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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08. 2023

미래의 시간


시작하며

미래. 未來. 아직 오지 않은 때. 단순한 한자 풀이에 맥이 풀립니다. 미래, 뭔가 거창한 것이 있을 것만 같은 단어인데 말이죠.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만들어가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합니다. 한 해가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새해가 시작된다는 두근거림. 끝과 첫머리는 그렇게 맞닿아 있어 end이지만 and입니다.



'소'를 키우는 자세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게 누구냐고요? 네, 접니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시선을 두고, 아등바등 주어진 일을 쳐내는 것에 조바심을 냅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중요해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잡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요.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더 큰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죠. 그런데 종종 생각해요. ‘아니 그래서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은, 결국 그 가치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발굴하고 엮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를 찾기도 합니다. 모두 소를 진짜 정말 키워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상 속에선 불가능하죠. 그래서, 우리는 가치를 만들기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뾰족하게 현실적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요즘 주된 관심사가 ‘일’이다 보니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궁금하더라고요.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텍스트를 두서없이 찾아봅니다. 그러다 일의 태도와 삶의 태도가 다르지 않아요라는 인터뷰 글을 읽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일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삶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그렇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예를 들면, 저한테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성실한 공부’, ‘씩씩한 도전’, ‘흔쾌한 존중’ 이 세 가지로 말하겠어요. (중략)


매 순간 씩씩하게 도전해야 돼요. 일에 있어서 ‘굳이 나한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설 필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살면서 (다른 일에) 나서나요? 안 나서요. 반대로 ‘저 사람이 고생하고 있는데 좀 도와줄까?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같이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안쓰러운데?’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 외에도) 살면서도 그래요.


쫌쫌따리한 일들을 그러모아 저라는 사람의 실체를 겨우 건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성실한 공부’, ‘씩씩한 도전’, ‘흔쾌한 존중’은 기대고 싶은 키워드였어요. 공부, 도전, 존중. 앞의 꾸밈말을 거둬내니 더 간명해집니다. 2023년, 소를 키우는 제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삼아야겠다 싶습니다.



'소'를 둘러싼 문제는 새로운 게 아니야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챙기고, 그리고 또 무얼 해야 할까요. 


사회적경제 ‘판’에서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막상 이 ‘일’과 생활의 거리두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정신적인 연결(..)까지는 아니지만 모든 관심사가 사회적경제로 흘러 들어가다 보니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또 듣습니다. 같은 곳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경제를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사회적경제란 무엇인지,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다른 레이어를 장착한 채로 사회적경제를 들여다보고 그 정체를 넓고 깊게 알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이나 생각은 여느 개인만의 것도 아니고 지금의 과제인 것만도 아닙니다. 그래서 과거의 자료를 찾아봤어요. 1994년 <또 하나의 문화> 10주년을 기념해 ‘내가 살고 싶은 세상(특집 - 사회 운동과 나)’이라는 주제로 나온 책인데요, ‘조직의 쓴맛과 단맛’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깊습니다. “..그 쓴맛은 조직의 거대주의 속에서 나오는 인간/개인의 상실로 요약된다. 조직의 거대주의란 거창한 관념적 대의 명분, 조직을 대표하는 큰 인물, 보다 큰 조직 규모를 추구하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 세 가지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아니, 그래서 이런 조직의 쓴맛을 빼내고 단맛을 돋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글쓴이는 1) 운동 이념의 실용화(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일은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규명), 2) 조직 내부의 민주화/효율화(회의 방법의 변화, 사람을 키워내는 리더), 3) 조직 형태의 다양화(조직 운영의 신축성), 4) 조직간의 장벽 허물기/다중적 소속(이것은 일종의 N잡러?)이라는 해결방법을 모색합니다. 


우리의 고민이 새로운 것은 아닌데 말이죠. 해결방법도 이미 여럿 나왔고 그러니 우리는 어떤 것과 어떤 것을 조합해내는 것만 충실히 소화해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잘 모르겠어요. 왜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지난 2014년에 나온 <사회적 경제 활동가의 활동경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도 비슷한 과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논문을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94년에도 있었고 22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죠? '조직의 쓴맛과 단맛'이라는 제목이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책 이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2년 아름다운재단과 중앙대 신진욱 교수가 함께 연구한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질적 면접 연구> 보고서입니다.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시민사회 현장의 흐름을 짚어보는 보고서입니다. 연구요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 "2010년대 이후 시민사회를 혁신하는 데 깊이 참여해 온 활동가들과 직접 대화하며 ▲한국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지난 10여 년 동안 새로이 등장하고 성장한 운동들의 특성, ▲이들의 고유한 강점과 약점, ▲민관협치 참여의 경험, ▲사회적 경제 부문에 대한 인식, ▲코로나19의 구체적 영향, ▲향후 시민활동에 대한 바람직한 지원 방향,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제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연구자료는 연구 요약보다는 보고서의 내용을 후루룩(..)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개별 심층면접(총 26명), 초점집단면접(3그룹)을 통해 살펴본 내용으로 현재 시민사회를 전반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보시면 좋지만, 분량이 부담스러우시다면 125쪽 이하 결론과 제언 부분을 참고로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사회운동, 민관협치, 사회적경제 각각에 집중한 세 집단별 공통점과 차이를 정리한 표입니다. 연구의 면접참여자들은 사회운동 부문에서는 2010년대 이후로 새로운 주체, 의제, 활동방식을 개척한 단체를 설립한 인물들, 사회적경제 부문에서는 협동조합(일반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생협 포함)과 정부·지자체의 민관협치 기구에 참여했거나 종사한 인물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탐험이란 새로운 풍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지니는 데 있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은 다르게 보기의 의미를 일깨웁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과 '생활'을 거리를 두고 새롭게 바라보려 합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두서없이 내비쳤을 때 어떤 선생님께서 건넨 말이 힘이 됐습니다. “...그게 전환이라거나 새로운 확장이 일어나기도 하고...내게 더 중요한 게 무언지 살펴보는 시간이 되겠지요. 거리두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경계 너머의 길이 보이기도 하잖아요. 무엇을 하든 다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 무엇을 하든 다 괜찮을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은 지금의 우리가 채워나갈 테니까요.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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