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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공원 Jan 03. 2019

2019 <인터내셔널의 밤>

책, 기억, 대화, 부산, 소설

생계와 직결된 듯한 중요한 문제집을 풀면 풀수록 더 나아지는 삶이 기다리고 있기는 한 것 같았다. 돌파하고 나아가고 질문지를 열심히 풀수록 질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정답지를 보고 난 후에는 절실한 신도처럼 다른 정답이 필요했다. 나도 모르게 질문이 없는 사람들을 배재시키기도 했다.

 20대 중반 소설로 첫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움으로 시작된 독서였다. 소설엔 내가 있고, 작가가 흘리고 간 장면이 있고, 일부분은 내가되었다. 서른쯤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소설읽기는 자기 개발서를 씹어 먹는 행위로 대체되었다. 결혼 후엔 부동산 , 주식 투자, 개발서를 읽었다. 그 중간에 연애, 사랑, 삶에 대한 소설, 에세이를 조금 읽었다. 주인공 나미처럼 질문을 삭제시키며 쫓기듯 어깨가 경직된 채 살았다.


 질문들과 함께 사라져 버린 나를 만난 밤은 2018년 11월이다. 쓰는 사람, 소설을 좋아하던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곳엔 내가 배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절차를 밟고 검문, 질문, 통과, 후 자격을 위해 할 목록들이 생겼다.


그 목록들을 들고 2018년 12월 밤 <인터내셔널의 밤>을 만났다.


가끔 내가 난독증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을 만났을 땐 그런 생각이었다. 어쩌면 난독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가 아닐까? '내가 돌파하고 나아지기 위해 이해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요약 세줄, 혹은 한 페이지를 읽어 본 후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법] 같은 개발서를 적용시켜 내가 배제시키거나 판단해 버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펼쳐진 책장 같이 그렇게 사람들이 우수수 스쳐갈 때면 뭔가 다시 끄적이고 있었다. 몸에 새워진 벽이 사라질 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만난 사람, 조각조각 파편으로 남은 사람, 얼굴 없이 냄새만 남은 사람, 기차역에 서있는 사람, 부산역에 덩그러니 놓여진 사람. 사람들이 생각나서.. 이 소설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미처럼 이해의 어려움이 닿으면 다시 첫페이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는 것에 맞춰 사람들은 계속 옮겨질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을 잃은 사람인 채로 길 위를 지나가고 기차가 멈춘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잃은 사람으로 길 위에 자신의 중요한 것들을 흘려버린 존재로 살게 될 것이다. (11P)

 

소설은 사이비 종교에서 도망쳐온 나미와, 트랜스젠터 한솔이 기차 옆자리에서 만나 시작된다. 도망쳐온 사람과 변화한 사람은 만남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어디에 놓여 있든 나미는 쫓기고, 경직되어있다. 한솔은 소설과 자신을 가끔 헷갈려하며 사는 것 같다. 기차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 그런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것처럼... 한솔은 그녀였던 과거에 만났던 영우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 나미를 만난다. 그렇게 각자 부산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서사다. 큰 가지보다 작은 가지들에 담긴 것들이 꽤 굵직해서 줄을 많이 쳤다. 책, 기억, 대화, 사회, 이야기, 여행정보가 낮은 목소리로 반복된다. 요즘 말로 아싸 중에서도 꽤 변두리에 떠있는 두 사람은 서있기 위해 노력한다. 뒷부분엔 시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한솔의 수첩으로 종결된다.

'모든 것이 좋았다.'라는 기록으로...

나미처럼 우리는 매 순간 속해 있으려 하고, 배우려 하고, 누군가를 맹신한다. 그리고 배신을 느끼면 또 다른 것에 맹신하며 걷고 있는 삶에 그나마 안심한다. 속해 있는 순간 중요한 뭔가를 잃고 사는 느낌도든다.


모두가 공인하는 종교를 가지면 뭔가 괜찮아질 것 같았다.(103P)


책에 대한 반복된 가지들이 여러 번 나를 건드렸다.


어떤 책들은 펼치면 아우성치고 소리를 질렀다. 말한다. 듣지 않아도. 소리 지른다. 듣지 않을 수 없게. 나는 혼자 서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혼자 서 있는 사람이야.
책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지나간다. 어떤 함께하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데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이미 몸으로 변해버려 흔적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88-89)
나미는 문득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제대로 써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자신을 지우고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싶은지, 자신을 몰아세움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에 몰두하게 되는지, (99)


 감정에 문제가 생기면 항상 부산에 갔다. 오래 경직 된 채 살아온 나에게 집중력을 안겨준 소설이다. 코모도 호텔, 해운대, 부산역 , 국제시장... 그렇게 내 어깨의 경직이 조금 풀렸으리라...


새사람이 되려면 헌사람의 시기도 있다. 사이비 종교를 믿었던 나미의 사라진 시간처럼... 각자의 마음의 벽안에 숨겨진 헌사람의 시기가 있다.

"사람은 다커도 그렇게 영향을 받고 잊어버리고 변하고 그러는 거예요 "

- 나미의 말처럼 2019년 좋은 변화를 기원해요!



#지니박 #인터내셔널의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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