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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공원 Jul 20. 2022

"애키우는게 어떤 느낌이냐면..."

라고 써놓구 아무말발발연타발발타 ㅋㅋ

"애키우는 거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서른다섯의 팀장님은 쉬는시간  마디마다 아이와 통화하는 사람이었다. 문득 적절한 시기 아빠로 살고있는 그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대해 묻고 싶었다.


" 팀장님 아이 키우는 삶은 어떤거에요?"


"산기슭 있잖아요. 우거진 산기슭이요.  나무가 온통 가득차서 길이 안보이는 비탈진 산이요. 거길 쪼리신고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쉬.지.않.고.... "


이때 나는 아이를 부양하는 압력을 한방에 이해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문학의 들판 을 걷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아갈 길도 천 리 , 되돌아갈 길도 천리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학의 들판 한복판에 서있는 것을 깨닫고 아주 놀랐다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자이, 다자이>


세상을 위해 어떠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어떤 영향력을 위해 일을 시작한다는 인간의 말을 믿지 않는다. 대부분 인간은 살기위해, 먹기위해 혹은 달리 뭘해도 안되니까에 이르러 그 길을 걷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50만 유튜터디언 (구:체인지 그라운드)도  프렉탈(연속적 조직)완성까지 먹고 살기 위해였다고한다. 의미, 영향력,  의도는 이후에 만들어지거나 처음과는 달리 변형된다.


그러니 남의 무용담 표본을 되도록 많이 읽는것에 대해선 백번 찬성이지만, 배움은 용기와 출발의 부분에 필요하며  용기를 토대로 길을 찾는건 오롯히 자신의 이다. 삶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배운 내용을 그대로 쓸일보다는 응용할일이 많다. ! 시작과 응용을위해 배운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어쩌다보니 하고 있다 뭔가 조금 굴러갈 때 쯤엔 온갖 일거리와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게 되는데 (요즘은 인플로 언서 각자가 인터뷰이가 되곤하니까 엄청나게 크고 작은 요청이 쇄도하게 된다. ) 그때가 되서야 자신도 모르는 의도를 찾아 둘러대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과거를 노련하게 기워,  보기 좋은 모양새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소설에 흘러가 놓고는 어떤 의도를 찾아 내야만 하는일이 내게도 많았다. 가령 지난 책을 되돌아 볼 때 나도 모르는 의도를 강의시장에서 조명해 찾아오는 일이 부지기수 였다. 그렇게  반복하고  살다보니 그런사람인 것 같았지만 어떤 위용을 뽐내기위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었다. 먹고 살기위한 하나의 페르소나 하나였던거다. 


착한척도 오래하면 착한사람이 되듯 포장을 배척하는쪽은 아니다. 되려 그 정돈됨과 예의있음을  존경하고 옹호한다. 단지 시작과 중도는 평범하다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중언부언 중일뿐.


흔히 결혼이 사고라는 말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며 아이의 탄생과 육아도 그럴 것이다.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또 가보는것. 그냥 한발짝 걸어 가 보는것. 그러다가 쪼리를 신고 우거진 산을 타게 되는 아이러니...


어쩐지 전지 전능한 연애박사가 개입해 뚝닥!해결해 주면 좋겠지만 그런일은 좀처럼  없으며,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나는  전지전능한 연애박사 로소이다. 이 남자와 살 엄청난 준비를 했사옵니다. 식장에 들어갔으나...말을 안한다는 벽에 가로막히다니요. 사람과 결혼할 줄 알았더니 엉뚱한데 와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한 낮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음을 깨닫고, 또 깨닭으며 걷고 뛸 뿐이다. 각자 보폭의 속도와 그릇대로...



하지만 삶이 잔인한 요인중 하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의 움직임이 그저 시작에 불과 하다는 점에서다. 어렵게 어렵게 결혼에 골인해 보면 그건 더 큰 세계로의 확장. 곧 시작이었고, 여러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에 노출됨을 허락하는 출발선 이었다.


무한한 불안정 속으로 두사람이 들어가겠다는 친절한 도박.




 준비된 상태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준비된 때란건 현금을 모아 부동산하락기에 집을 사겠다는 무모한 다짐, 혹은 주식폭락의 바닥을 맞출수 있으리라는 착각과도 비슷하달까?각잡고 다시 글을 쓰겠다는 나는 지금 고작(불끄고 다 나가주어..) 옛날 썼던 쓰레기 더미를 헤메고 있으며, 각을 잡고 잴수록 더더욱 엉뚱한 글만 쓰고 있나니...ㅎ 어떤의도로 도착할지가 나도 의문이요.


결혼을 시작으로 둘은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걷다가,
세사람. 네사람으로 늘어날수록 의젓하게 걸을 수가 없으며,
 어딘지 모르게 계속 뛰어야 하는 것.


결혼 생활에 대한 사념


한번쯤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는데, 마모되고 퇴색되어 조금 더 객관적 시야를 갖고 싶어 꽁꽁 은패했다. 건들면 툭툭 여기저기로 글이  뻗어나갈까봐.  꽁꽁...

 

어느 시기엔 홧병이 글자를 가렸고, 어느분기엔 눈물이 시야를 덮었으며, 무엇보다 나의 세계로 가득찬 옹고집의 집결체가 될까 두려웠다. 역시나 그때 쏟아낸 글을 보니 뽀시래기 향이 가득하다.


결혼생활 초반부터 끝까지  터진  최상위 문제는 소통이었다. 말없이 기계처럼 일만하는 그가 진국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결혼과 동시엔 거대한 침묵을 지닌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말의소통을 떠나 비언어적 소통또한 먹통이었다. (아...그래 연애땐  많이했어 ㅋㅋ><   연애때도 이조차 안한다?때려ㅊ.. ) 


무시무시한 가 퇴근할땐 양손가득 나를위한 사랑을 물건으로 퍼붓는다. 퇴근과 동시에 식탁에다가 물건(사랑)을 던진다. 오롯히 자신의 방식으로만 고집스럽게 사랑을 전달하는 로보트. 하지만 도무지 말은 하지 않는 국어사전을 잃어버린 꿀먹은 로보트. 반면 오페라공연, 관현악단방불케하는 혼잣말로 서터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5초이상 오디오가 비면 방송사고라는데 여기는 대체 몇년째 사고중인건가...나는 점점 말수가 줄고 활기가 사라졌다. 


(이때 글을 보니 남편을 자판기라고 써놨더라...) 누르면 이것저것 필요치 않은 물건이랑 디저트가 마구나오는데 필요한 말을 하면 먹통인 자판기. Ai는 없어.말은 구겨진 지폐처럼 토해내는 자판기라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닥치면 저기 밑으로 끝없이 떨어졌다가 감사 일기를 썼다가 다시 떨어졌다가 눈을 떳다가 감았다가 가계부를 썼다가 책을 읽었다가 말다가 아메바처럼 살아 있었다. 나는 거기 살아 있기로 결정했으니까 그건 내 결정이니까 두둥실 떠다녔다. 


그러다가 현실을 잊고 싶을땐 옷을 샀다가 반품했다가 집을 알아보다가 말다가 임장을 갔다가 돌아왔다가 빌라를 봤다가 아파트를 봤다가 강남부동산 아주머님을 찾아갔다가, 그러다가 조금 재미있어서  브라운스톤 (부의 인문학 -우석) 님을 귀찮게 하며 부동산공부를 하며 밤을 보내다가  갑자기 육아책을 다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절약을했다가 주식을 보다가 주식글을 쓰다가, 소설책을 읽다가, 심지어 한복모델까지 했다가 한복대회까지 나갔다가 실제는 그. 무..에도 집중하지 못하며,진공관속 강아지처럼 기다렸다. 무음뿐인 자판기에게 이따금 상소문을 올려놓고...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찬란한(?)  골든타임은 그렇게 유령처럼 지나가 버렸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 남자를 이해해보려고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각종 인생 공략집을 읽었고, 남자에 대해 공부했다. 세상사 사는 꼴이 전부 다르다지만 도무지 이런 꼴은 찾을 수 없음에 좌절의 연속이었다. 폐허가 된 집이 점점 부스스 무너저 내리고 수복할 의지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나는 내가 좋고싫고 이상하고>를 쓴 시인은 결혼생활에 대해 사방이 막힌 벽과 같았다고 한다. 결혼 생활의 꼴이 모두 다르겠지만 이런꼴도 많구나 ...위로 받았던 책이다. 사방의 벽이 점점 나를 조여오는 느낌에 수많은 인생 공략집을 먹어치우다 4년만에 침묵의 진실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의 퍼즐을 찾고나니 나머지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내가 원하는 인생과 반대로 가고 있는 사람이란걸 알게됐다. 허탈함에 또 한번 심해로 굴러떨어졌다.


사람은 자신의 잣대로 남을 뭉뚱그린다. 나는 조금 맹하니까 그저 대상도 맹추인 줄 알았다. 그래 맹추 맞다. 테스토스테론에 빠진 바보 멍청이 맹추...당장의 비밀을 위해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허비해 버린 남자.


소설<레바논의>밤에는 여자를 위해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지는데...

 ' 여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시체를 묻고 있는 남자.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이부분을 읽고 남자의 습성을 조금은 이해해 보았다.  지나고 보니 별일은 아니었진 않지만...' .. 미친놈이네' 욕한번 하고나니 별일이 아닌게 될 수?도있다.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한두개쯤 미친구석을 가지고있으니까 너도.나도. 남도.


이 문제는 사과와 용서보다 이걸내가 해결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이걸 내가 굳.이. 왜...내가?! 에때문에  장시간 시달렸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세월이 야속해 오랜시간 화에 시달리며 어찌할수 없으니 꾸역꾸역 계략을짰다. 이때 쓴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라.


'결혼은 인간의 최악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인내력 테스트 ...'


하지만 또다른 면에선 내가 그의 최악을 견딜 수 있는지에서 나라는 인간에 대한 지평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동안 생각보다 많은걸 시도하고 경험했다.그렇게 한 남자를 탐구하는 과정은 어쩌면 나를 탐구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내가 이토록 참을성이 없다니, 나의 무능함, 나의 외모, 나의 쓸모, 자립심등등 모든 걸 치열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으니 어쩌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입으로는 주절거렸지.
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건 나를 사랑하는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퍼즐과 같았다고나 할까? 능력치와 입사동기도 모를 사람을 데려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분에 가까웠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그러니 사랑으로 결혼을 한다는 건 미친 짓에 가깝다고 뭐 그렇게 혀를 끌끌 거리기도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는 대체 어떻게 낳는 것인가...에대한 물음에 대해 두러움이 앞서 미루고 미뤘다.


중간엔 분명 나태가 끼어 들었다.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나는 안된다고 단정해 버리는 마음. 너의 나태와 나의 나태가 합쳐 딩크족으로 살았다. 어느 한 순간에는 이럴수는 없다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외쳐 보기도 했지만 그의 성장 과정과  자존감 부분에 질려 한발 물러섰다. 



다시 아이를 키우는 느낌에 대해 ...


여기까지가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한 한뭉텅이 넋두리 였는데 , 나는 이때에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체 이 이상으로 어떻게 갔을까?! 에대해 고민했었다.  


그들에겐 그저 살아감이 존재 할 뿐이다. 그들의 삶은 2진법 수식처럼 단순하다. 이보다 더 한 수양이 어디 있을까. 기르고 살고 치우고 만들고 먹이고 벌고 그들이 이런 행동만이 존재하는 삶속에서 각종 넘어짐, 상처, 단념에 시달리지만 결과적으로 결과를 만든다. 2세라는 거대한 존재. 인간이 태어난 1차적 이유.


번식


그들은 그저 그 삶을 살아낼 뿐이며 거기에 어떠한 동기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해서 나도 낳고 기른 분들에게 남모를 존경심을 느끼곤 한다. 뭐가 그리 대단치 않아보여도 암묵적 평균에 가 닿은 사람.  매끄러운 외형의 기준따위 잃은 그들 만이 가진 편안히 퇴색된 풍모.





의도를 씌워주세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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