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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20. 2023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요?

얼마 전 <신도시에 대한 밀레니얼의 애증 ‘05학번 이즈 히어’>라는 재미있는 글을 봤습니다.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가 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신도시에서 나고 자란 신도시의 ‘아파트 키즈’들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가 쉽게 가질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 공포(?)가 이들의 생활에 은은하게 깔렸지 않나 싶어요. 그 감정을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밀레니얼 세대가 정신적 고향인 신도시에 가지는 애정과 증오를 얘기하고, 그들이 또 다른 신도시를 갈망하는 과정에서 훼손되는 자존감을 포착한다. (중략)
그것은 ‘새것이 가장 좋다’는 저주 같은 세뇌가 우리에게 심은 근본에 대한 콤플렉스이며, 한정된 기회를 놓고 끝없이 경쟁하다 결국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에 가깝다.”


신도시 키즈(...)뿐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의 많은 이들이 아파트 키즈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는 물리적인 거주 공간만이 아니라 그 세대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속감과 애착을 갖게 하는 그런 고향이요. 앞으로의 많은 이야기들은 이런 변화를 디폴트 값으로 두고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사회와 사회적경제


지역사회와 사회적경제를 연결할 때, 그 지역사회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저는 농산어촌의 이미지가 막연히 떠오르더라고요. 지방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개선하는 방안으로서의 사회적경제에 주목한다는 글들이 유독 많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공동체 돌봄, 주민주도, 지역재생 등 지역사회와 사회적경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오는 키워드가 도시에서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쳇바퀴를 부지런히 굴리다 보면 내가 생활하는 곳에서 나와 사람들, 나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의 여유가 없거든요. 시간 여유가 없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딘가 비빌언덕을 가까이에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뜬금없는 상상이나 정답 없는 두루뭉술한 생각도 핀잔을 들을 걱정 없이 나누고, 또 용기와 응원을 얻고 싶으니까요. 그런 관계망이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공동주택, 다양한 형태의 마을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근본 이유는 마을적 관계망을 배경으로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망을 실제로 현실화시킨 덕분이다. 즉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이를 실제로 만들어 낸 것은 커뮤니티가 사회적 인프라로 존재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실현할 수 있다. 즉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독특한 게 아니라 그 시스템이 독특한 것이다.” - 위성남, <마을은 처음이라서>


도서 <마을은 처음이라서>에서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의 1세대로 마을의 변화 과정을 체험해 온 당사자인 저자는 개인과 집단이 가진 다양한 욕망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성미산마을의 다양한 활동들이 싹 틀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나 홀로 그 욕망을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풀어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었겠죠? 촘촘하게 연결된 관계망들이 든든하게 뒷받침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테고요. 어느 한 사람이 그 시스템을 만든 것은 아닐 텐데요, 그 시스템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기에 신뢰가, 기대가 쌓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뢰'의 여러 형태

요즘 무인 가게들을 여기저기서 흔하게 봅니다. 코인 세탁소는 무인 가게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젠 아이스크림, 과자를 판매하는 무인 가게는 물론 학용품과 장난감을 판매하는 무인 문구점, 복사와 인쇄를 하는 무인 프린트카페, 무인카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인 매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늘 주인이 웃으며 반겨주고,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는 동네 단골 카페까지는 아니어도 교류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공간들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익숙해지고 구인난과 물가 상승 등으로 무인 상점이 업종별로 생겨나면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서울신문, 2023.3.30.)”는 기사처럼 무인 매장의 등장은 어쩌면 사회 변화 속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인 매장은 소비자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건비를 절감해 타 매장과의 경쟁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등 분명한 이점이 있으니까요. 이런 무인 매장은 카메라, 센서, 컴퓨터 시스템으로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보안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무인 매장임에도 다르게 운영되는 곳을 저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로변에 설치된 농산물 무인 매장들 말이죠. 인근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매대에 가지런히 두고, 구매하는 사람이 직접 비용을 내고 가져가는 그런 무인 매장은 앞서 살펴본 무인 매장과 같지만 분명 다릅니다. 일종의 양심 가게입니다. 구매하는 사람의 자율과 양심에 맡겨서 운영하니까요. 


사실 신용카드 구매도 신뢰에 기초한 거래인데 말이죠. 신뢰(trust)는 경제학에서 신용(credit)이라는 용어로 사용하는데요, 지금의 금융 시스템 역시 그 신뢰와 신용에 의해, 그러니까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 바탕해 구축되고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양심’으로 운영되는 가게가 도시에서도 가능할까요? 


저는 종종 군것질 거리(...)를 사러 무인 매장에 갑니다. 매장 한 코너엔 요렇게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는 화이드보드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 적혀 있는 글들을 보는 게 꽤 즐거움인데요, 이번엔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는 게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누군가 이 공간에 머물렀고 또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즐겁습니다.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은가 봐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1년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연구 <사회적경제 지역성 탐색 연구: 지역 기반의 장소성을 중심으로>를 살펴봤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일차적으로 형성되는 곳이 바로 ‘지역’”이라고 이야기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정착하고 성숙의 과정을 거치는지를 살펴보겠다고 연구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렇게 사회적경제와 지역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합니다. 이를 위해 총 6개 사회적경제 조직 및 8명의 지역주민을 인터뷰합니다.


연구자들은 사례연구를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을 중심으로 장소적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이해관계자 및 주민과 공유함으로써 ‘장소적 공동체(place-based community)’”가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사회적경제 공동체적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제3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1989년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프랑스의 비스트로, 영국의 펍,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등을 분석하고 여기에 제3의 장소라는 명칭을 붙입니다. 그리고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직장 혹은 학교에 이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인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적 없는 접촉과 폭넓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제3의 장소를 찾고 또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공공 공간이 많지 않습니다. 도서관도, 녹지 공간도... 언제든 원할 때 찾아갈 수 있고 모두에게 열려 있고 또 누구나 집처럼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역의 플랫폼, 지역의 거점, 지역의 연결면, 지역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제3의 공간’으로요.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역 안에서 적정한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입주공간 지원, 금융 지원 등이 있었지만, 지역의 유휴공간을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물론 그만큼 지역사회 안에 스며들려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노력도 필요하고요. 


공동체와 참여, 상호연결이 도시에서 이뤄지기 위해 제3의 장소가 갖는 중요성을 곱씹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경제가 지역에 어떻게 착근(embedded)될 수 있을지를 묻게 되고요. 사회적경제는 지역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을까요?



지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처음으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고민하고 있던 주제를 정확히 관통하는 메일을 받아 무척 반가웠습니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함께할 사람이 없는데, 오늘의 논문이 성실하게 지치지 않고 이런 관점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말 걸어주시니 감사하네요. 레터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회적금융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급돼서 너무 반가우면서도 방금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가 폐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터라 마음이.. 울렁하네요. 몇 년 전 사회적경제를 우연히 만나고 이 분야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을 꾸던 때가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장난스러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요. 그럼에도 희망찬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적금융을 둘러싼 변화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지 않나 싶어요. 보내주신 글 덕분에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이 중소기업육성기금으로 통폐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금 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제도적 변화가 필요했다고 통합의 이유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없애고 합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싶어요.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이 분명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성장을 촉진했고, 또 타 지자체의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제도의 이점을 강화하면서 한계를 보완할 수는 없었을까 싶어요.


한편, 최근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논의가 제도 안에서 얼마나 풍성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도 듭니다. 얼마 전 마감된 한 지자체의 사회적경제 5개년 기본계획 연구용역이 제안서를 제출받아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격투찰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자그마치 88개 업체가 참여했고요. 선정된 업체는 ‘자연공원 운영업’이란 업종에 속한 기업인데요, 지역의 사회적경제 현황 및 이슈, 부문별 추진과제 등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물음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도권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 부족이 사회적경제 섹터의 전반적인 부실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지요. 상황을 반전시킬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을 하며,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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