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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11. 2023

잘 듣고 잘 나누는 것


‘좋은 듣기’를 위한 노력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할 때면 항상 이어폰을 꽂습니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들어요. 양옆으로 사람이 꽉 찬 좁은 공간에서 책을 펼치기는 쉽지 않고, 그렇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이 피곤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팟캐스트입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방송을 듣고 있는데요, 요즘 자주 챙겨 듣는 프로그램이 팟빵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입니다. 월간지처럼 매월 하나의 방송이 올라오는데요, 총 5개의 코너로 전체 5~6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정희진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듣는 행위는 말하고 쓰는 것에 비해 수동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해 그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거기에 공감하고 때론 다른 생각을 나누기 위해선 그 어떤 행위보다 능동적인 듣기가 필요합니다(팟캐스트를 듣는 것은 능동적 듣기를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ㅎㅎ). 


외부 상황을 잘 판단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많이 듣고, 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뒤에는 그것을 이해하고 내 것을 만드는 작업이 뒤따라야겠죠. 아무런 참고자료가 없다면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하늘 아래 아~주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좋은 레퍼런스가 있다면 그것을 유심히 보고 관찰하고, 그런 선택들이 어떤 사고를 거쳐 ‘왜’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그래서 듣기 위한 침묵의 시간은 말하고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듣기’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요즘의 고민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들을 수 있을까요? 듣는 사람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어제오늘 들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대화와 소통이 부족하기에 반복해서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겠죠.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칼럼에서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고, 그다음에 내 입을 열도록 하자. 그리고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가늠하고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토론하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접점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깊이 있게 잘 듣고, 그리고 난 뒤에 말하는 것. 그렇죠, 쉽지 않기에 노력이 필요합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기

앞서 '듣는 사람'의 중요성을 언급한 이유는 제 스스로 '좋은 듣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택시협동조합의 현황을 살펴볼 일이 있었습니다. 택시산업의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는 작업이 쉽진 않았는데요, 중요한 건 잘 듣고, 또 잘 읽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2015년 국내에 첫 택시협동조합이 등장하고 2023년 현재까지, 택시협동조합을 둘러싼 연구와 토론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궤적 속에 놓여 있는 ‘지금’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더라고요. 구글 학술검색 첫 화면에 적혀 있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문구처럼 이미 쌓여 있는 논의를 발판 삼아 택시협동조합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지난해 9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는 ‘택시협동조합의 현황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협동조합이 택시 활성화의 방안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 토론회에서는 택시협동조합에 대한 운전자의 선호도가 높은 동시에 택시를 둘러싼 제도와의 충돌 지점(여객운수법, 택시발전법), 협동조합 경영마인드 부재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택시협동조합이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 확대와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협동조합과 협약을 맺고 택시 세차를 맡긴다거나 대중교통이 촘촘하지 않은 면 단위 거주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병원에 모시는 일을 하는 등 택시협동조합과 지역사회와의 관계망도 눈여겨볼 부분이고요. 


하나의 이슈를 놓고도 어느 측면을 들여다보는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더 넓고 깊게 현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듯싶어요. 아니면, 음,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장착하거나요ㅎㅎ.


참, 국내 택시협동조합을 다룬 논문은 3편입니다. 앞선 두 편의 논문은 한국택시협동조합(쿱택시)의 사례를 다루었고, 마지막 논문은 최근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대구택시협동조합을 다루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세 편의 논문 모두 온라인에서 자료 다운로드가 용이합니다. 링크를 걸어 두었으니 살펴보심 좋을 것 같아요. 택시협동조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됩니다. 



1) 협동조합 초기안정화 기여요인에 관한 연구:한국택시협동조합 사례 분석(2016) 
2) 직원협동조합이 만들어 낸 조합원 삶의 변화: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을 중심으로(2018)
3) 협동조합의 운영원칙이 대구지역 택시협동조합의 초기 운영안정화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2022)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19년에 나온 ‘택시협동조합 vs. 우버’라는 다소 전투적인(?) 제목을 가진 논문을 살펴봤습니다. 논문의 제목은 <Taxi co-ops versus Uber: Struggles for workplace democracy in the sharing economy>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논문이기에 현재의 상황과 사뭇 다른 지점이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버와 리프트가 등장한 이후 미국 택시협동조합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도움이 됩니다.


우버와 리프트 같은 차량 호출 플랫폼이 가져온 변화는 큽니다. 사용자의 수요에 맞췄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자들의 노동 환경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택시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택시협동조합, 그러니까 노동자협동조합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연구자들은 차량 호출 플랫폼의 성장이 택시협동조합 성장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 이유로 1)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 택시 구조에 불만을 품고 있는 택시 기사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켰고, 이러한 상황은 일부 노동자 중심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유인을 높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 거대 차량 호출 플랫폼이 로비를 통해 중앙 및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규제완화 압력을 가했고, 이는 협동조합에게도 기회가 됐다고 정리합니다. 논문은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국내 상황에 비춰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2015년 택시협동조합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카카오모빌리티, 진모빌리티(아이엠), 브이씨엔씨(타다), 우티, 티머니(온다택시)가 택시산업의 중심 플레이어가 된 지금, 택시협동조합이 놓인 환경은 크게 달라진 거죠. 


논문은 택시협동조합이 전체 택시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착취적인 근무 환경으로 악명 높은 택시산업에서 노동자 중심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필라델피아와 덴버, 오스틴 각 지역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확인한 것은 협동조합을 공개적,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버와 리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것을 규제하려는 노력이 택시협동조합의 출범과 안정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논문에서는 미국의 택시협동조합 현황을 간략하게 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올해 하반기 법인격을 갖춘 택시협동조합전국연합회 설립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택시협동조합이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는 택시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은 택시협동조합이 운전자에게 불리한 착취적인 산업 구조에서 민주적이고 노동자 중심의 대안을 비전으로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갖는 의미가 있다고 밝힙니다. 이 대안적 가치가 유지·확장되기 위해선 협동조합 스스로 잘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들의 활동이 꽃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도 보장해야 하는 거죠. 시장의 안전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조직들에 대한 제도적 응원을,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이번주 논문 읽기 자료도 거칠게 번역해두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본다는 측면에서 가볍게 읽어보심 좋겠습니다.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지난 뉴스레터 제목을 ‘주변에서 중심으로’라고 잡았는데요, 아래와 같은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은 중심부로 진입하려는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당연히 이런 욕망은 능동성을 극대화하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뒤틀린 욕망이 되기 십상이죠. 그리고 일단 중심부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이 부패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 이유가 오로지 중심에 진입하기 위한 것일 뿐, 자기를 키워온 지역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는 모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그칩니다. 그렇게 원칙과 도리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갖게 되는 원칙은 추상적인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변의 상실 - 방법으로서의 자기>, 93~94쪽


사회적경제가 중심으로 간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구체성이겠구나 싶어요. 사회적경제가 관심 두는 문제를 우리의 위치에서 명확히 설명해 내는 것이요. 그게 필요하다 싶습니다. 현재의 사회적경제,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지향, 그리고 우리 안의 내재적 모순은 무엇인지를 면밀히 관찰하며 만들어낸 구체성을 어떻게 안팎에서 잘 소통해 낼 것인지, 그런 물음을 안고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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