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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12. 2023

우리 동네, 그리고 사회적경제


시작하며

얼마 전 유튜브를 끝없이 스크롤하던 중 라디오스타에 빽가(코요태의 래퍼 겸 사진가죠.)가 나온 영상을 우연히 봤습니다. 그는 서울 가로수길, 경리단길, 연남동이 유명해지기 전, 그 동네를 픽(!)해 사업을 했던 사연을 전했어요. 그의 이야길 듣고 사람들이 다음에 어느 동네가 뜰 것 같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빽가가 선정(?)한 다음 뜨는 동네는 서울 효창공원 주변이었습니다. 갑자기 번쩍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그 근방인데 요즘 동네 변화를 빠르게 느끼고 있거든요. 사골곰탕집이(저는 주로 경양식 돈가스를 주로 먹었지만요..) 문을 닫고 힙한 카페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거나 재개발금지 안내문과 현수막이 눈에 보이거나 하는 식으로요. 변화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마지막 '안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싶어요. 불쑥 던져진 안녕에 마음을 추스르기 급급한 요즘입니다.




눈 오는 겨울에 겪은 이별의 아쉬움을 온전히 나누기엔 변화가 참 빠르더라고요. 도시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시간이 쌓여 만든 흔적에 눈길이 갑니다. 이 작은 흔적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 흔적들이 사라질까 자꾸 사진을 찍어둡니다. 정리되지 않은 사진들만 쌓여가요. 때론 이 흔적들에 대한 제 마음도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싶고요.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사라지고 다시 만들고

동네 목욕탕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얼마 전부터 많이 보게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어려움을 힘들게 버텨온 동네 목욕탕들도 최근 수도,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폐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요. 그 이전부터 생활습관 변화로 대중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곤 하지만, 목욕탕이 문을 닫다니요! 사실 대중목욕탕은 취약계층에겐 필수적인 시설입니다. “온수가 나오지 않거나 목욕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택에 사는 취약계층”에게 목욕탕은 지역의 중요한 복지시설로 역할을 하니까요.


통계를 살펴보면, 2022년 말 기준, 17개 광역 지자체에서 폐업 목욕탕이 가장 많은 곳이 서울이라고 합니다. 인허가 또는 신고한 3,885개의 목욕탕 중 704개만이 남았다고요. 폐업률이 81.9%라니 이제 동네에서 목욕탕을 찾아보긴 점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행정안전부에서 수집·관리하는 목욕장업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허가를 받은 대중목욕탕은 1954년 등장합니다. 부산시 동래구의 금정탕이 그 시작인데요, 지난 2013년 10월에 폐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프를 보면 1980년대부터 목욕탕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져 2003년, 최전성기를 누립니다. 그 많던 대중목욕탕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한국일보 기사에서 위 그래프를 가져왔습니다.




최근 농촌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한다는 차원에서 지자체 주도로 공중목욕탕을 만드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지역에 부족한 생활시선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힐링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지역의 변화는 갑작스럽고,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겠지만, 일상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변화는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역은 사람이 만들고 유지합니다. 그 개인들이 자신의 지역을 구성하는 활동과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지역은 무너지지 않을까요? 지역에 대한 논의에는 그 지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유지하며, 그 가치를 확장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위한 필수요소인 거죠. 지역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고 만들어간다는 어떤 정신적 만족감이 필요합니다. 지역 기반의 사회적경제 조직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활동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지역,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변화해야 합니다.



로컬? 지역? 커뮤니티?

로컬, 지역, 지역사회, 커뮤니티, 그리고 우리 동네?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지난 2월 ‘2023년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사업을 공고했습니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의 자연문화 특성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로 정의하는데요, 지역 고유의 특성과 자원을 기반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합니다.


중기부에서는 로컬크리에이터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지역가치 창업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유형을 크게 7가지로 분류하고 있어요. 아이디어와 혁신을 중심에 둔 크리에이티브 유형이 규정될 수 있는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들긴 하지만, 공공의 지원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죠.



일본에서는 ‘로컬벤처’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하더라고요. 공급과 소비라는 이윤추구형 경제에서 지속가능한 순환형 경제(‘화폐자본주의’에서 지속가능한 안심-안전한 삶을 지원하는 ‘로컬벤처형 경제’로!)를 모색하는 것인데요, 효율화를 정답으로 두는 혁신이 아니라 웰빙과 행복에 기반해 '일단 해보는' 혁신을, 수직적인 조직에서 신뢰 관계의 수평적 조직으로, 오프라인 회의실에서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로컬벤처협의회’도 있습니다. 협의회에서는 '로컬벤처랩'을 통해 선진 사례를 만든 로컬벤처 기업가들과 함께 지역문제에 특화된 사업 구상을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NPO법인 ETIC.와 함께 올해 7번째 기수를 모집하고 있고, 현재까지 320명 이상의 수료생을 배출했다고 해요.


로컬벤처랩 4기생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마치토히토토(まちと人と) 사례를 잠깐 살펴봤는데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石巻市)에서 활동하는 마치토히토토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우리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등학생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목소리를 낸 고등학생 한 명 한 명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집중한 '마이 프로젝트(マイプロジェクト)'(※주변의 과제나 관심사를 테마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실행하는 것)가 그 출발입니다. 이시노마키 마을을 모티브로 한 패션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관을 표현한 체험형 낭독회 등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고등학생들만의 생각을 구체화했습니다. 거기서 확장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과 함께 하는 'LEARN',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DEVELOP' 등의 프로그램도 구상됐고요.


청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응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고 그러한 기대가 법인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죠. 마치토히토토는 '마을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이 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설립됐습니다.


마치토 히토토의 대표이사는 로컬밴처랩에서 6개월간 지역밀착형 창업가 육성 및 사업 구상 지원을 받으며 멘토의 지원을 톡톡히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보조금이나 위탁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속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요. 예를 들어, 마을/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과 함께 이제 막 사회인이 된 청년들을 위한 합동 연수나 상담 대응 등을 실시하고 이러한 활동 내용을 지역 고등학교에 제공해 일종의 기업 브랜딩을 대신 하는 거죠. 그런 지역기업 회원제도 정비가 지역사회와 지역주민, 기업 간의 연결을 통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반재단법인 마치토히토토는 법인 32곳, 개인 142명으로부터 총 4억 엔이 넘는 기부금을 받아 2022년 3월에 설립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표현이 많습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흔히 지역 중심의 조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물론 잠재적인 자원과 기회를 활용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합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저성장으로 인한 재정 상황 악화 등을 생각하면 지역사회 기반의 사회적경제조직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고요. 그러한 기대를 어떻게 잘 풀어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지난 2021년 1월 “시민사회 회복과 제3섹터 복지”라는 기획주제로 발간된 복지동향에 실린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회의 과제>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일반논문과 결이 사뭇 다르지만, 중요한 논의거리를 짚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지역사회에 기반하고 또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글에서는 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일을 크게 다섯 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사회적경제 조직에도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① 활동가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역사회는 30대로 대표되는 연차가 비교적 적은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전망의 부재’를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망의 부재는 ‘사회적 인정’과도 관련이 있다. 그들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 줄 것인지, 그 시간에 대해 지역사회는 어떤 투자와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②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보다는 사람을 지원하자

"결국 지역사회에서 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일을 한다. 규모가 작은 지역사회일수록 한 단체의 영향력보다 선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영향력이 훨씬 중요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지원사업의 모델도 이제는 사람을 지원하는 모델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③ 이웃이 이웃을 돕는 지원 체계를 만들자
"지역사회 내에서 시민사회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자원을 모으고 나누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④ 느슨한 연대를 촉진하는 열린 공간들을 만들자

"공간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거나 후원자가 아니었다면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일은 과거 지역사회에서 시민사회 연대체를 만들었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수 있다."


⑤ 개인과 조직 사이의 중간계 활성화시키자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시민사회 생태계에서 개인과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곳, 중간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 중간계가 지역사회 내에 존재했던 시민사회조직들과 낯선 개인들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구역상의 지역 구분으로는 지역의 문제와 필요를 담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생활을 하는 사람을 둘러싼 사회와 경제, 자연환경 등과의 영향을 고민하면서 지역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를 행정이 정한 기준으로 구분 짓지 말고, 시민사회가 지향하는 목적에 맞게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다시 그려야 한다"는 말처럼 지역을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그때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역할이 더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를 둘러싼 즐거운 작당모의를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시도가 사회적경제 방식과 만난다면 어떨까요? 학습과 교류, 연결의 장을 지역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요즘입니다. 그 가능성과 기대의 씨앗을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요? 





내 생각이 오롯 ‘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거겠죠. 얼마 전 읽은 책(<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는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의 직업윤리에 연결된 세계관이 사회 전체에 스며들고, 거기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종속되게 되고요. 그러고 보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점 역시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세계관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겠구나 싶어요.



마르크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즉 한 사회의 윤리적 분위기, 다시 말해 모든 것에 스며들어 각각의 환경이 지닌 특별한 윤리와 결합하는 분위기 자체는 여러 집단 윤리가 뒤섞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합의 비율은 각 집단이 행사하는 권력의 양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한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이 거대 농촌 기업의 소유주들인지, 군인인지, 상인인지, 산업 자본가인지, 은행가들인지, 관료인지에 따라, 그 지배 집단의 직업윤리에 연결된 세계관이 사회 전체에 스며든다는 것이지요. 그런 세계관은 곳곳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정치에서, 법에서 그리고 심지어 겉보기엔 중립적인 지식인들의 추상적 사변에서도 말입니다. 각자는 그 세계관에 종속될 것이지만, 누구도 그걸 의식하지 못합니다. 모두들 그 세계관을 특별한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사고방식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 시몬 베유,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 90쪽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떤 경계와 구분을 넘어 생각을 나누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지금 필요한 것은 유연성과 어느 정도의 체계를 갖춘 플랫폼이 아닐까 싶어요. 어딘가에 닻을 내리기까진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 시행착오를 감당할 수 있도록요. 그런 유무형의 공간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안고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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