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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5. 2023

피보팅, 사회적경제조직도?


시작하며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여기저기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 세상의 많은 일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상황일수록 어떤 답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답을 찾는 사람들이 남긴 단어들만 메아리처럼 남아 곁을 맴돌고 그러네요.


‘칼을 뽑았으면 어디 무라도 썰어야지’의 마음으로-여기서 그 칼이 과도인지 맥가이버 칼인지는 일단 제쳐 두고요(아, 이걸 제쳐 둬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슬렁슬렁 칼질을 하고 있는데 썰려지는 것은 무가 아니라 저 자신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무뎌지는 과정에서 얻는 것도 또 잃는 것도 있겠지요? 두서없이 시작했지만, 이번에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만들기-측정하기-학습하기

피보팅(pivoting)이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한 번쯤 스치듯 만나셨을지 모르겠어요. 이 단어는 원래 스포츠에서 종종 등장하는 용어인데요, 몸의 중심축을 한쪽 발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며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동작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농구에서 공을 잡은 선수가 상대방을 피하고자 한쪽 발은 가만히 두고 다른 발을 움직여서 방향을 전환하는 거죠. 경영전략에서 피보팅은 외부 상황이 바뀌거나 성과가 예상한 것보다 낮을 때 비전은 유지한 채 사업의 방향, 전략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스타트업에선 이게 당연한 생존전략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서 모든 기업의 주요 과제로, 기업을 넘어 사람에게도 중요해졌습니다.


한쪽 발을 단단히 땅에 디디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방향을 전환합니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요즘, 많은 시간을 투입해 쉽게 바꿀 수 없는 완벽한(?) 전략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신속하게 전략을 만들어 테스트해가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죠. 결국, 우리는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각각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그 구분된 공간 안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이지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때 모든 것을 흘러내립니다. 전혀 무관했던 산업들도 연계, 융합되면서 경쟁 구도 자체가 바뀌는 거죠.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닐까요? 그동안의 안정적인 공간이라는 것 자체가 텅 비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창조적 파괴’, ‘기술 혁신’, ‘기업가 정신’ 등의 용어들과 함께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한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기업가 정신이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하고 어려운 환경을 해쳐 나가면서 기업을 키우려는 뚜렷한 의지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런 기업가 정신이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만들고 측정하고 학습하고 다시 만드는 그 지난한 과정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요?



사업 바꿀 수 있다!? 없다!?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사회적기업 두핸즈의 브랜드 다큐멘터리를요.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두핸즈의 목표를 담담하게 담은 영상인데 신선하더라고요. 꽤 오래전 종이옷걸이를 제작해 옷걸이의 종이면을 기업에 광고판 형태로 임대해 광고로 수익을 내고,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두손컴퍼니 이야길 들었었거든요. 물류 사업으로 전환했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은 나는데, 지금처럼 규모화한 사회적기업이 됐는지는 몰랐던 거죠. 이미 2015년 물류대행 브랜드 품고(Poomgo)를 오픈하고 소기업 대상으로 풀필먼트(Fulfillment.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 사업에 집중한 두핸즈는 올해 기준, 용인, 남양주, 일산, 파주, 음성 등 5곳에 총 1만 2000평(약 3만 9600m2) 규모의 풀필먼트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9월 기준으로 218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고요, 누적 투자 규모가 320억 원이라고 하니 상당합니다.

*두손컴퍼니는 2021년 12월 두핸즈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니까 두핸즈는 제조업에서 물류업으로 일종의 피보팅을 한 겁니다. 두핸즈는 제조업을 하기 위해 시작한 회사가 아니라 노숙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니까요. 고도화한 물류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하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내부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일반 영리 기업에서 문제는 고객의 니즈를 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고민하면서 피보팅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소셜 비즈니스에서는 종종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사업 아이디어 그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때론 사회문제에 대한 포커스를 잊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 사업이 생각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어서 빨리 바꾸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19년 사회적가치와 기업연구에 실린 <두손컴퍼니의 지속성장과정 사례연구>입니다. 논문은 비즈니스모델의 혁신이 소셜벤처의 지속성장에 중요할 것으로 보고 두핸즈 사례를 창업이전단계, 창업단계, 사업 전환 단계, 사업 확장 단계의 4단계로 크게 구분하여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과정을 살펴봅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한 표입니다. 딴 소리인데요(..) 논문은 앞과 뒤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나 매력적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지, 또 얼마나 감동적으로 마무리하는지 서론과 결론을 읽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예, 제가 그런 사람...) 이번 논문엔 요약표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논문의 마무리도 깔끔한 느낌적인 느낌을 줍니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환경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성장단계마다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창업 초기에는 다양한 대안을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이 중요하고요. 한편 인적/재무적 자원 확보가 쉽지 않은 사회적경제기업들은 관련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혁신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기업가 개인이 가진 인적자본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사회적기업의 목표 역시 생존입니다. 비즈니스가 성장해야만 사회적기업의 소명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두핸즈의 경우에는 생존을 통해 고용 확대를 이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두핸즈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빈곤퇴치’라는 소셜 미션과 함께 ‘이커머스 풀필먼트 솔루션’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고 합니다. 논문은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미션과 스타트업의 효율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거죠. 



사회적 문제만 해결하려면 꼭 사업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기부와 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죠. 그런데 사회적기업을, 협동조합을 한다는 건 비즈니스를 통한 문제 해결을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사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경쟁하고, 협력하고, 수익도 충분히 내면서 또 구성원들이 만족할 만한 급여도 지급하고 그렇게 함께 성장해가야 합니다. 단순히 사업 크기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구조를 갖춰서 말이죠.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정말 무리한 요구 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역시도 그런 글을 쓰고 있네요.


정말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제대로 ‘잘’ 해야겠다 생각하면, 시작부터 막혀요. 앗, 아닙니다. ‘만들기’-‘측정하기’-‘학습하기’ 이거 하면서 조금씩 해보면 되겠죠? 그런 거겠죠? 명확한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수많은 물음표를 띄우게 되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노래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장기하의 얼굴들이 부릅니다. 초심.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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