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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15. 2023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략

얼마 전, 서울 성산동, 정확히는 6호선 망원역 근방에 갔는데요, 성미산 마을회관(마포마을활력소)에 걸린 현수막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보도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니 현실감이 더욱 컸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마을활동의 거점공간 역시 더 많이 필요하지만”이라는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됩니다. 호혜와 협력의 관계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곳곳에서 나오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뿐인 구호일까 싶어요.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서로에 기대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겸손해집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있음을 서로를 통해 확인하면서, 그렇게 나아가야겠죠?



'참여'의 의미

많은 일이 정치적·경제적 영향을 받습니다. 그 흐름에 무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 사회적경제 영역이 겪는 부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겠죠? 변화의 상황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찾기 위해 그 흐름에 뛰어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참여’하는 거죠.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형태를 이야기할 때 강조하는 부분은 조합원의 참여입니다. 민주적인 조합원 참여는 협동조합을 투자자 소유 기업과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합원들은 집합적으로 협동조합을 소유하고 있으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배구조에 참여합니다. 조합원들은 정보를 요구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대표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들은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협력하고 함께 일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필요와 집단의 필요를 함께 충족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참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참여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의 일부가 됩니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각자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자조를 추구할 필요성은 점점 낮아지고, 팍팍한 현실에 버티다 보면 공동체 참여의 열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죠.


한창 ‘느슨한 연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Z세대는 다른 방식의 참여를 고민합니다. 소셜미디어의 발전, 디지털의 일상화, 수평화된 조직과 투명성에 대한 욕구 등으로 인해 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협동조합이 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에 개방적이지 않고, 또 혁신도 원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참여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변화를 이렇게 책으로 학습(...)해서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도 들지만,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개인주의적이라는 통념이 무색하게, 포스트 밀레니얼은 나와 우리의 간극을 좁히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탐색하고 형성한다. (중략)

포스트 밀레니얼은 조립식 소속을 실천하며 새로운 사회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저마다 고유한 조합으로 구성되고 복수의 커뮤니티에 소속됨으로써 표출되는 이들의 정체성은 고유함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한 명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각자에게 다층적인 사회적 지지를 제공한다. 사회 이론가 미셸 마페졸리의 표현대로 “서로 얽히고설킨 여러 부족에 참여함으로써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다원성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소속감은 본질적으로 유연하며, 비공식적이고, 담화적이다. 이때 우선시되는 커뮤니티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지고, 또래집단이 공유하는 가치들과 합의, 그리고 그 산물인 규칙을 바탕으로 관리되는 커뮤니티다. - <GEN Z: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4장. 가족을 찾아서, 187~188쪽


‘조립식 소속’이란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여러 커뮤니티에 복수로 참여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 역할을 수집하며 ‘나’를 구성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커뮤니티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즘’ 세대가 개인주의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어떤 세대보다 커뮤니티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사회적 돌봄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나 재생에너지 등 신기술 분야에서 협동조합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세대의 참여 속에 지속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상황에 맞춰 협동조합의 참여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세대의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해 가는 거죠.



노동자협동조합, 수마(SUMA)

오랜 기간 운영되고 있는 조직의 사례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까요?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어설프게만 알고 있는 노동자협동조합 수마의 사례를 이번에 살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마 협동조합(SUMA Wholefoods)은 1977년에 설립된 노동자협동조합입니다. 1975년, 지역의 소규모 친환경, 유기농산물 매장에 콩, 쌀 등을 판매하는 틈새시장을 발견한 레그 테일러(Reg Taylor)가 2년 후 7명의 직원에게 사업을 양도하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운영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홀푸드 도매업체로 성장한 수마는 현재 약 200여 명의 직원이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연매출이 5,500만 파운드에 이릅니다.


수마는 조합원 모두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회의를 통해 전체 의견을 수렴합니다. 이 시스템은 8~20명 정도의 규모에서는 문제없이 굴러갔지만, 150명 이상으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수마에는 경영위원회와 3년마다 재임용되는 부서별 코디네이터가 있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여전히 수마에는 CEO가 없으며, 모든 직원에게 시간당 동일임금을 지급합니다. 동일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는 직원들이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순환 직무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요, 예를 들어, 직원들은 월요일에는 물류창고에서 주문물품을 피킹 하고,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배달 트럭을 운전하며, 목요일에는 물품 포장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는 등 여러 팀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업무를 배치하면 보고 라인이 두 개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직원들은 전체적인 업무의 흐름을 파악하며 업무별 이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유연성을 필요로 합니다.


수마의 급격한 성장은 비거니즘과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ism)이 인기를 얻으면서, 수마의 서비스 수요가 높아진 사회적 흐름에 기인합니다. 최근 10년간 채식을 하겠다는 영국인은 350% 증가했고, 영국인의 44%는 육류를 줄이거나 먹지 않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수마의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동시에 의사결정에 더 큰 리스크와 비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수마의 해결책은 ‘민주적 운영’입니다.

*플렉시테리언은 채식을 주로 하며 공장식 농장에서 사육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수마에는 경영위원회가 있지만, 동시에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분기별 총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임금 인상, 보너스, 부지 이전 등 수마와 관련된 어떤 제안이고 언급될 수 있다고 해요. 조직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모든 조합원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기가 쉽지 않아졌고, 수마의 관계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적 운영 가치를 비즈니스 운영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수마가 앞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갈까요?


마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6개월 동안 일종의 준조합원(trial membership) 시기를 거친 뒤에 정식 조합원이 될 수 있습니다. 임금도 그렇고 전체적인 직원 복지 수준이 높아서 입사가 쉽진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지난 2000년에 나온 <Leadership strategies for sustainable development: a case study of Suma Wholefoods>입니다. 아쉽게도 파일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충분하진 않지만, 번역 자료를 올립니다.


논문은 목적에 따른 가치 기반 조직의 운영에 필수적인 수마의 리더십 전략을 고찰합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수마는 모든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초기의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우리는 논쟁하고 논쟁했다...이번 주에 내린 결정이 다음 주에 뒤집혔다. 조합원들은 중요한 개발과 계획을 막기 위해 각자의 거부권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종종 눈물을 흘리며 회의장을 떠났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짧은 글인데요, 수마가 직면한 어려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마는 위임받은 전문가 그룹을 기반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간접 참여 모델을 고려했습니다. 이때 조직 구성원의 복지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지원적 리더십(supportive leadeship)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수마가 성장하면서 그들은 구성원의 완전한 직접 참여에 기반한 전략이 항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무임승차자 효과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수마는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과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적용했습니다. 연구자는 변혁적 리더십은 거래적 리더십을 기반으로 구축되며, 거래적 접근 방식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의 성과를 창출한다고 정리합니다. 수마는 변혁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경영위원회(management committee)를 두고 장기 사업 전략과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수립합니다. 이때 비전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이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죠.

*거래적 리더십에서 리더의 역할은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가를 하급자에게 주지 시키고, 목표달성에 따라 어떤 보상(또는 벌)을 받게 되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 리더 자신이 원하는 결과와 구성원들이 원하는 보상을 거래합니다. 변혁적 리더십은 하급자가 자신의 관심사를 조직발전 속에서 찾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켜주며 새로운 창조와 혁신을 위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때 리더는 환경변화에 민감한 대처와 모험, 도전을 수행하고 신념과 이상에 대한 확신을 주어 조직 구성원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논문은 조직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리더십 전략을 조합하여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리합니다. 변혁적 리더십과 비전 리더십, 지원적 리더십을 조합해 구성원들이 내재적 및 외재적 동기부여를 함께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합니다. 또한, 거래적 리더십과 투명한 참여적 리더십을 함께 도입하는 것도 조직의 상황에 맞는 리더십 양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결정 과정에 질문을 할 수 있고,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구조(회의록 공개, 사업계획 논의 자리 참여 등)를 갖추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연구자는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을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독재적이고 관료적인 리더십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정리합니다. 리더십의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 조직에 또 우리 구성원에게 ‘잘’ 맞는 리더십 유형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난해 테드(Ted)와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만든 영상이 꽤 재밌습니다(번역이 잘 되어 있어요!). 모든 조합원이 월 1회 3~4시간 의무적으로 조합에서 자원봉사해야 하는 파크슬로프 협동조합(Park Slope Food Coop) 사례도 잘 정리해 전달하고 있고요. 이 영상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의미부터 CEO가 없을 때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 협동조합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을 간략히, 하지만 알차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전 세계적으로 2억 8천만 명, 즉 일하고 있는 사람 10명 중 한 명을 고용할 정도의 큰 규모를 보입니다. 교육에서 농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요. 사람의 가치와 민주적 거버넌스를 추구한다는 협동조합의 차별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을 둘러싼 외부 환경만큼 내부의 정비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요? 내부의 정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두서없는 질문을 던지며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https://diveintocoop.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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