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열매 Jul 26. 2016

청년과 사회적경제

동작사회적경제 청년모임 오픈 세미나에 참여하다 

지역에서 사회적경제를, 덧붙여 청년들의 옹기종기 모임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움직임과 만나는 것은 설렘(!)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경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공부(여기서의 공부는 읽고 쓰기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회적경제를 움터내고 있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 큰 공부가 된다. 


동작에는 사회적경제 청년모임이 꽤 활발히 운영 중이다.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더 의미 있다. 지난 19일, <청년과 사회적경제>라는 주제로 홍기빈 선생님을 모시고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신청을 했다. 덥고 습한 여름밤, 동작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모인 꽤 많은 청년들은 무엇을 같이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었을까. 

홍기빈 선생님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 역자로 처음 알게 됐는데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와 같은 저서를 통해 언젠가 꼭 강의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 만남만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홍기빈 선생님은 문체만큼이나 명쾌하게 강의를 진행하셨다.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커다란 첫 질문이 막연하게 다가왔다. 그 막연한 질문을 거둬내고 '살림살이'라는 현실적인 관점을 던졌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행위, 살림살이의 경제야말로 실질적인 경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짧은 생각을 더해본다. 경제학적 인간의 선택은 희소성, 목적 합리성, 효율성 등 어떤 제한적 조건에 대한 인지와 그에 맞춘 최상의 선택으로 이해된다. 선택은 수치화되고 계산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선택이 행복(?)한 선택일까. 


홍기빈 선생님은 옛날 두메산골에서는 '돈'을 하나의 생필품으로 인식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평생 바삐 몸을 움직여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던 두메산골의 할머니가 산에서 나물이며 버섯 등을 캐어 시장에 팔러 가실 때 "(나물 팔아) 돈 사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덧붙이며. 돈은 수단이었다. 돈을 목적으로 상정하게 된 그 순간부터, 돈벌이의 경제에 과도하게 몰입하게 된 그때부터 우리는  화폐, 상품, 시장을 통해 '좋은 삶', '행복한 삶'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화를 믿게 된 것일까? 설사 시장에 있는 것들로 삶을 조달해나갈 수 있다한들 그것이 정말 좋은 삶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 견고한 믿음이 깨어지고 있다. 그 깨어짐 사이에 그렇다면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또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것들 중 시장을 통해 만족스럽게 조달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스며들게 된다. 그 물음의 답을 사회적경제에서 찾아보려는 것이다. 

홍기빈 선생님의 책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읽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행복한 삶은 '사람다운 삶'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좀 더 풀이해서 살펴보면,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발휘하여할 수 있는 모든 인간 활동에 도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 속에 있는 인간적 이성을 모두 끄집어내어 풍부하게 발전시키고 꽃 피우는 것을 행복한 삶"(본문 88쪽)이라고 말한다. 그런 행복한 삶을 사회적경제에서 만들어볼 수 있을까? 


2시간이 넘는 강의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픈 된 공간에서 밀도 있는 이야기가 계속됐다. 


사회적경제는 공공과 시장의 빈 틈을 메운다. 누군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사회적경제에 책임전가 된 것은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좀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적경제는 분명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의 시도가 오히려 정부(혹은 시장)의 새로운 정책적 접근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청년들은 그 만들어짊의 중심에 서고자 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시도하고 있다. 소모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청년들이 해야 할 또 다른 몫이기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일까. 지금처럼은 아니라는 생각,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다짐.. 혹은 또 다른 그 무엇? 그게 무엇이든 청년이 갖고 있는 속성들-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변화에 유연한 자세 등-이 사회적경제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강의는 그러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생각을 더 가져다주었다. 




생산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생산 도구란 인간이 스스로의 삶에 물질적 기초를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생산 메커니즘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생산 메커니즘이 사람들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중략) 경제 메커니즘은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본문 188쪽 



* 행사가 열린 동작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노량진에 위치해 있다. 세미나실, 회의실, 커뮤니티홀 등 알찬 공간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명함이 꽂혀 있고 각 기관의 홍보 브로셔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오픈 공간은 물론 입주기업들의 사무실,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50 플러스센터가 바로 옆에 있어 지역주민들의 오고 감도 꽤 있다.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