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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04. 2023

당연한 것은 없다


시작하며

원래 그런 건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은 없으니까요. 누군가 틀을 만들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동조하고 함께 그 틀을 갈고 닦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요, 그래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여지가 있는 거죠. 명쾌한 답변만큼 질문은 중요합니다.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참 귀한 것 같아요. 당연하다는 생각을 깨트리니까요. 익숙함에 균열을 내는 행동은 커다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꺼낸 사람에게 해답을 요구하게 돼요. 어디 한 번 해보시지, 팔장을 껴고 지켜보는 거죠(네,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좋은 질문과 해답이 항상 세트로 묶일 순 없고, 답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찾아야겠죠.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익숙함에 던져진 질문에, 비어 있는 해답을 찾는 과정에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요.



아무거나 물어보세요

인공지능연구소인 오픈AI에서 지난 11월 30일 오픈한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가 요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질문이나 요청에 ‘대화’를 통해 응답합니다. ‘이루다’나 ‘심심이’ 같은 서비스가 있었기에 챗봇은 우리에게 익숙해요. 그런데 이 친구(?)의 답변은 놀랄 만큼 맥락을 잘 짚는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챗지피티는 2021년 말까지 인터넷상에 게시된 정보를 학습해서 이를 토대로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다고 해요. 꽤 정교한 답변이 인상 깊습니다. 


우리말도 곧잘 알아들어 챗지피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는데요, 한층 더 깊이 있게 파고들면 아쉬움과 한계가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답변보다 더 훌륭한 답변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물론 챗지피티의 답변은 단순 설명적이고 어떤 통찰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저희가 읽고 쓰는 모든 텍스트가 그런 통찰과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읽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텍스트가 아니라면 인공지능이 생산한 글이 더 나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나니 챗지피티의 존재가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워집니다. 한편, 챗지피티를 이용하면서 질문할꺼리가 많아야겠구나 싶더라구요. 이것저것 질문할 것들을 긁어모으면서 제가 참 궁금한 것도 많지 않고,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인공지능과도 '대화'를 하려면 꺼리가 필요합니다.� 


지금 챗지피티는 무료로 사용 가능합니다. 오픈AI 가입은 지메일 계정 인증으로 가능할 만큼 간편합니다. 이번 기회에 눈부시고도 위협적인(?) AI의 세계를 경험해봐도 좋겠다 싶어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고 챗지피티가 답변을 해줬습니다. 일터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AI 및 관련 기술개발의 최신 현황을 알고 있는게 중요하다고 하길래 영문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고 파이썬 코드를 물어보기도 하는 등 챗지피티와 즐거운 대화(?)를 나눴네요. 저도 모르게 챗지피티와 감정적 소통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변화의 문턱에 서서

라이프인에서 연말기획으로 준비한 기사 ‘다사다난했던 2022년, 소셜섹터 결정적 순간 돌아보기’를 읽었습니다. 주요 이슈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안팎의 차이가 보이더라구요. OECD에서는 사회연대경제 및 사회혁신 권고안을, ILO에서는 사회적경제 공식 정의를 발표했다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오는 동시에 서울시와 시민사회단체의 갈등,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 폐지와 같은 국내 현안들도 함께 보였습니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합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당연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절차가 생략된다면 그것은 또 문제가 아닐까요? 지난 8월 공공기관 경영 평가 시(100점 만점) 사회적 가치 구현 지표의 배점을 기존 25점에서 15점으로 낮추고, 재무 성과·업무 효율 지표의 배점을 현재 10점에서 20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공공기관 관리 체계 개편 방안’이 확정됐습니다. 사회적가치와 공동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심으로 제도가 변화하는 흐름과는 사뭇 어긋나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의 현실이겠죠.


사회적경제, 사회적가치에 대한 개념에는 암묵적인 해석이 담겨있고, 그 해석이 제도의 바탕을 이룹니다. 사회경제·구조적 조건, 권력 관계, 문화 등 사회적경제가 어느 쪽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석하는지는 제 각각 다릅니다. 근데 그렇게 애매한 해석을 하기보다 안전과 일자리, 공동체와 공공성, 상생과 지속가능성, 혁신과 같이 사회적경제의 본질에 집중하면 간단하지 않을까요? 사회적경제, 사회적가치가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가져오려 하는 변화와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직관적으로 사회적경제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지금의 시대에 사회적경제가 가진 의미를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수자를 돌아보고, 모두의 가용적 기회를 보장하는 것, 그래서 공공과 민간에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 사회적가치의 본질이고, 이를 조직과 구성원들 간 관계로 담는 것이 사회적경제니까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1년 중소기업연구에 실린 '혼합조직으로서의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경제적 가치 추구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살펴봤습니다. 논문은 사회적 가치 및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혼합조직으로서 사회적기업의 특성을 일반 영리기업, 비영리조직과 비교해 살펴봅니다. 기존 연구가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특수한 조직 형태라는 것에 가정하고 들어가는데 여기에 관한 근원적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논문의 시작입니다. 


논문은 사회적가치연구원에서 제공한 사회적 가치 서베이 설문조사 자료를 활용해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사회적기업, 영리기업, 비영리조직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향(orientation)과 실제 조직운영(operation)을 주요 변수로 설정하고요.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설문항목을 가져와 분석한 결과, 1) 이중가치 통합 추구 지향 강도는 비영리조직> 영리기업 > 사회적기업의 순으로 높게 나타납니다. 사회적기업에 전제되는 조직 혼합성과 다른 결과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맥락을 고려한 해석을 내놓는데요, 인증을 받기 전에는 “인증 요건에 부합하고자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지만 인증을 받은 후에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 가치 중 단일 가치에 더욱 집중하는 지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적연구를 통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2) 이중가치 실현을 위한 조직운영은(측정값이 클수록 사회적 가치 중시, 작을수록 경제적 가치 중시) 영리기업(5.98점), 비영리조직(5.82점), 사회적기업(4.90점)으로 확인됩니다. 영리기업이 가장 사회적 가치(사회문제 해결) 지향적이라는 것인데요, 연구자들은 영리기업 설문 응답자가 기업 내 CSR 담당자 및 책임자가 응답하도록 했기 때문에 업무 특성이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추후 연구에서는 대표나 그에 준하는 경영진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합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혼종조직(hybrid organization)이라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을 당연하게 보지 않고,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지는 논문이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다시 질문하고 있으니까요.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질문이 아닐까 싶어요. 두루뭉술한 것을 구체화하고, 현실의 맥락에 맞춰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무수한 질문들 속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은 거죠. 쫀쫀하게 밀도감을 키우고 싶단 바람을 담아 이번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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