거공간 사운즈 한남(Sounds)을 만든 조수용 대표의 말이다.
주거와 라이프스타일 소비가 가능한 이곳은 순식간에 인스타를 도배 했고,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다. 취향이 취향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 것만 같다. 밀레니얼 세대의 나음보다 다름을... <나음보다 다름-저자 조수용> 제대로 적중한 것 같다.
누구나 트렌디 해 지고 싶고, 나만의 취향을 갖고 싶어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취향이 없는 것 같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라. 어떤 참을 수 없는 임계점이 있었던, 혹은 뭐든 다 좋은데 이것만큼은 중요한 쇼핑의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이미 취향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시점이 당신의 취향을 탐구 하는 출발점이다.내가 불쾌했던 공간, 혹은 내가 좋았던 공간의 이미지 , 음악, 벽지 , 소품을 기억해 공통점을 찾아보자.
취향이란 너무나 광범위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볼 때 , 몇가지 취향이 이해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나의 패션 취향중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한가지는 스터드(찡, 무기 같이 생긴 쇠붙이 나부랭이)류를 좋아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을 깊이 파고 들어가 봤는데 ...'음...그래서 그랬구나' . 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추후 궁금해 하지 않으시더라도 자동적으로 쓰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찍어 내릴 것 같은 앞턱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_- )
연애 취향, 이성 취향, 패션 취향, 소비 취향 등등 취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취향에 지배당할 때 소비는 더욱 늘어나고 원하지 않는 장소나 경험을 수용하게 되어버린다. 취향이란 결국 '나다움'의 끝이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인생의 취향을 위해...그럼에도 , '나다움'을 지키며 살아보자. 훗 날 당신만의 취향이 어떤 멋진 브랜드가 될지?
ps. 생로랑 스터드 뱅글 (2015년산 추정) 구해본다. (정신못차림 ㅋ ㅋ)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