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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7. 2023

리더의 역할


시작하며

갑작스레 나오는 한숨을 쉽게 털어낼 수 없는 요즘입니다. 황망스러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려 해요. 내가 살아갈 시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선택하고, 어떻게든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애도는 기한의 정함이 없기에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의 책임, 그리고 듣는 리더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리더는 조직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각자의 역할이 무엇이며 그 업무의 목표는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 시작은 리더 자신의 목표를 알리는 것입니다. 관리자와 리더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야말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고 그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무취미의 권유>에서 말합니다. 


“‘내가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에 대해 내가 한결같이 지니고 있는 생각은 ‘당신부터 바뀌어야(교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꿀 것인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와 같은 물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밝히지 않는 리더는 신뢰할 수 없다.” <무취미의 권유>, 81쪽


리더에게 주어진 수많은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감에 바탕한 구체적인 리더의 실천이 귀한 때입니다. 대체 책임(responsibility)이란 무엇일까요?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책임의 근원적 의미는 '응답하기'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때의 응답은 상황과 맥락에 맞는 적절한 응답이겠죠. 김애령 교수는 데리다를 빌려 자신의 책 <듣기의 윤리>에서 책임은 말하고 있는 것에 반응하는 것(respond for), 대답하고(answer to), 응대하는(answer before) 것이라고 말합니다. "응답하면서 책임을 지거나 누구 앞에 응대한다. 데리다는 책임의 근원적 의미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나 자신보다 우선하며, 타자에 대한 반응이 나 자신에 대한 대답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강조한다." <듣기의 윤리>, 254쪽


잘 듣는 것, 아니 그것을 넘어 들리지 않는 것에까지 귀를 기울이고 말이 존재하는 상황과 맥락, 방식 등을 담는 예민한 듣는 행위가 어쩌면 책임의 시작일 수 있겠죠. 리더는 말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책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듣기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듣는다는 것은 큰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지만, 막상 서로가 이해한 내용이 달라 당황스러운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의 듣기는, 새로운 질문에 열려 있으며 질문과 대답의 주고받음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능동적인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경제조직의 리더

리더십은 ‘일정한 상황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이나 집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리더는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1)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적극적 행동을 하도록 동기 부여하고, 2) 개인과 집단의 조정을 통하여 협동적 행동을 촉진/유도하고, 3) 조직 외부로부터 지원과 협조를 확보해야 합니다. 조직의 변화와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리더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습니다.


1930년대부터 사회심리학과 조직행태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리더십 이론이 발전되기 시작했죠. 1940년대 후반까지 리더십 연구는 리더의 특성을 인성으로 간주하는 연구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리더의 행동과 리더십의 관계에 초점을 둔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리더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리더 유형을 가질 수 있으며 효과적인 리더 행동 유형은 상황에 따른다는 상황적 리더십 모델 연구가 이루어졌죠. 1980년대 이후 변화와 혁신 중심의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변혁적 리더십, 거래적 리더십, 공유 리더십 등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자조, 자기 책임, 민주, 평등, 형평성 등을 기본 가치로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조합원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조직이죠. 그래서 협동조합 운영에 있어 조합원 참여를 위한 동기부여는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점진적으로 조직 구성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감을 고취하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율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동기를 불러일으켜야 합니다(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리더의 몫입니다. 모든 리더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협동조합은 물론 사회적경제조직들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기존의 가치를 계속 혁신해 나가야 합니다. 리더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경제적 가치추구가 가능한 구조를 갖춰야 하는 거죠. 호혜와 연대,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조직은 다른 리더십이 필요한 것일까요? 지난 10월 15일 다음 세대 사회적경제를 고민하는 모임인 넥스트SE에서 진행한 연례 세미나는 '사회적경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주제로 다뤘습니다. “구성원들이 자율과 책임에 기반해 성과를 낼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본인(리더)의 역할이라는데 더 초점을 맞춰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꼭 사회적경제조직에만 해당하는 리더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 일반기업들 역시 민주적 참여 기반 리더십을 고민하니까요. 어쩌면 리더십 유형으로 사회적경제조직과 일반기업을 구분해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구성원에게 동기부여를 통해 성장을 돕는 한편, 구성원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해 가는 리더는 어느 조직에서나 귀한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같은 리더십 유형이라도 조직의 철학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요. 구성원들이 왜 참여해야 하고, 왜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지 등 사회적경제조직의 다름이 여기에도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참 많습니다. 이 많은 일을 하기엔 리더의 하루는 너무도 부족할 듯싶어요. 그래서 리더십만큼 든든한 팔로우십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19년 사회적가치와 기업연구에 실린 '사회적경제 조직의 민주성과 리더십에 관한 사례연구: 사회서비스 제공 사회적협동조합을 중심으로(안상훈, 박종연)'라는 논문을 살펴봤습니다.


논문은 경제조직으로서의 안정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조직의 민주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조직의 지속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가설에서 시작합니다. 조직의 발달단계에 따라 민주성과 리더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탈리아 카디아이와 사회적협동조합 3곳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살펴봅니다. 카디아이 사례에서 확인한 민주성과 리더십이 3곳의 국내 사례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매칭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사회적경제조직의 민주성은 일반 기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중요하지만,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직의 발달단계마다 필요로 하는 핵심과제가 다를 수 있는 이것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동등한 의사결정 권한만을 강조하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업이 안정된 기반 위에 내용적 민주성(논문에서는 구성원이 조직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과 조직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성장한 구성원들이 실제 조직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할 수 있는 참여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내용적 민주주의라고 정리합니다)을 강화할 때 1인 1표의 형식적 민주주의 순기능을 발휘해 사회적경제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고 정리합니다. 초기 단계에는 리더가 제시하는 목적과 가치를 구성원들이 내재화하며 성장한 뒤 조직운영에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면 조직이 성숙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관료화 경향과 보수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요. 

분석내용을 요약 및 비교한 표입니다. 국내 사례 조직 3곳 모두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경영능력과 리더십이 경제적 성과에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내용적 민주주의에선 차이가 나타나는데요, 사례 A는 참여적 의사결정 구조보다는 구성원의 성장에 초점을, 사례 B는 참여적 의사결정 구조, 사례 C는 구성원 성장에 보완할 부분이 확인됩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연구자들은 사회적경제조직의 경제적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민주성이 아니라 리더십이라고 마무리합니다(결론에 대해서 저는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연구자들의 분석은 그렇습니다..)




사회적경제조직의 생존에 있어 리더십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적, 인적, 네트워크 등 자원이 부족한 사회적경제조직에서 조직의 리더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강력하죠. 조직의 토대를 구축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안정기에도 리더십은 필요합니다. 앞서 리더십 연구의 흐름에서 확인했듯 리더십도 여러 형태가 있고 상황에 따라 강조되는 리더십도 달라지겠지요. 사회적경제조직 역시 시기별로 어떤 유형의 리더십이 더 효과적일지, 그리고 한 명의 리더가 아닌 리더 그룹이 팀으로 움직이는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은 가능할지도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형식이 아닌 내용적 민주주의를 조직 내에 어떻게 구성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이 노래 함께 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링크 공유합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마음, 서로에 기대어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https://diveintocoop.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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