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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4. 2023

여성과 사회적경제


시작하며

여러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 같은데 따져보면 사나흘 전 일이더라고요. 민감한 사안들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자극의 감도가 떨어집니다. 전체를 읽고 따지기보다 눈에 띄는 키워드 정도에만 집중하게 되고요. 


지난해 제가 속한 조직에서는 ‘여성가족부’의 연구 용역을 수행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부처 관련 뉴스를 읽는 게 살짝 맘이 그렇더라고요. 애써 들춰보지 않고 있었는데 요 며칠의 뉴스들, 그러니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조직으로 이관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여러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성별, 세대, 출신, 지위, 계급, 관계 등 한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텐데 우리 사회에서는 성별이 참 중요하구나.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지향할 것인지, 그 사이의 충돌은 없는지, 충돌이 있다면 무엇을 더 중요시할 것인지 등의 질문을 던질 때 성별이 답을 내는 데 큰 영향을 주는구나 싶어요.


일하는 여성, 살림하는 여성

남성이 가장으로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가사, 육아, 간병 등 가정 내 노동을 담당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있잖아요. 고도의 경제성장기,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을 보장하는 고용 시스템 속에서 가능한 그 모델 말이죠(적어놓기만 해도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 같은 느낌입니다). 고용과 임금이 안정적이라는 대가로 정직원은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었고 그래서 가사노동은 불가능했습니다. 그 역할을 누가 떠맡았을까요? 대부분은 여성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를 떠올리면, 일하는 아빠와 살림하는 엄마가 여러 친구의 가정생활(?)에 있어 디폴트 값이었어요.


저희 집은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살림하는 엄마가 있었죠. 결혼과 출산 과정을 거치며 경력 단절을 겪은 엄마가 노동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엄마에겐 그 좁은 문밖에는 없었겠구나 싶어요. 그렇게 제한된 선택지 중에서 선택을 내렸고, 엄마는 가정 밖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됐습니다. 가끔 엄마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무엇을 했고,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기억하는지-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그 여성을 마주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일을 한다’는 그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참 좋아요. 


하지만 그렇게 일하는 엄마도 가사돌봄 노동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살림’이라는 이름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죠. 최시현의 책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성의 경제적 역할과 그 수행 영역은 실로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성별화된 규범은 편견을 만들어왔다. 여성의 일은 대체로 비공식 노동에 치우쳐 있으며 주로 가족과 가정 내 소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경제 실천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가족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유도되었다. 여성의 노동소득을 ‘반찬값이나 버는 일’ ‘아이 학원비 대는 일’ 정도의 덜 중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주요 소득은 집안의 남성이 벌어와야 한다는 가정은 ‘남성 가장’과 ‘여성 집사람’의 성역할을 강화해왔다. -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본문, 251쪽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죠. 내 안에 어떤 고정관념과 편견들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여성과 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는 지역사회에 기반해 활동합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지역사회 네트워크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회적경제가 포커싱하는 지역밀착성과 관계중심성은 여성과 연결고리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물음 속에 여성의 일자리 대안으로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작업이 꽤 있었습니다.

구글에 '여성' '사회적경제'로 검색해보면 관련 여러 자료들이 나옵니다.



연구자료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되어가지만,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발행한 <서울 여성협동조합 생태계 연구>는 지금 시점에서도 던지는 시사점이 큽니다. 예를 들면 이런 제언들입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각각이 아니라 ‘여성사회적경제 네트워크’라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작고 촘촘한 네트워크와 유연하고 확장된 네트워크가 서로 교차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생태계가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여성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은 여성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성풀뿌리 모임, 여성마을기업, 여성사회적기업, 일공동체 등과 여성사회적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나아가야 함.

살림의료생협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듯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이 같이 사회적경제 조직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상호 거래를 활성화할 경우 협동조합이 지속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튼튼히 만들어질 수 있음

여성협동조합 생태계는 엄밀하게 협동조합으로만 네트워크를 한정짓지 말고 지역의 여성단체나 풀뿌리 소모임, 부모커뮤니티, 여성마을기업, 여성사회적기업까지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하여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함 -<서울 여성협동조합 생태계연구>, 본문 152쪽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기존과는 다른 어딘가 대안적인(?) 노동형태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여성과 협동조합, 여성과 사회적경제를 연결하려는 작업의 전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서도 언급한)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사회적경제의 주된 특성은 흔히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입니다. 그래서 여성과 사회적경제, 둘이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사회적경제의 실천이 주로 돌봄서비스 영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렇게 여성 노동이 공정 영역으로 이전됐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성별노동분업’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주환 동아대 교수님의 2015년 논문 <사회적기업과 젠더 담론의 정치동학>을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17년 한국여성학에 실린 <사회적 경제와 여성노동 재의미화의 가능성: 서울시 여성 손작업 협동조합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입니다. 논문은 여성의 일자리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갖는 의미와 딜레마를 살펴보는데요, 이때 손작업협동조합이라는 사례를 가져와서 여성 노동의 현황을 확인합니다.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이미 노동시장에서 경력 단절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에 모였을 때 경력단절 없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자신의 적성과 취향을 살려 “내 자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창조적인 작업에 대한 자부심과 협업 활동으로 일정한 수입을 낼 수 있다는 기대, 이런 부분이 단순히 취업률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여성 일자리의 독특한 의미를 보여주죠.


연구자들은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의 질이 임금의 측면에서 볼 때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아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손작업협동조합 또한 수익이나 노동집약성, 안정성 측면에서는 괜찮은 일자리로 보기에 무리가 있지만, 1) 창의적 작업으로써 손작업 자체가 주는 보람, 2)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한 대안적 조직문화, 3) 전체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체제 안에서 손작업 중심의 생산이 갖는 의미를 연구 과정에서 확인합니다. 여성 노동의 의미를 다시 재구성한 거죠.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에서 여성 중심의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변화와 움직임, 가능성을 계속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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