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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8. 2023

공동체는 무엇일까요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가 그 변화의 흐름을 위협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여 있네요. 어찌할 수 없이 쏟아지는 슬픔에 휩쓸리게 되는, 쉽지 않은 시간이네요. 



모두의 참여, 우리의 변화

오늘도 온라인 서명을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름을 적지만, 적으면서도 사실 반신반의해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변화는 가능할까요?’ 물론 함께 만든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고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학습했는지 묻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요. 거기다 얼마 전 읽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졸데 카림의 <나와 타자들> 속 문장이 칼날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우리가 분노에 차 청원서에 서명하거나 좋아요를 클릭할 때 그것은 진짜 자기 결정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정체성 안에서 우리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블뤼도른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민 단체 활동에 관계하는 일 혹은 공공장소에서 캠페인을 펼치는 일 등 이 모든 정치활동은 단지 모의 실험일 뿐이며, 우리가 실제 민주주의 질서 안에 살고 있다는 커다란 환상에 기여할 뿐이다. 이 모든 일이 단지 포스트민주주의 연극의 일부일 뿐이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축소된 민주주의의 모순된 모의 실험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활동은 '민주주의의 자기 이해'를 경험시켜 주는 동시에 제외와 배제, 불평등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집단적 자기 환상'의 실천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이런 정치는 감정해소를 통해서 견고해진다." <나와 타자들> 5장. 정치 무대-팬으로서의 참여, 154쪽


텍스트를 읽으면서 ‘어떤 행위 속에서 참여하는 나’, ‘변화를 만들어가는 나’를 연기하고 거기에 만족하고, 그렇게 감정해소를 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닌가 하는 좌절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자기 의심과 자기 부정이 더 짙어지네요. 그런데 번역가 황석희 씨가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애도는 무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유가족에게 그리 닿지는 않는다. 애도는 오히려 유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담한 내 마음을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이다. 지금은 책임자들이 유가족에게 앞다투어 애도와 위로를 건넬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우리의 슬픔은, 우리의 참여는 당사자들을 응원하는 그것이어야 할테고 그들이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겠죠. 애도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이제 없는 시대 같아요. 우리는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기대어 어떻게든 앞으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징후적 질문이라는 결론으로 이졸데 카림은 글을 마무리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의 질문이고 그의 유명한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졸데 카림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일종의 페티시다.”(296쪽)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의 해답을 알려줄 한 사람이 존재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바마, 마크롱, 버니샌더스 등등에게 쏟아졌던 열광의 원인이라고요.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대답되지 않고 그대로 남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요철없이 매끄러운 세계에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원하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공동체

공동체는 무엇일까요. 커뮤니티(community)를 흔히 공동체나 지역사회로 번역하는데요, 뭔가 커뮤니티의 말랑말랑함과 유연한 느낌적인 느낌이 우리말이 되고 나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때론 커뮤니티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죠. 공동체는 행정권역으로만 구분할 순 없겠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공간과 소통하는 그런 '걷기'의 공간과 닿아 있는 것이 커뮤니티나 공동체가 되지 않나 싶어요. 


저에게 공동체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으로 존재합니다. 제 약점이나 한계, 이기심이 드러나고 또 타인의 실수와 약점도 보여지는 곳이죠. 그래서 서로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의견, 서로 다른 정체성, 그리고 때론 나를 공격하는 사람까지도 서로 부둥부둥(..)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싫은 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하고 좋게 바꿔가야 합니다. 많은 시간이 걸릴테고 때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 있겠죠. 그런 사실은 인정하고 버티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어요.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용기를 서로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창 느슨한 연대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느슨한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더라구요. 결국은 끈끈한 누군가의 노력이 있기에 느슨한 연대도 지속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몇 없는 관계들이나마 들여다보고 보살피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0년 한국문화인류학에 실린 '마을 기업가처럼 보기: 도시개발의 공동체적 전환과 공동체의 자본화(이승철)'라는 논문을 살펴봤습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나오는 페이지에서 '53-1-이승철.pdf' 파일을 다운 받으시면 논문 보실 수 있어요�


논문은 성북구에 위치한 B마을의 공동체 기반 도시개발 과정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정의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추적해 마을만들기 및 사회적경제 실천이 기반하는 새로운 사회적 상상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성북구 마을·사회적경제 센터 활동에 결합합니다.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사회적경제 생태계 수립’은 서울시가 만들어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중심 발전주의와 시장중심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받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기능을 역량강화된 공동체에 위임하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공동체를 통한 통치’ 기획과 상응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죠.


연구자는 B마을의 워크샵(전체 강의와 마을별·기업별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구성)을 들여다보며 몇 가지 장치들을 확인합니다. 차례로 1) 커뮤니티 자원(자산) 매핑(Community Asset Mapping), 2) 비즈니스 모델 분석도구, 3) 스토리텔링, 4) 마을 브랜딩(place branding)으로 명명하죠. 연구자는 커뮤니티 매핑이 단순히 장소의 의미를 성찰하거나 마을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넘어 새로운 커뮤니티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는 부분을 언급하고, 또 워크샵 동안 발굴, 수집한 공동체 자산 포트폴리오는 마을의 전체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자본화의 실천이기도 하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연구자는 기존의 국가, 사회, 시장의 구분을 무화시키며 등장한 '혼종적' 공간에서 사회적 유대와 친밀성에 대한 강조가 투자 및 기업의 논리와 긴밀하게 접합된다고 언급해요.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공동체는 호혜성과 상호의무의 결합체로 ‘마을’의 특성과 전체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기업가’의 역할이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결합된 ‘마을-기업가’로 기능하게 된다고 정리합니다. 이때 마을-기업가는 공동체적 가치를 자신들의 미션이자 목적으로, 비즈니스적 실천을 일종의 방법론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것을 원하는데, 이는 투자자로서 정부가 피투자자인 마을 공동체 및 마을기업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좀 더 정확하게 가치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흐른다고 정리합니다. 연구자의 표현을 빌려오면 “잠재적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구성해야 하는 ‘마을-기업가’로서의 공동체의 형태와 역할은(중략)” 그렇게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강조됩니다. 


논문은 전통적인 공동체가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의해 단순히 시장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 도시개발의 실천과정에서 사회적 유대와 투자적 합리성이 긴밀히 결합한 새로운 혼종적 공간과 경제적 합리성이 등장했다는 지점을 밝혀냅니다. 전환의 과정에서 불협화음과 마찰지점들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거죠.


논문을 읽으면서 혼종적 지점들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선과 문법에서 읽혀지고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혼종적인 공간이 자본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또, 기존 경제학/경영학의 시각에서 이야기 된다면, 그 문법 속에서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에 한계를 갖게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익숙한 개념을 향한 낯선 질문과 개념화가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꽤 흥미로웠습니다. 정책과 현장의 움직임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었으니까요. 공동체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것이기도 합니다. 그 격차가 생각보다 꽤 커서 논의를 한 데 모으기도 쉽지 않죠. 그렇지만 계속 공동체를 화두에 올리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공동체의 감수성>이라는 책이 나왔더라구요. 오늘 택배로 책이 도착해 이제 읽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공동체의 본질에 던지는 일곱 가지 질문'이라는 부제를 따라서 찬찬히 공동체를 향해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같이 해볼까요?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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